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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낑겨 서서, 낮술도…오사카 선술집 ‘만원의 행복’

박찬일의 음식만행 
 ‘서서 갈비’라는 상호를 검색하면 전국에서 272개가 나온다. 정작 진짜로 서서 마시는 가게는 딱 하나다. 우리가 보통 선술집이라고 부르는 대폿집의 본래 의미는 ‘서서 마시는 술집’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찾기 어렵다. 자료를 보면 구한말에도 유행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을지로 등지에 많았다. 조그만 탁자에 서서 막걸리며 막소주를 마시는 사진이 남아 있다. 목로주점이 선술집이었고 선술집이 목로주점이었다. 물론 모든 목로주점이 서서 마신 건 아니다. 아무래도 앉아 마시는 집이 많았다. 이제는 자세한 기록도 없고,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근자에는 노인들 대상의 선술집이 몇몇 명맥을 유지한다. 종로 3가 순라길 쪽에 서너 집이 있다. 막걸리 소주 공히 한잔에 1000원. 안주는 무료다. 지역의 장터에는 아직도 꽤 있다. 역시 거의 노인 상대이고, 일반적 문화는 아니다.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선술집이란 문자 그대로 서서 마시는 집이다. 일본 오사카에는 서서 마시는 술집이 정말 많다. 싸고 푸짐하고 정겹다. [사진 모비딕북스]

선술집이란 문자 그대로 서서 마시는 집이다. 일본 오사카에는 서서 마시는 술집이 정말 많다. 싸고 푸짐하고 정겹다. [사진 모비딕북스]

 
“다크닥스” 외치면 없던 자리가 생겨
 선술집은 훌륭한 음주문화다. 우선 가볍게 마신다. 서서 대취하기는 어렵다. 안주도 싸다. 탁자를 놓았을 때보다 두 배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원래 전형적인 노동 술집이다. 한잔 마시고 다시 일해야 하는 육체노동자들이 애용했다. 남대문시장에 선술집이 있었던 건 시장을 주름잡던 지게꾼 아저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거의 사라진 문화이지만 일본에선 요즘 더 성업한다. 거품 경기가 꺼지면서 늘었다. 혼자 마시기(히토리노미) 유행도 한몫했다. 일본은 ‘3노미(飮)’가 있다고 한다. 히토리노미(ひとり飮), 히루노미(晝飮·낮술), 다치노미(立飮)가 그것이다. 혼자, 낮술로, 그것도 서서. 삼위일체(?)다. 술맛 아는 꾼들의 암호다. 어떤 유명한 선술집은 아침 8시에 문을 연다. 9시 정도에도 금세 줄이 생긴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경악을 금치 못할 동네다. 
오사카 선술집에서 서서 술 마시는 사람들.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 선술집에서 서서 술 마시는 사람들.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大阪)는 일찌감치 완전경쟁을 하는 도시다. 도시는 작은데, 가게는 많고 손님들 주머니는 가볍고 술을 좋아한다. 싸게 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서 선술집이 많다. 남과 사귀기를 즐기는 오사카인의 성정에도 선술집이 어울린다. 혼자 가서 옆자리 사람과 친구가 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시비 붙고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다. 일본 어디를 가든 오사카 선술집처럼 싼 곳은 없을 것이다. 안주가 보통 100엔(약 1000원)에서 비싸 봐야 400, 500엔이다. 물론 양은 적다. 
 오사카 북쪽의 번화가 우메다(梅田)에서 남쪽 번화가 난바(難波)까지 고작 5㎞ 거리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짧은 공간에 사람이 몰린다. 오사카시 인구는 200만 명이 좀 넘지만, 위성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인구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이 좁은 블록에 몰려 술을 마신다. 가게가 ‘개미굴’처럼 다닥다닥 깊고 길게 붙어 있다. 더구나 오사카는 쿠이다오레(くいだおれ), 즉 먹다 망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미식의 도시다. 어느 가게를 가도 한 솜씨 한다. 상당수 선술집은 별로 깨끗하지도 않다. 싸고 맛있게! 위생은 더러 포기한다. 이런 오사카 선술집을 2년에 걸쳐 취재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선술집이라는 문화에 대한 탐구였다. 
선술집 대부분은 열 명 내외가 겨우 들어간다. 요리사가 요리하는 장면을 보면서 마실 수 있다. 몇몇 요리사는 팬층을 거느리기도 한다. [사진 모비딕북스]

선술집 대부분은 열 명 내외가 겨우 들어간다. 요리사가 요리하는 장면을 보면서 마실 수 있다. 몇몇 요리사는 팬층을 거느리기도 한다.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 선술집의 불문율이 있다. 새로운 손님이 오면 최대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의리다. 본디 선술집은 내 자리란 게 없다. 기다란 카운터에 10명이면 만석일 수도 있고, 그게 20명이 될 수도 있다. ‘낑겨’ 서서 마신다. 거기서 나온 말이 “다크닥스!”다. 사람들이 밀어닥쳐 자리가 없는 듯하면 누군가 이 말을 외친다. 그러면 홍해 갈라지듯 공간이 생긴다. 다크닥스(DARK DUCKS)는 60∼70년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남성 중창단이다. 이들은 죽 늘어서서 노래하는데 화면에 모두 나오기 위해 비스듬히 서서 율동 하며 노래했다. 한국의 같은 남성중창단 ‘별 셋’의 포즈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비스듬히 서면 자리가 더 생길 수밖에 없다. 탁자 석만 있는 가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더 많은 손님을 받고, 불편한 대신 안주의 질과 가격으로 보답(?)한다.  
 
 서열문화 센 일본, 색다른 평등 의식
 오사카의 싼 술집을 이르는 말은 참 많다. 다치노미, 가쿠우치(角打ち), 센베로(千べろ), 완코인 등이다. 다치노미는 앞서 설명한 대로. 가쿠우치는 원래 주류도매상에서 대충 술 상자를 깔고 통조림과 과자 부스러기, 멸치 등으로 가볍게 술을 마시는 문화에서 시작된 업태다. 당연히 값이 ‘엄청나게’ 싸다. 물론 서서 마신다. 
오사카 선술집 풍경.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 선술집 풍경. [사진 모비딕북스]

 센베로는 독특한 조어다. 센은 천(千)의 일어 발음이다. 베로는 ‘베로베로(べろべろ)’ 즉 심하게 취했다는 뜻의 일본어다. 합성해서 센베로가 되었다. 1000엔(약 1만원)에 심하게 취할 수 있는 집, 즉 염가 술집을 말한다. 이런 센베로도 거의 서서 마신다. 안주 200엔 이하, 생맥주와 각종 주류, 오사카인이 즐기는 하이볼(위스키와 탄산수 칵테일)도 비슷한 가격이다. 만원에 취한다는 말이 뻥이 아니다. 술 서너 잔에 안주 두어 가지를 먹을 수 있으니. 
 완코인(One Coin)은 불황기에 생긴 유행으로 500엔(약 50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술과 안주를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 술 한 잔에 안주 하나를 끼워준다. 더러 술과 안주를 합쳐 세 가지를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남기나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한국과 달리 기본 안주를 깔아주지 않는다. 김치는 오사카 어디든 술집에서 파는 편인데, 작은 접시에 300, 400엔 하는 고가 안주다. 단무지 서너 점을 내주어도 200엔을 받는다. 
오사카 선술집 안주는 싸다. 양이 적은 편이어서 보통 여러 안주를 시켜 먹는다.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 선술집 안주는 싸다. 양이 적은 편이어서 보통 여러 안주를 시켜 먹는다. [사진 모비딕북스]

 한번은 ‘기무치 오징어’라는 게 있어서 도대체 무슨 안주인가 궁금해 시켜봤다. 나온 건 오징어무침. 오사카에서 ‘빨갛고 매운 것’은 기무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200엔 정도 받는다. ‘나무루’라고 해서 한국식 나물을 내기도 한다. 물론 돈을 받는 정식 안주다. 작게, 조금씩. 대신 모든 안주에 가격이 붙어 있다. 한국처럼 먹으면 돈이 꽤 나온다. 일본 선술집의 보이지 않는 함정이다. 
 선술집 중에는 여러 가지 제약을 두는 집이 많다. 워낙 박리다매이다 보니 뭔가 룰을 만드는 것이다. 90분 시간제한, 휴대폰 보는 것 금지 등이다. 가능하면 먹고 마시는 데 집중해달라는 말이다. 마실 만큼 마셨으면 퇴장해서 다른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 그래야 우리도 먹고산다는 뜻이다. 서로 이런 의의(?)에 동의하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없다. 알아서 가능한 한 빨리 마시고 자리를 비켜준다. 그게 선술집의 의리다. 
오사카에는 재일교포 영향을 받은 음식이 많다. 구이용으로 양념에 절인 소 내장.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에는 재일교포 영향을 받은 음식이 많다. 구이용으로 양념에 절인 소 내장. [사진 모비딕북스]

한국 동포의 영향으로 돼지족발을 파는 집도 많다. [사진 모비딕북스]

한국 동포의 영향으로 돼지족발을 파는 집도 많다. [사진 모비딕북스]

 오사카 선술집의 인기 안주 중에 야키니쿠(焼肉)와 곱창 조림이 있다. 우리 재일교포가 퍼뜨린 음식이다. 한국계 3, 4세인 주인도 꽤 있어서 한국 음식을 안주로 내는 게 더 흔한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덴노지(天王寺) 근처의 ‘모리타야(森田屋)’라는 술집에 갔더니 주인이 “나도 한국인입니다”하며 삐뚤빼뚤한 글씨로 자기 이름을 써 보이기도 했다.  
 여성도 혼자 와서 마신다. 이상하게 보는 문화가 없다. 젊은 여성이 장년의 아저씨와 말벗하며 잔을 기울이는 걸 보기 어렵지 않다. 일본처럼 서열문화가 강한 나라에서 선술집에서 드러나는 이런 ‘평등 의식’은 상당히 이채롭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선술집에서 대체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 번화가 술집과 식당에서는 더러 혐한을 겪은 이들이 있다고 한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서 생기는 경우다. 일본인만 가는 숨은 집에서 대체로 환대받았다. 신기하게 생각한다. 일본은 밉지만, 시민은 다르다. 대체로 사교적이고 선하다. 공짜 술잔이 날아오고, 더러는 술값을 대신 내주는 사람도 있었다. 서툰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일본 도시가 오사카다. 기왕 놀러 가신다면 기꺼이 서서 마시는 문화도 접해보면 좋겠다. 일본어를 몰라도, 현지인의 선술집에 섞여 마시노라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선술집이 부활(?)하면 좋겠다. 주머니 가벼운 시민이 잔술 서로 건네며 즐겁게 마시는 그런 현장이 그립다.
 
박찬일 chanilpark@naver.com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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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