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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표결도 통과 안 되면 조기총선·국민투표 최후통첩

[SPECIAL REPORT] 혼수상태 브렉시트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노딜 브렉시트라는 최악은 일단 저지했지만 다른 대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불확실성은 상당 기간 지속된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의 현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해 봤다. 영국 하원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조약 비준을 재차 큰 표 차이로(반대 391, 찬성 242) 부결시켰다. 다음날 하원은 어떤 시점이나 상황에서도 노딜 브렉시트는 안 된다는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클 것으로 보이는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해 3월 29일로 예정된 탈퇴시한을 연기하기로 14일 합의했다. 
 
EU는 일단 영국이 명확한 이유를 들어 연기를 요청하면 이를 승인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탈퇴시한이 연기된다 해도 현재의 교착상황을 타개할 뚜렷한 방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테리사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조약을 관철하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왔다. 오는 19일에 탈퇴조약이 세 번째로 하원에 비준 상정된다. 그는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에게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2020년 12월 말까지 브렉시트 시한을 연기해 탈퇴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천명했다. 즉 이번에도 거부되면 조기총선이나 제2 국민투표 등이 치러져 브렉시트가 번복될 수 있다고 최후 통첩을 날렸다. 
 
하지만 두 차례나 탈퇴조약을 거부한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갑자기 돌변해 이를 비준할 가능성은 작다. 설령 가까스로 탈퇴조약이 비준된다 해도 탈퇴에 필요한 이행법안 준비로 세 달 정도의 탈퇴 연기는 필요하다. 14일 통과된 탈퇴시한 연기 수정안은 브렉시트 조약이 19일 비준될 경우 이행법안 준비를 위해 6월 30일까지, 그렇지 않을 경우 더 오랫동안 탈퇴를 연기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650명의 영국 하원 의원 가운데 강경 브렉시트 지자자들은 최대 80여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선 EU 탈퇴를 요구한다. 대부분 집권 보수당 의원인 이들은 메이 총리가 협상 초기부터 이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EU에 끌려다녀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노딜 브렉시트 후 시간을 두고 EU와 재협상을 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초래한 경제적 손실은 크다. 영국은 2017년 서방선진 7개국(G7)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1.7%로 전년보다 하락한 유일한 나라였고, 지난해 성장률은 2012년 후 최저치인 1.4%를 기록했다. 앞으로 몇 년 정도 영국 경제는 EU보다 성장률이 뒤처질 것으로 연구기관들은 전망했다. 이런데도 이들은 경제적 손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브렉시트 이후를 장밋빛으로 묘사한다.
 
반면 3분의 2 정도의 하원의원들은 경제에 최소한의 손실을 초래하고 EU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를 원하는 연성 브렉시트 지지자들과, 제2 국민투표 지지자들로 크게 나뉜다. 탈퇴 후 EU와 이와 유사한 관계를 맺는 게 영국 경제에는 최소한의 피해가 간다. 문제는 이민자 등의 자유이동에 대한 과장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이 선택이 매우 어렵다.
 
2016년 6월 영국 유권자들이 3.8%포인트 차이로 EU 탈퇴를 지지한 것은 너무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와 자국의 복지를 앗아간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대신 EU 회원국 시민들은 다른 회원국으로 아무런 제한없이 이주해 일할 수 있다. 80만 명 정도의 폴란드인을 비롯해 영국에 약 300만 명에 가까운 EU 시민들이 거주 중인데 이들은 동기부여가 커서 받은 복지혜택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2010년 글로벌 경제위기 후 당시 보수당-자유당 연립정부가 긴축정책으로 복지를 삭감하다 보니 중하위층이 겪는 어려움이 커졌다. 이들은 정부정책을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책임을 EU에 전가하기 일쑤였다. 메이 정부도 탈퇴 후 이민정책 권한을 EU로부터 환수해 오겠다고 외쳤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없다.  
 
제2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하원 의원들은 최대 9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집권 보수당과 제1 야당인 노동당, 자유민주당, 스코틀랜드민족당 등에 산재해 있다.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매우 험준하고 안개가 자욱하다. 노동당은 지난달 말 제2 국민투표 지지를 내세웠으나 어정쩡한 모양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는 급진좌파로 EU를 자본주의자들의 클럽으로 보기 때문에 반EU 정서가 강하다. 이들이 내세운 국민투표 재실시도 EU 잔류-탈퇴를 재차 묻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투표 승인을 전제로 비준조약을 조건부 승인하는 것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유럽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탈퇴조약 재부결 직후 5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했다. 유권자의 35%는 EU와 추가협상이나 연성 브렉시트를, 29%는 제2 국민투표를, 25%는 노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 의회 내 어떤 브렉시트 안도 과반이 되지 않듯이, 유권자들의 의견도 크게 세 개로 나누어져 있고 과반을 차지하는 의견은 없다.
 
따라서 제2 국민투표 실시는 노딜 브렉시트 위험이 더욱 커지고, 하원이 계속해 아무런 대책에 합의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계속될 때 마지막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의 향후 정치구도는 어떻게 될까. 보수당에서는 메이 총리가 사임하고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가 당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당은 계속하여 여전히 이 문제를 두고 극심한 당내 분열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조기총선이 치러질 수 있고 선거 결과에 따라 제2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경제 파급효과

경제 파급효과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 저지 수정안을 통과시켰으나 이는 법적 효력이 없다. 이제까지 총리는 관례로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방식에 관해서는 노르웨이형이나 캐나다형, 제2 국민투표 실시 등 어떤 안도 과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즉 EU나 영국 모두 이를 원하지 않지만 대안에 합의하지 못하고 탈퇴시한의 추가 연기도 되지 않아 브렉시트가 사고처럼 발생하는 경우다.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도 은근히 이를 원한다.
 
일단 EU 회원국 수반들은 21일부터 이틀 간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유럽이사회)을 열어 영국이 요청한 브렉시트의 연기를 검토한다. EU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단기-장기 연장으로 양분된다. EU는 영국 국내정치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점, 브렉시트 위기가 계속하여 EU를 물귀신처럼 물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아울러 영국 정치권이 몇 달 안에 브렉시트 난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EU는 영국에 명확한 브렉시트 일정표 제시 등을 요구하는 조건을 달아 비교적 길게 탈퇴시한 연기를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EU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비상조치 마련에 더 힘을 쏟고 있다.
 
스스로 원해서 EU로부터의 탈퇴를 결정한 영국이지만 아직도 탈퇴 방식과 탈퇴 후 EU와의 관계 설정에 관해서는 혼란만 이어지고 있다. 브렉시트 드라마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브렉시트는 앞으로 몇 년 간 국제 정치·경제의 불확실성을 더해주는 악재로 계속해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불확실성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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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