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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깊은 성찰 ‘루크레티아’ 영혼을 그리다

기자
송민 사진 송민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 (17)
렘브란트 반 라인(1606~1669) 서거 350주년을 맞았다. 그가 태어난 네덜란드는 축제 분위기다. 2014년 발견된 ‘아이들이 내게 오도록 두어라’도 복원을 마치고 전시될 예정이라 기대가 크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가리켜 ‘렘브란트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내내 황금기는 아니었다.
 
렘브란트 반 라인, 자화상, 1652.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출처 Wikipedia]

렘브란트 반 라인, 자화상, 1652.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출처 Wikipedia]

 
렘브란트는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부와 명예를 누렸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결혼 8년 동안 자녀 셋이 죽었다. 급기야는 1642년 그의 나이 36세에 아내인 사스키아 마저 사망한다. 이후 그의 그림 기법은 발전해갔지만 외면당하고, 가혹하게도 1656년 50세에 파산했다. 그나마 남은 작품들을 팔며 도와주던 둘째 아내 헨드리케도 1663년에 사망해 그는 57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잃었다. 고독과 절망 끝에 선 그의 영혼은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렘브란트는 이듬해 1664년과 1666년에 ‘루크레티아’를 그렸다. 이 그림은 로마 여성인 루크레티아의 실화를 다뤘다. 약 2500년 전 로마 황제의 아들 타르퀴니우스 섹스투스가 정숙한 루크레티아를 성폭행한 사건이다. 가해자 섹스투스는 사촌지간인 루크레티아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호시탐탐 노리던 일을 벌였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인 뒤 하인과 간통해 죽였다는 소문을 내겠다며 협박했다.
 
렘브란트 반 라인, 루크레티아, 캔버스에 유채, 1664, 120cm x 101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출처 Wikipedia]

렘브란트 반 라인, 루크레티아, 캔버스에 유채, 1664, 120cm x 101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출처 Wikipedia]

 
이 모함대로 된다면 루크레티아의 집안은 불명예로 풍비박산이 나게 될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만행을 저질렀다. 르네상스의 많은 거장이 그렸던 이 무거운 주제는 렘브란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는 루크레티아가 자결을 결심하는 순간을 그렸다.
 
렘브란트는 생생한 구도와 어두운 색감으로 여인의 참혹함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몸은 치욕을 벗기 위해 죽음을 강요당하는 운명에 쓰러질듯하다. 머리는 두려움의 무게만큼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칼끝이 향한 심장만이 환하게 대비되어 정결한 여성의 고동치는 심장 소리를 전한다. 이에 더해 렘브란트는 창의적인 상황 설정과 내면을 나타낸 표정, 질감 표현이란 세 가지 특징을 만들었다. 이는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렘브란트 후기 작품의 특징이 된다.
 
먼저 상황 설정이 남다르다.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그는 루크레티아에게 옷을 입히고 알몸을 전혀 드러내지 않게 묘사했다. 1666년 그림에서 보듯 줄을 당겨 알리면 가족들과 사람들이 몰려올 것을 준비한 사실적인 설정이다. 이는 근대 사상가인 데카르트의 영향으로 사색하는 자신을 담은 자화상을 100점 가까이 그렸던 렘브란트의 성과였다.
 
렘브란트 반 라인, 루크레티아, 캔버스에 유채, 1666, 110cm x 92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출처 Wikipedia]

렘브란트 반 라인, 루크레티아, 캔버스에 유채, 1666, 110cm x 92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출처 Wikipedia]

 
표정을 보면 마치 눈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긴장감이 넘친다. 충혈된 두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성폭행을 당한 수치심과 끔찍한 기억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눈이 말하고 있다. 1666년 ‘루크레티아’의 작품을 통해서 자유로운 질감 표현을 보자. 하얀 리넨과 드레스 소매의 질감이 실제 옷처럼 살아난다. 붉은 피가 번지고 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나이프가 사용된 거친 흐름을 볼 수 있다. 거친 질감은 생생한 표현으로 느껴지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몰입하게 한다.
 
루크레티아는 로마 시대의 윤리관에 갇혀 안타깝게 죽었다. 남편은 자결해야 할 이유를 듣고 죽어가는 여인 앞에서 오열하다가 복수하러 달려가 루크레티아의 치욕을 갚았다. 시민들은 가해자를 죽였고, 그의 아버지는 추방했다. 로마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는 한 여인이 기폭제가 돼 로마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이 작품을 보는 누군가는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보며, 요즘 SNS에 등장한 해시태그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를 들려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는 성폭행 피해자들을 응원하며 함께한다는 시대의 목소리다. 렘브란트 역시 아픔을 공감하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시대가 인정하지 않아도, 자신의 아픔을 통해 인류의 아픔이란 주제를 표현하는 것에 삶을 바쳤다. 렘브란트는 깊이 있는 영혼의 성찰로 우리 가슴에 울림을 새겨주었다.
 
송민 미술연구소 BRUNCH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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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