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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치료 한국서 막혀…과학자도 환자도 중국 간다”

국회미래연구원·중앙일보 공동기획
지난해 11월 중국과학원 신경과학 연구소가 공개한 유전자 편집 원숭이. 유전자 편집으로 인해 정신 질환을 안고 태어난 원숭이를 복제해 5마리의 원숭이를 탄생시켰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중국과학원 신경과학 연구소가 공개한 유전자 편집 원숭이. 유전자 편집으로 인해 정신 질환을 안고 태어난 원숭이를 복제해 5마리의 원숭이를 탄생시켰다. [EPA=연합뉴스]

‘저는 혈우병 환자입니다. 혈우병은 상처가 한 번 나면 피가 잘 그치질 않는 유전병입니다. 얼마 전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2세에 대한 걱정입니다. 저처럼 또 혈우병으로 평생을 염려하며,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이를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국내에서는 생명윤리 규제 때문에 혈우병 유전치료를 할 수도 없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도 없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남편과 함께 옆 나라 중국으로 가서 유전자 가위 배아 시술을 받을 계획입니다. 중국인처럼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1억원이 넘는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그게 문제인가요.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만은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유전병을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 한국은 유전자 치료는 물론 줄기세포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들었는데, 2050년 대한민국은 왜 이 지경이 됐나요.’
 
 
◆황우석 사태 후 생명윤리 강화=국회미래연구원과 중앙일보가 공동기획한 중장기 미래예측 보고서 ‘2050년에서 보내온 경고’에서 생명공학(BT)에 대한 시나리오들 중 지금의 상황이 지속할 경우에 맞을 가능성이 큰 예측 시나리오다. 이에 따르면 2050년의 세계 생명공학 기술은 줄기세포와 유전자 분석·치료 기술로 암·AIDS 등 주요 난치병을 극복하고 수백 개에 달하는 유전질환도 치료해 내는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생명공학 관련 과학자도 환자도 중국·일본 등 외국으로 떠나버린 생명공학의 ‘갈라파고스’로 전락할 전망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회미래연구원은 2005년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생명윤리법에 의한 규제가 강화된 후,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체계적 발전과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국을 전망한다. 많은 생명 과학자·공학자들은 규제에서 자유로운 중국·일본으로 넘어가 연구를 진행한다. 관련 특허는 자연스럽게 중국·일본에 남고, 국내에서는 법적 규제로 외국 기술을 이용한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규제를 완화하려하지만, 관련 국내 과학기술·의료 생태계는 이미 무너져내린 뒤였다. 제대로 된 연구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교수도 학생도 턱없이 부족하다.
 
오문주 바이오코아 연구개발사업본부장은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한국의 규제는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견해”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직 유전자 분석과 편집, 줄기세포 분야에 뛰어난 과학자들이 있지만, 이런 규제 속에서는 미국은 물론 일본·중국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태가 앞으로 5년만 더 지속하면 한국은 앞선 국가들의 추격도 어려워져 생명공학 분야에서 영원한 소비자로 남아 고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은 생명공학 소비자 전락=한국에서는 배아 단계에서의 유전자 치료는 아예 시도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유전자 치료도 제한적이다. 익명을 부탁한 한 유전공학 연구자는 “앞으로 10년 뒤쯤이면 대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다시 나게 하는 유전자 치료도 가능해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생명윤리법 때문에 연구조차 할 수 없다”며 “생명윤리법이 허가하는 것은 암이나 에이즈 또는 유전질환이면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국한해서 임상연구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세계에서 법으로 치료대상 질환을 규정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며“이름을 밝히고 이런 말을 하면 곳곳에서 공격을 받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30년 뒤 생명공학 기술은 완성 단계에 도달하지만, 무분별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한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 출생이 보편화한다. 1998년 개봉한 과학소설(SF) 영화  ‘가타카’가 현실화하는 세상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줄기세포와 유전자 분석·치료에 부의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부유층은 태아와 성인의 유전자 편집이 일반화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저가의 불법 유전자 편집에 의지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들 계층에 예기치 못한 신종 질병과 돌연변이가 흔하게 나타난다. 사회는 갈등의 폭발로 이어진다.
 
그럼 인류는, 한국 사회는 어떤 생명공학의 미래를 원할까. 국회미래연구원은 ‘생명공학 꿈의 시대’를 바람직한 예측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2050년대 생명공학의 발달은 질병 치료뿐 아니라 수명의 연장, 환경과 식량·에너지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된다. SF적 상상이 아니다. 생명공학기술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달하고, 법과 제도도 이를 뒷받침하게 될 때 일어날 수 있는 미래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중국 남방과기대 허젠쿠이(賀建奎) 부교수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인류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아기를 출산시켜 전 세계적 논란이 된 것에서 볼 수 있듯, 생명공학 꿈의 시대는 쉽사리 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정책 대안으로 ▶한국의 생명공학 연구와 치료에 대한 법적 규제를 미국·일본 등 글로벌 수준으로 맞추고 ▶과학기술의 남용과 부작용을 막기 위한 국가 중심의 합의기구를 설치하며 ▶이후의 규제는 ‘금지한다고 규정되지 않는 모든 행위에 대해 허용해주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의 도입 등을 제시했다.  
 
김홍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생명공학 기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잘 살리고 부정적 파급 효과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법적·제도적 방안을 국가차원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법의 개정과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이 잘 결합한다면 한국은 이 분야에서 얼마든지 국제적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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