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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부담없이 친구와 어울릴 수 있는 '가성비 갑' 게임

기자
이인근 사진 이인근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1)
하루 당구장 내방객 120만 명, 애호가 1200만 명, 전국 골목 곳곳에 당구장 2만2000개,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 채널…아마 한국은 당구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열풍의 주역은 바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다. 대학 시절부터 당구를 쳐온 애호가의  알량한 구력과 지식에 잡생각을 섞어 당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편집자>
 
강남 당구아카데미에서 당구를 배우는 학생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김경빈 기자

강남 당구아카데미에서 당구를 배우는 학생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김경빈 기자

 
현재 나이 오십 대 중반에서 60대 중반, 즉 이제 거의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해 ‘지공(지하철 공짜)’을 목전에 두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 이들은 지난 시절 우리나라의 고속 성장을 견인하며 풍요의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의 파고 앞에 처절히 무너져 내렸던 상흔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 야만적 독재에 결연히 맞서고 6.10 항쟁 때 넥타이 부대로 민주화에 기여했으나 지금은 상당수가 수구 보수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 이런 우여곡절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 젊은 시절의 향수를 느끼려는 듯 다시 큐대를 잡으며 우리나라의 당구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나는 1957년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로 은퇴한 지 2년이 지났으며, 은퇴 후 소일거리로 친구들과 당구를 즐긴다. 당구 실력은 사구 기준 300이고삼구(쓰리 쿠션)는 중대 20개 정도 치는데, 삼구·사구 둘 다 과다 책정으로 소위 ‘물’ 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고수의 위치를 어렵사리 지키고 있다.
 
사구 기준 300이지만 친구들 사이선 고수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떤 이유로든 한 두 번 이상 당구장을 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70년대 후반 대학 시절 처음 당구를 접했다. 당시 대학가 주변에는 적어도 두어개의 당구장이 있었다. 유흥 지역은 물론 회사나 공단지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에는 젊은이에게 딱히 놀이를 즐길 시설이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탁구장 또는 볼링장이었다.
 
탁구장은 겉멋 들린 청춘이 가기에는 너무 심심했고, 볼링장은 수입이 없는 대학생이 즐기기엔 너무 럭셔리했다. 사실 당구 칠 형편이 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많은 친구가 대학 진학 대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며 대학에 진학한다 해도 입주 과외를 하면서 등록금을 벌던 때라 당구장에 갈 심리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언론에선 대학을 상아탑 대신 우골탑(시골에서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의미)이라고 시니컬한 표현을 썼다. 70년대 후반 전쟁을 겪은 부모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려고 자녀 교육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제 막 국민소득 1000달러를 힘들게 넘긴 시절이었다. 그러니 당구비 몇 백원의 여유가 있거나 없거나가 상당한 차이였다(사실 당시 당구비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던 내가 집에서 부쳐준 용돈이 5000원이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를 근거로 산출한 것이니 다소 부정확할 수 있다).
 
30여년 만에 다시 잡은 당구 큐대
자식을 키우며 영욕과 질곡으로 얼룩진 30여년의 세월을 보내고 은퇴하는 시점에 다시 당구를 잡고 있다. [사진 pixabay]

자식을 키우며 영욕과 질곡으로 얼룩진 30여년의 세월을 보내고 은퇴하는 시점에 다시 당구를 잡고 있다. [사진 pixabay]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33개월짜리 군대를 다녀온 뒤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자식을 키우며 영욕과 질곡으로 얼룩진 30여년의 세월을 보내고 은퇴하는 시점에 다시 당구를 잡고 있다. 이 글의 주제인 당구에 대해 앞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낼 계획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이 들어 예전처럼 술 마시는데도 힘이 부치고, 은퇴 후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때 가장 만만한 것이 당구다. 얄팍한 내 지갑도 지갑이지만, 가성비 갑의 당구가 항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은퇴 후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는데 훌륭한 플랫폼으로 작용하는 것도 더할 나위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당구장은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어 약속 장소 선정에 어려움이 없으며 장비 또한 당구장에 모두 준비돼 있으니 접근성과 용이성이 탁월하다. 당구에는 또한 시간제한이 없어 치고 싶은 만큼 치면 되고, 몇몇 친구끼리 약속을 한 경우 조금 늦더라도 별 미안함이 없이 어울릴 수 있다.
 
무엇보다 당구라는 매개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끝나면 술 한잔 걸치면서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도 즐겁다. 술 한잔 후에 혹여 미련이 남아 한 판 더 승부를 원하는 친구가 있으면 흔쾌히 받아주는 아량도 있다.
 
이제는 무엇이건 꽉 채울 수 없고, 술을 반 잔쯤 남겨도 아쉽지 않게 일어서는 여유를 발휘할 수 있으며, 반드시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이다. 수렵시대부터 각인된 남성의 DNA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유치한 승부욕과 지면 게임비를 내야 하는 현실적 압박감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술 취한 눈을 부릅뜨고 약간의 요행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잡은 큐대에 잔뜩 힘을 실어본다.
 
깨알 당구 팁
우리나라에서 대세는 캐롬 볼
당구는 크게 캐롬(영국식으로 캐논이라고도 하며, 사전적 의미는 부딪쳐 맞고 튀어나온다는 뜻), 포켓볼, 스누커가 있다. 기본적으로 정방형(정사각형 두 개를 붙인 모양의 직사각형) 대를 이용하며 포켓볼, 스누커는 각 모서리와 당구대 긴 면 양 중앙에 있는 6개의 포켓에 공을 맞혀 넣는 방식이다. 캐롬에는 포켓이 없으며 사구와 삼구 방식이 있다. 스누커는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포켓볼의 경우 젊은 여성층이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당구는 캐롬 볼이 대세다. 대개 처음 입문할 때는 사구를 즐기다가 좀 더 익숙해지면 삼구(쓰리 쿠션. 내 수구를 가지고 나머지 적구 둘을 맞추는데 당구대의 쿠션을 세 번 이상 활용해야만 득점이 되는 방식)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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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