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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출산장려금 역설…179억 썼는데 아이들 1700명 떠났다

 지방이 위기다. 저출산ㆍ고령화ㆍ저성장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나라 전체 인구는 아직 증가세지만 지방에선 자연 사망이 출생을 압도한다. 여기에 젊은이가 돈과 꿈을 찾아 도시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접 4개 시군을 묶어도 서울 한 개 구 인구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지방은 텅 비었다. 이대로 가면 지방 소멸은 불 보듯 뻔하다. 2040년에 지자체의 30%가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공동체 유지가 어려운 한계 마을은 점(點)에서 선(線)으로, 면(面)으로 퍼지고 있다. 반면 국토 면적의 12%인 수도권은 거의 모든 게 조밀하다. 사람, 돈, 의료, 문화시설이 쏠려 있다. 지방 쇠퇴, 수도권 중심의 극점(極點) 사회는 눈앞의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위기의식은 엷다. 정책이 지방 재생의 대계보다 토건 국가형 대형 SOC 투자, 도시 재생에 무게가 가 있다. 그나마 일부 사업엔 정치 논리도 꿈틀거린다. 지방 소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가. 정부나 지자체 정책에 문제점은 없는 것일까. 지방 회생의 처방전은 있는 것일까. ‘지방 붕괴…재생의 길을 찾아서’ 시리즈를 통해 지방의 현주소와 대안을 짚어본다.  
 
지난 5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공공산후조리원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공공산후조리원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땅끝마을’로 널리 알려진 전남 해남군 내 해남종합병원. 4층의 산부인과 병실 6개 중 5개는 비어 있었다. 군내 임산부 상당수가 목포나 광주 등 인근 도시에서 원정 출산을 하기 때문이라고 병원 관계자는 귀띔했다. 병원에선 지난해 1월 개원 이래 14개월간 46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해남에서 유일하게 전문의와 분만시설을 갖췄지만 한 달 평균 출생아가 3.2명이다. 지난해 출생자 수(513명)에 견주면 내원객이 너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지만 분만실이 아예 없는 지역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지아 수간호사는 “병원시설이나 의료진에 대한 산모들의 만족도가 도시 못지않다”며 “6개 병실이 모두 찰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해남은 전국에서 합계 출산율(여성 한명이 평생 낳는 출생아 수)이 가장 높은 지자체다. 2017년 2.1(전국 평균은 1.05)으로 6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파격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펴온 덕분이다. 그러나 해남의 인구는 내리막길이다. 출산장려금을 받은 아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데다 고령화에 따른 자연 사망자가 늘면서다. 해남은 출산장려금의 역설과 자연 사망이 출생을 압도하는 지방의 현실이 응축돼 있다.  
 
 
해남군의 '합계출산율 6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3일 해남읍내에서 열린 '아이사랑 유모차 축제' 모습. [사진 해남군]

해남군의 '합계출산율 6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3일 해남읍내에서 열린 '아이사랑 유모차 축제' 모습. [사진 해남군]

 
해남군이 본격적인 출산 지원정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당시 전국 최초로 출산 정책팀을 꾸리고 파격적인 대규모 출산장려금을 지급했다. 2012년부터는 첫째 아이 300만원, 둘째 350만원, 셋째 600만원, 넷째 이상 7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산후조리원 비용도 최대 70% 할인해주고, 난임 부부 시술비나 임신부 초음파 검사비까지 지원한다.
 
효과는 컸다. 출산율이 2009년 1.43에서 2012년 2.47로 뛰었다. 출생아 수 역시 2009년 530명에서 2012년에는 832명으로 57%(302명) 늘었다. 이후 해남은 전국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면서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도 인구 감소의 대세를 막지 못했다. 해남군 인구는 2009년 8만1148명에서 지난해 7만1901명으로 10년 새 11%가 줄었다.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20~30% 많았기 때문이다. 그 새 2015년 839명이던 신생아 수도 2017년 600명대, 지난해 500명대로 추락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높은 출산율에도 인구가 줄자 ‘먹튀 출산’ 문제가 제기됐다. 출산장려금만 받고 아이를 낳은 뒤 도시로 떠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해남군에 따르면 현행 출산지원금이 지급된 2012년~지난해 해남에선 모두 5069명이 태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현재 해남에 남아있는 0세~6세 아이는 3337명에 불과하다(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나머지 1732명(34%)은 거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해남에서 출산장려금을 받은 아이는 5257명(둘째ㆍ셋째 아이 포함, 지급일 기준)에 이른다. 경위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먹튀 출산’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해남군은 7년 동안 모두 179억150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했다. 전남 지역 중간 정도의 재정자립도(지난해 14%)에 비하면 만만찮은 규모다. 해남군은 전국의 출산율 증가에 기여했지만, 내 돈 써서 남 동네 좋은 일 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남군 측은 어린이 감소에 대해 “단순한 ‘먹튀 출산’이라기보다는 농촌을 외면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산장려팀 관계자는 “출산 지원금만 받고 도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출산ㆍ보육ㆍ교육 등 젊은 층을 잡아끌 수 있는 대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공공산후조리원에 입원한 산모가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공공산후조리원에 입원한 산모가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해남군에서 유일하게 전문의와 분만시설을 갖춘 해남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해남군에서 유일하게 전문의와 분만시설을 갖춘 해남종합병원 산부인과 병동. 프리랜서 장정필

 
출산장려금 논란은 해남군만이 아니다. 전국의 거의 대부분 지자체가 출산 장려 정책에 나섰지만, 지원 만큼 눈에 띈 성과를 낸 곳은 많지 않다. 충북 괴산군은 현재 1년 이상 거주한 부모의 첫째 아이에 200만원, 둘째에 300만원, 셋째 이상엔 1000만원을 지급한다. 2005년 장려금을 도입할 당시엔 아이 낳는 가정마다 30만원을 지원하다 2009년부터 대상과 금액을 확대했다. 괴산군의 출산장려금 규모는 매년 2억5000만~3억원이다. 괴산군의 재정자립도는 14%로 해남군과 같지만, 충북에선 보은군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출산 장려금은 도입 초기 효과를 봤다. 2008년 880명이던 0~4세 인구가 2012년에는 903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2013년 850명, 2016년 748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괴산의 0~4세 인구는 648명으로 전체의 1.6%에 불과하다. 2008년 173명이던 신생아 수(지난해 110명)가 줄어든 결과다.

 
괴산군은 신생아가 줄고 고령자 사망이 늘었는데도 전체 인구는 증가했다. 2008년 3만7066명에서 지난해 말 3만9113명으로 5.5% 늘었다. 2009년 중원대 개교, 2011년 육군학생군사학교 이전, 대제산업단지 입주가 한몫했다. 인구 증대는 출산장려금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한 셈이다. 지자체들이 인구 증대와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산업단지 등 유치에 목을 매는 이유다. 
충북 영동군의 인구증가 지원 캠페인 포스터. [사진 영동군]

충북 영동군의 인구증가 지원 캠페인 포스터. [사진 영동군]

 
지자체에선 출산장려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충북 영동군은 도입 첫해인 2011년 첫째 아이 30만원, 둘째 50만원, 셋째 500만원, 넷째 이상 1000만원을 줬다. 출생아 수는 2011년 296명에서 이듬해 33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2013년 278명, 2015년 245명으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급기야 영동군은 2016년 출산 장려 제도 개편에 나서 첫째ㆍ둘째 아이에 장려금을 집중했다. 첫째 350만원, 둘째 380만원, 셋째 510만원, 넷째 이상 760만원으로 바꿨다.
 
제도의 규제도 완화했다. 당초 3개월 이상 주소를 둔 부모만 지급 대상으로 했지만, 부모 중 한명만 거주하면 주도록 했다. 이후 신생아 수는 2017년 299명, 지난해 297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신생아 증가를 무턱대고 반길 일만은 아니다. 대부분 지역이 장려금 지원조건을 1년 거주로 삼고 있지만, 영동은 3개월로 짧다. 장려금을 받기 위해 출산 직전 다른 지역에서 전입해올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실제 2017년 영동에서 아이를 낳은 산모 중 93명(37%)은 주민등록을 옮긴 지 1년도 안 된 신규 전입자다. 영동군 관계자는 “출산장려금 지급 기간이 지나면 유치원 등을 이유로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많아 인구 증가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출산장려금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돈이나 물품 지원처럼 인센티브에 의존하는 방식은 인구감소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행정학과)는 “돈으로 인구를 늘리겠다는 발상은 지역 간 출혈 경쟁, 땜질식 처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제라도 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의 행정구역 통합 등을 통해 주거ㆍ환경ㆍ교육ㆍ복지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면 제도 개선을 통해 장려금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우승희 전남도의원은 “최근 전남 지역의 출산장려금 현황을 모두 파악해본 결과 출산 분위기를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신생아 수에 따라 지원액을 높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육아ㆍ교육 등 성장 과정별 지원을 꾀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남·괴산=최경호·최종권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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