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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빠지니 원룸 70% 텅텅···군산, 미래 먹거리가 없다

[나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현대중공업·GM 떠난 군산의 2년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GM 공장이 잇따라 문을 닫은 군산의 고통이 길어지고 있다. 공장 인근 원룸단지의 공실률은 70%에 이르고 최근 2년 간 5000명이 군산을 떠났다. 사진은 문닫은 GM공장. [프리랜서 장정필]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GM 공장이 잇따라 문을 닫은 군산의 고통이 길어지고 있다. 공장 인근 원룸단지의 공실률은 70%에 이르고 최근 2년 간 5000명이 군산을 떠났다. 사진은 문닫은 GM공장. [프리랜서 장정필]

월요일 오후, 한창 바쁘게 돌아가야 할 군산공단은 한산했다. 기계 소리는 멎어 있었고 다니는 화물차도 드문드문했다. 공단의 두 축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GM 자동차 공장이 각각 재작년 7월과 지난해 2월 문을 닫은 후폭풍이다. ‘중공업’ ‘정공’과 같은 간판을 단 주변의 협력업체들도 한산했다. 주차장이 굳게 닫힌 공장이 많았고 그나마 문을 연 공장에서도 직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단 관계자는 “협력업체들 30%가량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 업체의 가동률도 절반 정도”라며 “올해 안에 무슨 수가 나지 않으면 모두 함께 죽을 판”이라고 말했다.
 
공단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오식도동 주거단지의 모습도 비슷했다. 동사무소와 우체국, 파출소를 중심으로 660여곳의 원룸 건물이 몰려 있지만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장 직원 수천 명이 빠져나가며 공실률이 70%에 달하기 때문이다. 재작년 월 35만원이던 원룸 임대료는 요즘 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길거리 상가엔 ‘임대·매매’를 알리는 전단이 수두룩했다. 한 주민은 “문 닫은 곳이 반이고 나머지도 영업하지 않은 곳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한때 6~7억원을 호가했던 이곳의 원룸 건물값은 요즘 3억원 아래까지 추락했다. 이곳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오재승씨는 “밤이면 주인들이 버리고 떠나간 개와 고양이들이 길거리를 점령한다”며 “태양광이니 전기차니 장밋빛 약속이 난무하지만 실제 이뤄지는 건 없으니 ‘희망 고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얼어붙은 경기는 공단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랫동안 구도심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중앙동. 빵으로 유명한 이성당 제과점을 비롯해 군산의 오랜 명물 음식점과 옷가게 등이 밀집한 곳이다. 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경기 한파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환하게 불을 켠 가게 안엔 사람이 없었고 드문드문 행인들 중 젊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번영로 변에서 월드컵주유소를 운영하는 권옥현 대표는 “원래 3월은 사람 구하기 힘든 달인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며 “알바 공고를 냈더니 바로 20대 청년이 와서 물어보니 한국GM 하청공장에서 해고된 20대 도장공이었다”고 씁쓰레해 했다. 한때 ‘서울보다 임대료가 비싸다’고 했던 신시가지 수송·나운동의 사정도 예전만 못하다. 오래된 상가는 물론 새로 지은 상가 1층에도 빈 상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가 임대료가 최고 30%가량 떨어졌지만 손님들이 더 많이 빠져나간 탓이다. 한 주민은 “현대중공업·한국GM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직원들이 사라지면서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실제 군산 전체의 경기 지표는 날로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군산시 고용률은 53.1%로 전국 평균(60%)에 한참 못 미쳤다. 경기 과천(52.3%)에 이어 전국에서 둘째로 낮다.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있던 군산국가산업단지의 고용인원이 최근 2년 새 5000명 줄어든 여파다. 특히 15세에서 49세 사이 청장년층 취업자가 6000명 가까이 줄었다. 이들은 지역에서 실업급여를 받거나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군산 지역 실업급여 신청자는 2년 새 1600명 증가한 7395명에 달한다. 같은 시기 군산 인구도 5000명 가까이 감소했다. 군산시청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GM 사태로 실직한 이들에게 지급되는 실업급여가 지난달로 마감돼 지역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군산 땅값은 1.13% 하락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군산을 ‘산업위기특별대응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했다. 근로자 재취업과 대체산업 육성 등 각종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0월엔 대통령이 새만금 간척지를 직접 방문해 3GW급 태양광 발전단지와 1GW급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선 새만금국제공항을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사업으로 지정했다. 2023년엔 세계 짐보리 대회를 새만금에서 열기로 했다. 얼마 전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형 일자리’를 본 따 전북도와 군산시에선 ‘군산형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숱한 약속들이 ‘희망 고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눈에 띄게 실행되는 게 없고, 실행되더라고 경기 활성화 효과가 의문스럽다는 이유에서다. GM 공장 매각만 해도 당초 예상과 달리 2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면서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는 상태다. 짐보리 대회는 올림픽처럼 일회성이어서 장기 효과가 의문스럽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도 2개 업체가 입주 의향을 밝힌 정도라 아직 움직임이 미약하다. 더구나 지역 재계와 주민들은 대체 에너지 사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다. 일자리의 수나 질에서 전통 제조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군산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는 서원아스콘 심재왕 대표는 “우리도 태양광 발전 시설을 두 곳 가지고 있는데 패널을 조립해 땅에 설치하는 것으론 일자리 창출이나 지속 효과가 없다”며 “현대중공업 같은 우량 제조업이 들어오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새만금국제공항 역시 의문부호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군산시와 새만금개발청은 ‘해양 중심도시의 허브 공항’을 지향해 다른 지방 공항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장 승객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새만금개발청은 2025년 190만명, 2030년 402만명의 항공수요가 발생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했지만, 국토부는 지난해 4월 2025년 67만명, 2055년 133만명의 수요를 내다봐 차이가 크다.
 
그렇다고 침체한 경기 속에서 우량 대기업이 군산에 새 공장을 지을 걸 기대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군산 시민들이 재가동을 원하는 현대중공업만 해도 조선 수주 물량 침체에 대우조선해양 인수까지 겹쳐 사정이 복잡하다. 군산시와 시민들의 거듭된 독촉에도 현대중공업은 “시황이 개선돼 울산조선소의 4·5·H도크가 꽉 차야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이 가능할 것”이라며 “노력하겠다”는 말만 거듭하고 있다. 군산시민들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군산조선소가 재가동 될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울산과 거제조선소의 생산력 확대로 오히려 재가동 가능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군산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현실은 날로 어려워지는데 미래가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외부에 기대기엔 경기가 너무 어렵고, 혼자 힘으로 버티기엔 너무 힘겹다. 국가의 약속대로 투자가 이뤄진다 해도 “당장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는 하소연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업이 떠나고 기술을 가진 젊은이들의 따라 이탈하면서 산업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서울과 군산을 오가는 길 내내 눈 앞을 가리는 미세먼지와 봄 가랑비가 군산의 답답한 마음처럼 느껴졌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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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