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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까지 간 낚시꾼 스윙 최호성 "하이에나 보고 싶었다"

사파리에 가서 기린을 보고 있는 최호성. 그는 기린보다는 하이에나를 보고 싶었다고 했다. [최호성 페이스북]

사파리에 가서 기린을 보고 있는 최호성. 그는 기린보다는 하이에나를 보고 싶었다고 했다. [최호성 페이스북]

아프리카 고원에서 낚시꾼 스윙 최호성(46)의 주위에 60명 정도의 갤러리가 따라 다녔다. 한국 교포가 절반을 넘었지만 케냐인들도 많았다. 자신의 핸디캡이 2라는 밴슨 은둥가는 “최호성을 응원하러 왔다. 실력도 좋고 즐거움도 주는 뛰어난 선수이며 이 대회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최호성이 안 왔다면 골프장에 안 왔을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낚시꾼 스윙 최호성이 떴다. 최호성은 14일 케냐 나이로비의 카렌 골프장(파71)에서 벌어진 유러피언투어 케냐 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했다.
 
케냐 한인 골프회에서는 우산과 플래카드를 맞춰 나왔다. 이 플래카드 중 일부는 케냐인들이 들고 다녔다. 조슈아라는 현지인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최호성을 알게 됐다. 늦게 시작했고 역경도 많았지만 이를 극복한 뛰어난 선수라서 우승하기를 빈다”고 말했다. 
 
한인 골프회장 성낙동씨는 "케냐인들이 플래카드를 달라 그래서 들고 다니더라. 교민들은 한국 선수가 와서 힘이 나고 우승하면 더 큰 힘이 생길 것 같아서 함께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호성의 운이 좋지 않았다. 딱딱한 페어웨이에 맞고 러프로 굴러간 공이 많았다. 홀을 살짝살짝 스친 퍼트도 몇 개 나왔다. 최호성은 “러프가 겉보기엔 길지 않은 것 같은데 실제로 쳐보면 사자 갈기처럼 억세서 거리 조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호성은 이날 2오버파 73타를 쳐 공동 75위에 머물렀다.
경기 후 최호성과 인터뷰를 했다.  
 
보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표정은 항상 밝더라.  
“우산에 내 이름 새기고 플래카드까지 들고 오신 분들의 응원을 보니 인상 쓸 수 없었다. 성적을 잘 내야 했는데 골프가 마음 같이 잘 안 된다.”
케냐 교민들이 최호성 응원 문구가 새겨진 우산을 들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성호준 기자

케냐 교민들이 최호성 응원 문구가 새겨진 우산을 들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성호준 기자

 
고도가 높아서 거리가 더 나갈텐데.  
“거리도 거리지만 워낙 땅이 건조하고 해서 런이 많다. 그린이 작아서 정확한 거리 계산을 못하면 힘들다. 그린 주위 러프가 사자 갈기처럼 거칠다.”  
 
지난해 5월 한국 오픈에서 낚시꾼 스윙으로 화제가 된 후 미국과 유럽 투어에 나가는 등 꿈같은 시간을 지내는 것 같다.  
“내 골프 인생 최고의 시기다. 많은 팬들 덕분에 이렇게 다닐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팬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아프리카가 처음이지 않나.  
“그렇다. 생각 외로 많은 분들이 표정도 밝고 친절하고 음식도 잘 맞더라. 사파리에 갔는데 초식 동물은 많이 봤지만 육식 동물은 거의 못 봤다.”
 
사파리에서 왜 하이에나를 보고 싶다고 했나.  
“동물원에 가면 사자도 호랑이도 있는데 하이에나는 없더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하이에나를 보고 싶었다. 이번에 사파리에 가서 육식동물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러나 초식 동물도 덩치가 크고 전투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육식동물도 힘들겠더라.”  
 
최호성 프로도 어려움 속에서 스타로 성장했는데 이미지가 비슷한 동물이 있는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다. 나와 비슷한 동물은... 글쎄. 나는 나다.”  
 
케냐에서까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사진 찍어 달라는 사람도 많은데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나.
“사인도 많이 하고 기념 촬영도 많이 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한국, 일본, 또 다른 나라의 팬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나의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해달라는 것 다 응해주려고 노력한다.”
 
"스타가 됐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40대 중반을 넘었는데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 어떻게 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힘들지 않느냐고 얘기하는데 제 나이가 마흔 몇 살이라고 생각 안한다. 예전에는 120kg짜리 역기도 들고 스쿼트도 하는 등 충실히 훈련했다. 요즘은 부상도 있고 하니 80kg 정도 든다.  
 
산에 높이 올라가면 보이는 게 많다. 스타가 돼서 달리 보이는 게 있나.  
“그렇지 않다. 높이 올라왔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다.”  
 
미국 여행도 처음 가고, 아프리카 여행도 하니 부인이 좋아하겠다.  
“집사람과 함께 다니니까 말동무도 되고 좋다.”
 
미국 PGA 투어 대회에선 어땠나.  
“굉장했다. 미국 팬들의 응원이 되게 열정적이었다. 한국 말을 배워 와서. ‘들어가’, ‘가자’. ‘파이팅’ 등을 해주시더라. 한국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화제의 인물인데 아직도 모자에 스폰서가 없다.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가보다. 저 나이 잊고 삽니다. 스물 다섯 살 때 골프를 시작했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스물 다섯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나이로비=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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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