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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누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망쳤나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지난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마자 회담에 관계해온 당사자들간 책임 전가 게임이 시작됐다.일부 청와대 관계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했다. 북측이 영변 핵연구단지 폐쇄를 제안했는데, 볼턴이 다른 지역의 또 다른 우라늄 농축시설도 폐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마지막 순간에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볼턴의 성향을 고려할 때 그가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하거나 독소조항 검증 기준을 제안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노이 회담을 ‘외교적 돌파구이자 남북 경협 재개의 단초’로 삼고 싶어했던 문재인 정부가 실패의 책임을 물을 희생양을 필요로 했을 수는 있다.하지만 이런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북한은 일단 일본을 비난했다. 아베 총리와 볼턴의 관점이 상통할 수도 있지만 일본 정부 역시 한국만큼이나 회담 결렬에 놀라워했다. 북한이 일본을 탓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쉽다. 북한 체제선전에 있어 일본은 언제나 가장 만만한 표적이었다. 또 일본을 악역으로 지목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고, 북·미회담 재개 가능성을 타진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피하는 추가적인 효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기간 중 그의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의회에 불러 청문회를 연 민주당을 비난했다. 트럼프는 지난 3일 트위터에 “민주당은 중요한 핵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간에 유죄를 선고받은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인 코언의 청문회를 열어 미국 정치에 새로운 저점을 찍었고, 이것이 내가 회담장에서 걸어나온 것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 진행 중 나온 코언의 당혹스러운 진술 탓에 미국 대통령이 한층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는 주장을 북한이 납득할 것 같지는 않다.
 
글로벌 포커스 3/15

글로벌 포커스 3/15

일본, 볼턴, 코언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등은 복합적으로 작용해 회담 결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요소가 됐을 수 있다. 그러나 결렬의 가장 명백한 원인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이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참신한 새 지도자’로 세상에 소개하려고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사시키려 한 협상 내용은 근본적으로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이 제시했던 거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애매모호한 문구로 표현된 제한적인 핵 폐기 약속과 세분화된 검증 절차를 거치는 영변 핵연구단지 동결, 2008년 영변 냉각탑이나 2018년 서해 미사일 발사장처럼 복구하기 쉬운 소규모 핵관련 시설의 상징적인 폭파, 실질적인 대북제재 완화,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 인정 등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톱 다운 방식의 외교를 성사시킬 배짱이 있기 때문에 대북관계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상간 담판은 김씨 일가의 전통적인 각본에 포함된 내용이다. 2000년 김정일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통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회담을 제안했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때도 여러 중재자들을 동원해 북·미 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했다. 클린턴과 부시는 북·미 정상회담을 거절했다. 유의미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위한 진전이 이루어진 다음에 회담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관계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협상가적인 역량을 확신했다. 다행히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실 감각을 충분히 주입시켰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역사적인 비핵화를 주창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싱가포르 회담의 ‘성과’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거둔 성과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동결 대 동결’(freeze-for-freeze) 합의밖에 없다. 2017년 유엔 미국대사는 중국이 이와 똑같은 ‘동결 대 동결’ 제안을 했을 때 유엔의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조치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수 차례 위반한 북한의 비합법적인 행동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모욕적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것은 18개월 전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가차없이 거절했던 ‘동결 대 동결’ 조치뿐이다.
 
역사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외교를 성공적으로 평가할 것 같지는 않다. 김 위원장이 평화와 번영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북·미간 대화가 재개될 때는 지금보다 더 현실적 관점으로 회담에 임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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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