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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예약했는데 불참한 12명···나온 8명은 '노쇼 죄인'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20)
노쇼로 인한 피해는 업주한테만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은 소비자에게 분산되어 청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품격과 존엄을 잃게 되는 것 아닐까. [사진 박헌정]

노쇼로 인한 피해는 업주한테만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은 소비자에게 분산되어 청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품격과 존엄을 잃게 되는 것 아닐까. [사진 박헌정]

 
부서 회식이다. 진작에 참치 횟집으로 예약해놓고 몇 번이나 공지했는데 퇴근 시간에 부장이 갑자기 “야, 거기 말고 고기 먹으러 가자!” 한다. “부장님, 그게 이미…” 당황한 박대리, 그러나 부장은 인상을 쓴다. 예약을 취소할 틈도 없이 주변 고깃집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분주하게 전화를 돌린다.

겨우 식당을 잡고 답답한 마음으로 취소 전화를 하려는데 왜 안 오냐는 전화가 먼저 걸려온다. 얼굴 벌게진 박대리, 오히려 부장한테 “똑바로 좀 해라.” 질책까지 들었다.

20년 전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이쪽저쪽에서 얻어터진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 그 횟집 주인은 얼마나 쓰린 마음으로 테이블의 말라가는 밑반찬을 치웠을까. 아마 대부분의 노쇼(No-Show) 상황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마포에서 횟집을 하는 친구는 가끔 넋두리한다. 예약받고 20인분 정도의 최상급 재료를 구해왔는데 갑자기 취소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워낙 손 크고 인심 좋던 친구라 웬만하면 서운한 마음을 갖는 법이 없는데, 그런 크고 작은 배신에 잔매 맞으며 마음에 굳은살이 박였을 것이다.
 
작년부터는 공정위에서 한 시간 전까지 취소하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는 손님에게 노쇼 위약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정했다. 진작 했어야 한다. 아니, 한 시간 전도 이상하다. 준비한 재료나 돌려보낸 손님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세 시간 전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힘들어하는데 그런 것으로라도 자영업자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그런 규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대부분은 고객이 압도적인 갑이고, 식당이 을이다. “약속 한번 어겼다고 되게 그러네. 그래서 장사하겠어?” 한 마디면 입소문이 두려운 상인은 오그라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법으로 정해놓았으니 최소한 옳고 그름은 명확해졌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로 끝날 게 아니다. 물론 그럴 수는 있는데, 책임은 져야 한다.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은 인터넷 예약이 다 차 있을 때에도 막상 가보면 빈자리가 많다(위). 로그인 한 번으로 쉽게 취소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렇다. 경기장이나 공연장에서도 표는 다 나갔는데 현장은 썰렁한 경우가 많다(아래). [사진 동대문도서관 홈페이지, 박헌정]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은 인터넷 예약이 다 차 있을 때에도 막상 가보면 빈자리가 많다(위). 로그인 한 번으로 쉽게 취소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렇다. 경기장이나 공연장에서도 표는 다 나갔는데 현장은 썰렁한 경우가 많다(아래). [사진 동대문도서관 홈페이지, 박헌정]

 
생각해보니 노쇼 현상은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있었다. 퇴근길에 동료가 “한잔 어때?”하면 그 길로 빠져 밥해놓고 기다리는 가족한테 전화 한 통 없이 자정 넘어들어가는 것도 일종의 노쇼 아닌가. 아침밥 다 차렸는데 밤새 게임 하다가 “조금만 더 잘 게요”하는 자녀들도 노쇼 상습범이다. 단톡방에서는 모임에 나오겠다고 해놓고 당일에 몸살 핑계 대면서 스무 명 예약석에 모인 여덟 명을 죄인 만드는 것도 고약한 노쇼 버릇이다.
 
나는 “축하해. 달력에 적어놓을게. 바쁠 텐데 청첩장은 안 보내도 돼” 해놓곤 마침 그때 걸려온 전화 때문에 메모하는 것을 잊어버려 친구 결혼식에 못 가기도 했다. 누가 큰맘 먹고 준 티켓을 썩혀 공연장을 썰렁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다. 언젠가는 아시안게임 입장권이 다 팔렸다고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경기장의 3/4 이상이 비어있었다. 어딘가에서 강제할당 받아 사방에 뿌린 게 분명하다.
 
가슴 짠한 노쇼도 있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것, 입고 나갈 옷이 없어 모임에 빠지거나, 야근 때문에 아이 유치원 재롱잔치에 빠지는 것, 모두 고단하고 살기 바빠 생기는 일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굴러가는 중요한 질서 가운데 하나가 ‘약속’일 텐데 그것을 무시하는 노쇼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상대를 ‘하찮게’ 생각하는 오만함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일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일방적일 수가 없다. 상대가 약자이고 하찮게 생각되니 자기 마음대로 내던진다.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의 낙서나 메모. 다시는 안 올지 모르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영원히 남을 것을 바라면서 쓸 것이다. 과연 세상에 ‘다시는 볼 일 없다’고 단언할 일이 있을까.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의 낙서나 메모. 다시는 안 올지 모르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영원히 남을 것을 바라면서 쓸 것이다. 과연 세상에 ‘다시는 볼 일 없다’고 단언할 일이 있을까.

 
노쇼가 우리 말로 무엇인지 찾아보니 ‘예약 부도’라고 한다. ‘부도’는 얼마나 살벌한 말인가? 사업하다가 한 번 부도를 내면 회생이 힘들 만큼 타격받고, 그래서 벌벌 떨며 어떻게든지 돈을 메꾸려고 애쓴다. 
 
그런데 단지 내 돈 나가는 게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약속을 우습게 생각하는 건 ‘얌체’ 정도를 넘어 아주 비열하고 저급하다. 뻔뻔하고 악랄한 갑질이다. 구성원들이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회에서는 질서가 유지되기 힘들다. 다들 ‘막가파’가 되어버리기 쉽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자기 집 마당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길거리가 자기와 상관없는 장소 같고 다시 올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마음대로 버린다.
 
화장실에서 물 안 내리거나 콘도에서 설거지 대충 하고 퇴실하는 것도, 버스에서 핸드폰에 대고 자기가 뭘 했는지 떠들어 주변 사람이 다 알게 하는 것도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뭔가 ‘모자란’ 사람으로 평가한다. 부족한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쇼도 똑같다. 뒤를 기약하지 않는다. “그 식당 안 가면 그만이지. 식당이 한두 개인가?” 물론이다. 식당이야 거기 말고도 갈 곳이 많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다음’은? 그 피해가 온 세상 사람에게 1/n로 나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더구나 남의 눈에서 눈물 뽑아낸 죄는 다 어디로 갈 것인가. 스스로 자기의 존엄과 품격을 챙길 줄 모른다면 부족한 사람이 맞다. 그런 인격은 이 사회에서 영원히 노쇼 상태로 남게 될지 모른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참 딱한 일이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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