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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경제의 또다른 이름 ‘가스경제’가 몰려온다

독일 등 서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할 새로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노르트스트림2’에 쓰일 자재들이 독일 북부 항구도시 사스니츠에 쌓여있다. [AP=연합뉴스]

독일 등 서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할 새로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노르트스트림2’에 쓰일 자재들이 독일 북부 항구도시 사스니츠에 쌓여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일 찾은 경기도 화성의 한국지역난방공사 동탄지사.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보안구역이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옥상에는 16개의 거대한 환풍구가 있고 벽 안쪽에는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건물이 도로를 따라 길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해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집단 에너지 시설’인 열병합발전소의 일부다. 그런데 한쪽으로 발전소와 어울리지 않는 주차타워 모양의 건물 두 동이 서 있다. 3층 높이의 건물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자세히 보니,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3X8×2m 크기의 ‘컨테이너’가 내부에 가득 들어차 있다. 1층에 1개, 2층과 3층에 각각 6개로 한 동당 13개. 두 동을 합치면 총 26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노란색 파이프가 각각의 컨테이너로 직접 연결돼있다.
 
이 컨테이너의 정체는 천연가스 기반 수소연료전지다.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수소와 공기를 반응시켜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친환경 에너지 발전소다. 천연가스를 태워 물을 데우고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기존의 열병합발전소와는 다르다. 발전 능력 11.44MW(열생산8.8Gcal/h) 규모로, 연간 약 9만MWh의 전력은 전력거래소를 거쳐 수도권 약 2만5000가구에 공급하고, 열은 동탄 내 약 9000세대에 직접 공급할 예정이다. 천연가스는 동탄에서 오산 방향으로 약 6㎞ 지점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시설에서 직접 공수한다. 연료전지에 연결된 노란색 파이프가 바로 천연가스 공급로다.
 
 
이산화탄소 배출 적은 천연가스 각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수소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수소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스 경제(Gas Economy)’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에 힘입어 2017년부터 천연가스 순수출국으로 변신하는 등, 세계적으로 석유를 무기로 한 중동 국가에서 천연가스 생산을 확대하고 있는 미국·러시아 등으로 에너지 패권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처로 친환경 발전 바람이 불면서, 석탄·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가 각광받는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가스경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난 1월,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0년 수소차와 연료전지에서 모두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수소차 보급을 올해는 4000대까지 늘리고, 2022년 8만1000대, 2030년 180만 대를 거쳐 이후 수백만 대 시대로 빠르게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또 동탄과 같은 연료전지발전소를 2040년까지 총 17.1기가와트(GW) 규모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현재 314MW 수준인 연료전지 용량의 약 54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를 위해 2040년까지 수소 공급 능력을 총 526만t까지 키운다는 구상도 세웠다.
 
문제는 이 많은 수소를 어떻게 생산하느냐다. 우주의 75%가 수소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에서 수소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H₂O)이나 메탄(CH₄)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가스 등에 포함돼 있다. 수소경제는 무공해 청정 에너지를 표방하지만, 당장 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천연가스 개질(改質) 뿐이다.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부생(副生)수소도 있지만, 연료전지에 쓸 수 있는 양은 10만t에 불과하다. 태양광과 같은 수(水)전해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려면,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기술을 더 쌓아야 한다. 결국 가스경제는 수소경제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박호정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는 “물(H₂O)에서 수소(H)를 추출하는 수전해 수소와 태양광·풍력·수력 등 무공해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수소사회의 이상향’이지만 당장은 경제성과 안정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성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과 사무관은 “(수소경제) 초기에는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와, 천연가스 등을 변환해 얻는 ‘추출수소’를 중점적으로 이용하고, 향후 호주·일본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 수소’와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수전해 수소’의 비중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기지 보유 … 한국 가스 인프라 탁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이 당분간 가스경제로 갈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지구촌 전체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파리기후협약에 있다. 협약 준수의 현실적 대안도 원자력 발전이 아니면 태양광 또는 천연가스 발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탈(脫) 원전 정책을 고수한다면 선택지는 더욱 줄어든다.
 
천연가스는 이처럼 수소경제를 선언한 정부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강희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단일기지로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저장능력을 보유한 평택 LNG 터미널을 비롯해 LNG 저장 탱크만 총 72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여기에다 총 4790㎞에 달하는 주 배관을 통해 전국 75%가 넘는 지역에 천연가스를 보급할 수 있는 등 연결성도 뛰어나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에는 현재 운영 중인 압축천연가스(CNG) 충전소도 200여 개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22년 310개소, 2040년 1200개소가 필요한 수소차의 충전소의 경우 이 같은 전국적 가스 보급망을 이용하면, 기존에 있던 가스 충전소에서 개질기를 설치해 ‘온-사이트(On-site)’ 수소 충전소를 세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정부도 천연가스 공급망과 수요지 인근에 수소 생산기지를 구축 등 관련 인프라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들어선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주된 미션 중 하나도 한국과 러시아 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연결이다. 김효선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에너지분과장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되는 천연가스(PNG)는 LNG에 비해 액화공정 등 비용이 적게 들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향후 남북관계가 더 진전되면, 한국도 러시아와 북한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은 어떨까. 전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탄소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덕분에 천연가스 수요는 연평균 1.6%씩 꾸준히 높아져 2040년 전력생산 및 산업부문 모두에서 45% 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20년 뒤 세계 에너지 수요의 4분의 1을 천연가스가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2017년 “세계 최초로 수소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국제 수소공급망을 구축하고,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생산기술을 확보한다는 로드맵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은 한국처럼 천연가스에 의지하고 있다. 일본 수소시장 전망치에 따르면 2030년에 1차 에너지 공급량 중 천연가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으로 원자력 등의 순이다.
 
 
한국·러시아 간 천연가스관 연결도 대안
 
가스경제를 뒷받침할 천연가스는 얼마나 있을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확인된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은 1432억t(2017년 기준)으로, 연간 약 27억t이 생산·소비되는 것을 고려해볼 때 향후 5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셰일가스의 잠재적 매장량까지 고려하면 향후 200년까지도 천연가스를 쓸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매장량으로는 러시아가 가장 많은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이란-카타르-미국-사우디아라비아 순이다(2017년 기준). 하지만 생산량 기준으로 보면 순서가 달라진다. 미국은 풍부한 셰일가스 개발을 바탕으로 2009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다음으로 러시아-이란-카타르-캐나다 순이다.
 
미국의 셰일가스는 2040년 전세계 천연가스 공급의 60%를 차지할 전망이어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러시아도 만만치 않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수출은 세계 1위로 시장 점유율이 29%를 점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러시아산 가스 의존율은 절대적이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가스 수입의 51%를 러시아에 의존하며, 오스트리아·핀란드·헝가리는 수입가스의 100%가 러시아산이다. 북방경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역시 러시아에 기대볼 만 하다.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천연가스가 기존 석탄·석유에 비해 친환경적인 것은 맞지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인 것은 분명하다”며 “가스경제가 장기화할 경우,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경고한 환경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는 만큼 완전한 수소경제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준호·허정원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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