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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는 독점 아닙니까?”→“우리더라도 억울했겠다”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청사로 출근하는 공정위 직원들. [뉴스1]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청사로 출근하는 공정위 직원들. [뉴스1]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 지식산업감시과로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너무한 것 아닙니까. 표준 특허 선정 과정에서 한 마디 없던 A업체가 막상 표준으로 선정되니까 그 특허를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 우리 회사를 상대로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냈습니다. 거기다 억대 로열티까지 요구하면 우리는 제품을 어떻게 만듭니까.”
 
일명 ‘특허 매복행위’에 대한 신고였다. 특허 매복행위는 기술 표준과 관련한 특허권 남용 행위의 대표 사례다. 해당 기술이 표준화되는 과정에서는 관련 특허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기술이 표준으로 선정되면 특허권을 내세워 과도한 특허사용료(로열티)를 요구하거나 특허 침해 금지소송을 제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해 2G 이동 통신에서 쓰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나 4G에서 쓰는 LTE처럼 업계에서 ‘안 쓰고 못 배기는’ 표준 특허를 가진 사업자의 ‘특허 갑질’이다. 물론 공정거래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특허 매복행위’ 바로잡고 감사 손편지 받은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
신고를 접수한 손지홍 사무관은 단순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 게 아니라, A업체가 특허 매복행위가 해당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는 위법 행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신고 업체로부터 받은 자료 조사를 마친 즉시 현장으로 나갔다. 하루아침에 특허를 침해한 회사로 몰려 제품 판로가 막힌 신고 업체의 사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곤 지난해 12월 조사팀과 함께 표준 특허를 가진 A업체를 방문했다. A업체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특허인데 당연한 권리 아니냐”며 버텼다. 손 사무관의 예상대로 해당 행위가 위법이 아닌 ‘권리’라고 생각한 경우였다. 손 사무관은 설득에 들어갔다.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이 특허는 이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핵심 특허입니다. 특허 개발하느라 고생하신 노력도 압니다. 하지만 표준화 과정에서 사장님께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지 않고 특허를 공개했다면 경쟁 업체들은 이 특허가 표준으로 선정될지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로열티를 어느 정도로 할지 충분히 검토ㆍ협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같은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세시간에 걸친 손 사무관의 설득 끝에 A업체 대표는 “위법 행위인지 몰랐다. 우리였더라도 억울했겠다”며 물러섰다. 결국 A업체는 경쟁 사업자들에게 특허를 공개하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공정위로선 ‘싸우지 않고’ 이긴 셈이다. 공정위에 피해를 신고한 기업 두 곳은 올 초 감사 손편지를 보내왔다.
 
“공정위에서 신속히 나서 준 덕분에 판매 시기를 놓치지 않고, 특허 침해도 염려하지 않으면서 제품을 팔 수 있게 됐습니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하기만 하고 느린 줄 알았는데 빨리 처리해 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원인이 보내 온 감사 손편지의 일부. [공정위]

민원인이 보내 온 감사 손편지의 일부. [공정위]

편지 한장 가득 깨알같이 눌러쓴 글씨였다. 공정위 내부에선 손글씨로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경우가 흔치 않은 데다 윽박지르기식 조사가 아니라 장시간 현장 설득을 통해 사건을 원만히 해결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손 사무관은 “자료 더미에 파묻혀 있다 보면 현장을 소홀하기 쉬운데 현장에 꼭 나가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고 싶었다”며 “단속하고 윽박지르기보다, 설득하는 관료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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