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가짜’가 흔드는 조합장 선거…허위서류·위장전입 판쳐

지난 5일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인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섬 지역으로 보낼 투표함을 여객선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인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섬 지역으로 보낼 투표함을 여객선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1344명의 농협·축협·수협·산림 조합장을 뽑는 ‘3·13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금품 제공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된 사례가 끊이질 않는다. 전문가들은 금품·향응 제공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무자격 조합원’이 선거판을 흔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가짜 조합원’ 시비는 4년 전에도 큰 논란거리였다.
 
2015년 3월에 치러진 제1회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당시 전남 고흥축협 조합장 선거에 나선 신모씨는 1277표를 얻어 당선됐다. 신씨와 상대 후보의 표 차이는 불과 17표였다. 낙선한 김모씨가 당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이들이 다수 투표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 과정에서는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무자격 조합원 중 당선된 신씨의 친인척도 포함돼 있었다. 사실 농협중앙회는 선거 8개월 전 고흥축협 측에 실태 조사를 하라고 한 뒤 무자격 조합원 정리를 지시했었다. 조사에서 무자격 조합원이 대거 적발됐지만 축협 측은 이를 걸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조합 측은 무자격자를 선거인 명부에 대거 등록해 지역 선관위에 제출했다. 법원은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며 “신씨의 조합장 당선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당시 고흥축협은 결국 보궐선거를 치렀다.
 
조합장 후보자로부터 양주 4병을 얻어 마신 조합원들에게 과태료 2137만원이 부과됐다. [사진 전남선관위]

조합장 후보자로부터 양주 4병을 얻어 마신 조합원들에게 과태료 2137만원이 부과됐다. [사진 전남선관위]

비슷한 일은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경기도 양주, 경북 의성, 전남 나주 지역의 조합장 선거도 1, 2위 표차보다 가짜 조합원 수가 더 많다는 주장이 제기돼 역시 당선 무효 소송으로 이어졌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제1회 동시 조합장 선거 때 가짜 조합원 논란으로 선거 무효 소송까지 이어진 사례는 전국적으로 32건이었다. 전직 농협중앙회 한 간부는 “무자격 조합원의 수가 전국 각 단위 조합별로 적게는 10~20%에서 많게는 50~60%까지인 것으로 안다”며 “이런 실태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조치를 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에 그냥 놔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간부는 또 “이번 2회 동시선거를 앞두고 농림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무자격 조합원 정리를 지시하기는 했다”면서 “지역별로 일부 정리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무자격 조합원들이 선거인 명부에 포함돼 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합원 자격이 되려면 해당 지역에 주소를 두고 농사를 실제로 지어야 한다. 또는 자신의 땅이 아니더라도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경우도 해당한다. 하지만 땅 주인의 인감증명이 들어간 임대차계약서를 통해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개인 사정 때문에 잠시 농사를 짓지 못하는 기존 조합원의 경우 1년 이내에 농사를 짓겠다는 영농계획서를 구체적 내용을 담아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하거나 임대차 계약서를 위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영농계획서도 제출만 하고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중앙SUNDAY는 다양한 수법으로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며 선거인 명부에까지 올라간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서울 강남권의 한 지역 농협조합의 경우 선거인명부에 등록된 조합원 중 수 백명이 가짜 조합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 조합의 현직 조합장은 5선 출신으로 또 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취재진이 살펴본 조합원 명부에는 해당 지역에 주소를 두지 않는 조합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또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돼 있지만 위장 전입이 의심되는 사례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A씨 형제 등은 실제로는 각각 서울의 다른 지역과 경기도에 거주하면서도 거소(居所) 증명(주민등록상 주소는 타 지역이지만 실생활의 상당 부분을 해당 지역에서 지낸다는 것을 증빙)을 통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소 증명은 허위였다. 선거인 명부에 등재된 또 다른 조합원들의 경우 같은 주소의 아파트(83㎥, 25평형)에 세 가구나 사는 것으로 돼 있었다. 선거를 앞둔 전형적인 위장 전입 사례였다.  
 
B씨는 지난해 말 실태조사 때 잠시 주소를 이전했다가 조사가 끝나자 다시 실제 사는 곳으로 주소를 옮기는 수법을 썼다.
 
어떻게 가짜 조합원이 선거인명부에 포함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익명을 원한 한 영농회장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조합장과 영농회장, 부녀회장, 작목반원 등이 모여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조합장은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조합원이 68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선거인 명부에는 1500여명이 등록돼 있다. 영농회장과 각 지점장에게 가짜 임대차계약서나 거소증명 서류에 도장을 찍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조하라는 지시가 조합장 측으로부터 내려왔다. 내가 도장을 찍어준 사람은 3명이었다. 다른 영농회장이나 지점장들도 다 허위인 줄 알면서 도장을 찍어줬다.”
 
이 지역 조합 소속 한 지점장도 “나 역시 조합원 자격을 증명하는 서류에 도장을 여러 차례 찍은 게 사실”이라며 “무자격자인 줄 알면서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조합원 C씨는 지난달 이런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다. 하지만 C씨는 “실태 조사는커녕 내가 접수한 진정서가 유출돼 조합장 측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축협도 가짜 조합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소는 2마리만 키워도 조합원 자격을 인정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경기도 남양주축협은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타 지역에 한우 공동사육장을 조성했다. 이 소들을 2마리씩 위탁해 축산농가가 아닌 284명에게 조합원 자격을 줬다가 문제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이들 가짜 조합원을 정리했다. 안양축협도 957명의 조합원 중 518명이 위탁사육장을 통해 자격을 유지하다가 문제가 됐다. 심지어는 소 2마리를 위탁해 사육하는 스님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다 적발된 모 지역 축협 사례도 나왔다.
 
가짜 조합원 논란이 특정 몇몇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농협중앙회 조합원 194만 8000여 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 무자격 조합원이 7만4000여 명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실태조사 때 나온 무자격자 숫자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가짜 조합원이 존재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호중 농어업정책포럼 상임이사는 “위탁 선거라는 특성 때문에 선관위가 이를 단속하거나 가리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각 조합이 자율적으로 무자격자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도록 농림부와 농협이 감시하고 지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김나윤 인턴기자 muzes@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