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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같은 美, 황금기회 날렸다" 北, 기자불러 선전포고 반격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북ㆍ미 협상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이날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북한)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이런 식의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통상 자신들의 입장을 성명이나 자국 매체를 통해 밝혀 왔는데 기자회견을 연 건 이례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과 미국이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라는 목표에는 일치된 입장을 보이면서도 방법론을 놓고는 각자 단계적 비핵화(북한)와 일괄타결을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 왔다”며 “최근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대북 제재 압박을 강화하자 북한이 반격에 나서는 차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화의 판을 깬다기보다 미국의 당국자들이 나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최 부상을 내세워 압박한 뒤 미국의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1일 새벽 회담 결렬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의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1일 새벽 회담 결렬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의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히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4일 (현지시간) 뉴욕을 찾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표들에게 “북한이 다른 길(협상에서 이탈)을 가지 않도록 협조”를 구한 직후 이런 입장을 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국이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백기(일괄타결)를 들도록 하겠다는 압박에 대한 '차단막'이자, 비건 대표가 '다른 길'로 표현하며 북한의 협상 이탈에 대해 우려하자 '그럴 수 있다'며 '치고 나가기' 성격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에 대해 최 부상이 모라토리엄을 거둬 들일 지 말지를 김 위원장이 곧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미국의 '아픈 곳' 찌르기 일환이다.
 
하지만 북한의 반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 정상회담이 결렬(지난달 28일)된 이후 약 보름 동안 나름 심각한 고민 끝에 최 부상이 등장했고, 김 위원장의 입장과 결심 여부를 수차례 언급한 것도 향후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는 일종의 암시일 수 있다. 최 부상의 기자회견(협상 중단 가능성)→김 위원장의 등판(협상 중단 또는 새로운 길 선언)→인공위성 등 무력시위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동계획’이 만든 뒤, 명분 쌓기 또는 미국의 의중을 떠보는 행동이란 얘기다. 
 
실제 최 부상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15개월 동안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중단하는 등 변화를 보여준 것에 대해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타협을 하거나 대화를 이어갈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미국의 기이한(eccentric) 협상 태도에 곤혹스러워했다”고 전하면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 “미국은 그들 스스로의 정치적 이해를 추구하느라 바빴지 결과를 내기 위한 진실한 의도를 갖고있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당시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비타협적인 요구를 하는 바람에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졌다며 “이들이 적대감과 불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책임을 돌렸다.
 
이날 최 부상이 밝힌 김 위원장의 입장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파악된 게 없다. 단, 최 부상이 기자회견에서 협상 중단이라는 강력한 논조를 사용한 점을 고려하면 부정적인 기류가 읽힌다. 최 부상도 “(하노이에서)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국무위원장은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다시 이런 기차 여행을 해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고 전한 뒤 “미국의 강도 같은(gangster-like)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번에 황금같은 기회(a golden opportunity)를 날려버렸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북ㆍ미 협상의 필요성을 재검토할 수 있다”라거나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밝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최 부상이 지난 1일 하노이 현지에서 언급한 “(김정은 위원장이)북ㆍ미 협상에 의욕을 잃었을 수 있다”고 한 것도 힌트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모라토리엄이나 향후 북미 협상과 관련해 입장을 정하면서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새로운 길’을 고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올해 정책 대강을 밝히는 신년사에서“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려 들고 공화국(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을 수용할 수 없고, 자신들은 협상을 통해 비핵화로 나설 뜻이 있지만, 미국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선 대화를 이어 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제재와 압박이 계속된다면’이라는 조건부를 달았는데, 최근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을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됐다'고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뭔가를 해보려 했지만, 너희(미국)가 계속 이런 식이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취지로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로 압박 강동를 높이거나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북한이 새로운 길에 대해 북한이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면서도 “북한은 비핵화의 길로 가기 위한 협상이 자신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핵보유국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북한이 당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에 나서기 보다는 일단은 미국의 반응을 지켜볼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은 경제 회복에 ‘올인’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대북제재가 풀려야 하고, 미국과의 협상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여전히 미국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최 부상이 김 위원장을 언급하며 반발하는 모양을 취한 건 북한의 입장을 받아 들여 회담을 하자는 목소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위원장은 “북한이 당장 회담의 판을 깬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점을 잘 알 것”이라며 “일단 말로 압박 수위를 높인 뒤, 협상 거부나 핵 개발 등으로 나설 수 있다는 식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한 두 차례 더 위협 강도를 높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래도 미국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실제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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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