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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 금리의 덫…상환 협박에 실직, 인간 관계도 깨져

경기도가 수거한 불법 광고전단지 [사진 경기도]

경기도가 수거한 불법 광고전단지 [사진 경기도]

 
 
경기도 시흥시 한 공단에서 일하는 김 모(34) 씨는 3개월 사이 빚이 두 배로 불어났다. 20만원 선이자를 떼고 30만원을 빌려주는 속칭 ‘50ㆍ30 사채’를 쓴 게 화근이었다.  어머니 병원비가 급했지만 100만원을 빌릴 곳은 없었다. 통신비가 연체돼 대부업체 심사에서도 거절됐다.  
 
결국 그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신용등급 상관없이 즉시 100만원을 대출해준다’는 업체에 연락했다. 다음날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대출업자는 일주일 뒤 50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20만원 이자를 제외하고 30만원을 빌려줬다. 잘 갚는지 신용도를 점검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세 차례 정도 약속 시각에 맞춰 돈을 갚자 대출금을 10만원씩 인상해줬다. 그 뒤 연체가 됐고 대부업자는 돌변했다. 언성이 커지며 화를 냈다. 10분 단위로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전화를 안 받으면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해서 “김 씨를 대신해서 돈을 갚으라”고 협박했다. 실제로 빌린 돈은 300만원이 채 안 됐다. 하지만 3개월간 매주 반복적으로 이자를 떼이고 갚다 보니 원금과 이자 합쳐 520만원으로 불어났다. 연 금리로 환산하면 3000%가 넘는 이자였다. 
 
김 씨는 "일하다가 다른 사람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추심업자에게 연락 온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란다"며 "시간이 갈수록 이자는 쌓여가는 데 벗어날 방법을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처럼 미등록대부업체, 사채 등 불법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빌렸다가 불어난 이자와 불법채권 추심에 고통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시장의 대출 잔액은 6조8000억원(2017년 기준)에 이른다. 이용자는 약 51만9000명으로 전체 국민의 1%다. 
 
 
2017년 기준. 자료: 금융위원회

2017년 기준. 자료: 금융위원회

 
 
사채에 붙는 이자는 연 10~120%로 다양했다. 전체 이용자의 36.6%는 2017년 기준 법정 최고금리(27.9%)를 초과한 이자가 적용받는 돈을 빌렸다. 더욱이 사채 피해자의 약 9%는 야간 방문, 반복적인 전화, 공포심 조성 같은 불법채권 추심을 경험했지만, 대다수가 보복 우려로 경찰이나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주희탁 대부금융협회 소비자보호센터장은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연 27.9→24%)되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면서 신용도가 낮은 주부, 경력단절 여성 등이 불법 사채인 줄 모르고 돈을 빌렸다가 불법채권 추심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최근 금융당국은 불법 사금융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으로 정부가 대신 나서서 대리인 역할을 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내놨다.  2014년 대부업체에만 도입한 제도를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넓힌다는 얘기다. 이 제도는 채무자가 변호사 등 대리인을 선임하면 채권자는 직접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못하고 대리인하고만 협의할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한국경제학회와 서민금융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서민금융포럼에서 “금융당국이 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불법 사금융업자를 직접 상대해 구제 절차를 진행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 사금융업자의 경각심도 유발할 수 있어 불법 사금융 억제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는 불법채권 추심 피해자에게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채무자 대리인을 지원하고 있다. 단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대상이다. 박정만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장(변호사)은 “2016년 이후 3년간 180여 명이 신청했다. 대부분 빚 독촉에 따른 공포나 불안감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 만족도가 컸다”고 말했다.  
 
 
불법채권 추심에 시달렸던 김 모(23) 씨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를 통해 지난해 채무자 대리인을 신청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9곳의 대부업체에서 총 2000만원을 빌렸다. 급한 마음에 빚을 냈지만, 이자는 밀리기 시작했다.  그는 “연체가 되자 추심업자가 회사 앞에서 지키고 있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도박 빚을 갚지 못한 도박 중독자’ 등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센터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채무자대리인을 신청하자 하루에도 수십번 쏟아지던 협박 문자와 전화가 중단됐다. 김 모 씨는 “마치 지옥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며 "이제 정신을 차리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개인회생 상담도 받고 있다”고 들려줬다.  
 
부산의 한 거리에 일수 등 불법 사금융 전단지가 널려 있다. [중앙포토]

부산의 한 거리에 일수 등 불법 사금융 전단지가 널려 있다. [중앙포토]

 
 
상당수 빚 전문가는 불법 사금융에 대한 민ㆍ형사상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불법 사채업자는 대포통장이나 대포전화를 쓰기 때문에 제도권 금융과 달리 채무자 대리인을 선임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보다 일본이나 싱가포르처럼 사채업자가 아예 부당한 이득을 챙기지 못하도록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에서 대부업체가 무등록 영업을 하면 약 3억원 이하 벌금(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것에 비하면 5000만원(또는 5년 이하 징역)을 부과하는 한국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최근 금융당국도 불법 사금융에 규제 고삐를 죄고 있다. 최고금리를 초과하는 불법 사채에 대해서는 모든 이자를 무효로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불법 사채업자가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해서 돈을 빌려주면 소비자는 법적으로 원금만 갚고 이자는 내지 않아도 된다.  
 
금융위는 올 상반기 채무자 대리인제도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불법 사금융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금융당국이 변호사를 대신해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직접 나서려면 공정채권추심법을 고쳐야 한다. 신용정보업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또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는 대출의 모든 이자를 무효로 하려면 대부업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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