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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청각장애인도 운전하는 말레이시아 공유차 ‘그랩’

 지난해 말 세계 3대 승차공유 플랫폼인 ‘그랩’의 산실인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택시·승용차·승합차 등 각양각색의 그랩 차량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차량이 있다. ‘I AM DEAF(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라는 라벨이 붙은 차량이다. 이용객들은 앱을 통해 청각 장애인이 운행하는 차량을 선택할 수 있다. 승객 입장에선 앱을 통해 목적지 설정, 결제까지 한 번에 되기 때문에 굳이 기사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기사 입장에서도 내비게이션을 따라 정해진 목적지까지 운행하면 된다. 대화를 할 일이 있으면 앱을 통해 승객과 바로 채팅이 가능하다. 하나의 혁신적인 플랫폼이 누군가에게 완전히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랩 차량 내부에 걸린 운전 기사가 청각장애인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사진 그랩]

그랩 차량 내부에 걸린 운전 기사가 청각장애인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사진 그랩]

 이런 그랩도 초기엔 택시 기사와의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일단 서비스를 출범시킨 뒤 그랩이 운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그랩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그랩에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랩의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랩 기사들에 대한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에 그랩은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기사와 차량을 확보하기 위해 보험ㆍ차량 수리 등의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상생 모델을 만들었다. 그 결과 그랩은 누적 투자액 9조8000억원을 달성하며 유니콘을 뛰어넘는 데카콘(100억 달러 이상 투자 유치)을 넘보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런 그랩의 상생 모델은 이제 막 카풀 서비스의 첫발을 뗀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선 택시 기사의 분신자살 등 오랜 갈등 끝에 출퇴근 시간 2시간씩 카풀을 허용하는 타협안이 최근 도출됐다. 택시 기사는 택시 규제 완화라는 보상을 얻었다. 합의안 중 주목할만한 부분은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다.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지 못했지만, 택시를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여 효율적인 배차와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로 택시 기사들의 수입을 늘려주겠다는 게 핵심 취지다. 업계에선 완화된 택시 규제를 바탕으로 택시 기사들이 유휴 시간에 꽃 배달이나 음식 배달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택시 기사 입장에서 주된 수익원(택시 운영 수입)을 나눈 대가가 연료비도 안 빠지는 배달업이라면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배달업은 오토바이 등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높다고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게 될 카카오모빌리티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이 혁신적인 플랫폼이 혁신적인 일자리를 낳는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 택시 기사의 신뢰를 바탕으로 규제 완화의 선순환을 끌어내야 한다. 그랩의 ‘상생’을 배울 때 한국판 그랩이 나올 수 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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