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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왔다 ~” 지친 어깨에 감춰진 묵묵한 사랑

’한 아버지가 열 아들은 키울 수 있어도 열 아들이 한 아버지를 봉양하기는 어렵다“는 독일 속담이 있다.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들의 고단한 나날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현동 기자]

’한 아버지가 열 아들은 키울 수 있어도 열 아들이 한 아버지를 봉양하기는 어렵다“는 독일 속담이 있다.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들의 고단한 나날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얼마 전 자신의 아버지가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한 여자 아나운서의 고백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었다. 가정 형편 탓에 국민(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아버지는 50년째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며 딸을 대학원까지 마친 아나운서로 키워냈다. 주위 사람들은 아나운서라는 직업만 보고 그녀가 번듯한 집안에서 부유하게 자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 시선으로 흔히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어왔고, “건설 쪽 일을 하신다”고 대답하면 어느새 아버지는 건설사 대표가 되곤 했단다.
 

‘진심, 아버지를 읽다’ 전시회
‘나는 됐다’ 등 5개 테마관서
사진·소품·편지 등 160점 전시

손편지 쓰기 등 부대행사도 푸짐
“가족 간 유대 느슨해지는 시대
가족 사랑 일깨우는 계기 되길”

사람들은 이처럼 무례한 질문과 역시 무례한 대답을 주고 받으며 하루하루 더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돼간다. 어느날 그녀는 아버지를 숨겨왔던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한다. 일부러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똑 떨어지게 말하지도 못했던 나날들이 너무나 죄송하고 후회스러웠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아버지인데…. 세상의 그런 아버지들이 모두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마침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한 아버지들의 널찍한 등을 따라 걸으며 그들의 마음에 한걸음 다가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진심, 아버지를 읽다 - 그 묵묵한 사랑에 대하여’ 전시회가 지난달 28일 개최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주최하고 멜기세덱 출판사가 주관한 이 전시회는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에서 5월 12일까지 열린다.
 
전시회는 아버지를 주제로 한 5개의 테마관으로 꾸며졌다. 기성 작가들의 글은 물론 멜기세덱 출판사 문학·사진 동호회 회원들의 작품, 독자들이 기증한 소품과 편지 등 160점이 특설 전시장을 채운다.
 
‘아버지 왔다’라는 제목의 1관 입구에서부터 관람객들은 추억으로 소환된다. 담장에 걸린 ‘문패’와 철제 대문과 만난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층에는 낯선 풍경일 수 있지만, 30~40대만 해도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며 “아버지 왔다”라고 말하던 모습을 기억할 터다. 아버지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일터에서 돌아온 저녁부터일 수밖에 없었다. 단팥빵 한 봉지, 통닭 한 마리를 손에 쥐고 대문 앞에 서계시던 아버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나와 아버지는 본체만체, 봉지만 잡아채 들어가던 유년 시절, 그런 자식들의 모습만 봐도 흐믓해 하시던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담았다.
 
2관의 주제는 ‘나는 됐다’다. 그야말로 전장과 같았던 일터에서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아버지들의 고단한 나날들을 모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바닷가에서 주은 조개껍질로 틈날 때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만든 ‘조개 거울’, 학창시절부터 악기 연주를 좋아하셨지만 생계를 위해 연주자의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트롬본 같은 소품들에서 아버지들의 소리없는 애환이 느껴진다.
 
‘우리 아버지랑 똑같아’ 만져보고, 찡해지는 코끝 감싸 쥐고. 사진을 보며 관람객들은 표현은 서툴러도 묵묵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우리 아버지랑 똑같아’ 만져보고, 찡해지는 코끝 감싸 쥐고. 사진을 보며 관람객들은 표현은 서툴러도 묵묵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
 
3관의 테마는 침묵이다. 흔히 서툰 표현과 침묵에 가려졌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아빠! 뭐 먹고싶은 거 없나?”
 
“없다.”
 
“필요한 거는?”
 
“없다.”
 
“아픈 데는?”
 
“없다.”
 
“알겠다. 또 전화할게.”
 
“근데… 언제 오노?”
 
(강부영 수필 일부)
 
‘우리 아버지랑 똑같아’ 만져보고, 찡해지는 코끝 감싸 쥐고. 사진을 보며 관람객들은 표현은 서툴러도 묵묵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우리 아버지랑 똑같아’ 만져보고, 찡해지는 코끝 감싸 쥐고. 사진을 보며 관람객들은 표현은 서툴러도 묵묵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낀다.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당신이 먹고싶은 것 갖고싶은 것은 둘째고 무엇보다 자식들, 손주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가장 큰 행복인 게 아버지인 거다. 발걸음이 여기쯤 오면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최측이 앞서 열었던 ‘어머니전’에서처럼 눈물을 왈칵 쏟는 관객들은 없지만, 다들 찡해져오는 코끝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이다.
 
‘아비란 그런 거지’의 4관에서는 이제 늙어버린 아버지를 만난다.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순 없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지는 아버지들의 깊고 넓은 사랑을 담았다. 6개월 시한부 삶의 판정을 받은 뒤 남은 가족들을 위해 창고를 짓고 곡물건조기를 설치하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아버지. 아토피 증세가 있는 딸과 손자를 위해 무공해 비누를 만들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아버지가 남긴 비누들. 가족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왜 그토록 고집스런 행동을 하셨는지 돌아가신 뒤에야 알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교회에서 하는 만큼 마지막 5관은 성경 속 부성애를 그린 ‘잃은 자를 찾아 왔노라’다. 하지만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또는 교파가 다르다고 해서 발걸음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종교가 아버지의 사랑을 구별하지 않는 까닭이다. 실제로 전시회장에는 신부복을 입은 사제들과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띈다.
 
전시회장을 나오면 이제 체험의 공간이다. 영상을 통해 가족애를 재발견할 수 있는 영상관, 가족들과 함께 관람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 아버지(또는 가족)한테 손편지를 써서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담아 보낼 수 있는 진심우체국 등 다양한 부대행사장이 마련돼 있다. 지난 어머니전 때는 우편엽서를 준비했던 주최측이 이번엔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준비한 게 재미있다. 사랑의 표현이 서툰 아버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란 자식들도 쑥스러운 탓일 터다.
 
박노균 목사는 “가족 간 유대와 결속이 느슨해지고 가족의 의미와 가치가 퇴색해가는 시대에 이번 전시회가 가족간 사랑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인터넷 홈페이지(thankfather.org)에서도 일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측정해봄으로써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회복을 돕는 ‘한 뼘 더’ 캠페인이 눈길을 끈다. ‘거의 아버지 본인’ 수준에서 ‘측정 불가’ 수준까지 6개 단계의 거리가 있는데, 기자를 비롯한 가장 많은 사람들(40%)이 가운데인 ‘버스 한 정거장 거리’에 속했다.
 
전시회를 안내한 서승복 목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인성 교육의 장을 제공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토요일은 휴관이다.
 
웃으며 들어갔다 울며 나오는 ‘어머니전’도 계속
지난해 5월 상암동에서 열린 ‘어머니전’.

지난해 5월 상암동에서 열린 ‘어머니전’.

‘아버지전(展)’과 함께 ‘어머니전(展)’도 함께 열리고 있다. 지난달 14일 전북 익산 하나님의 교회에서 개최된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이 그것이다. 다음달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13년 서울에서 첫 전시가 열린 이후 64회째다. 우리 도시에서도 열어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이 빗발친 결과다. 전시관은 ‘엄마’, ‘그녀’, ‘다시 엄마’, ‘그래도 괜찮다’와 ‘성경 속 어머니 이야기’의 5개 테마관으로 구성됐다. 문병란, 김초혜, 허형만 등 기성 문인들과, 일반인들의 글과 어머니를 추억하는 사진, 각종 소품 등 200점이 전시됐다.
 
어머니전은 ‘웃으며 들어갔다 울면서 나오는 전시회’라는 입소문을 타고 각계각층에서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주로 교회 건물을 전시장으로 이용하는 만큼 하루 400명 정도의 관람객 수용이 가능할 뿐인데 1400~1500명까지 몰리는 날이 많아 교회측이 교회 본당을 대기석으로 개방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단체관람도 많아 지난해 3월 현재 학교와 군부대, 경찰서 등 186개 단체가 전시장을 찾았다. 지금까지 누적관람객 수는 73만 명이 넘는다. 미국과 페루, 칠레 등 해외에서도 지금까지 11번의 전시회가 개최됐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어머니전의 경우 시민들의 반향이 커 브루클린 자치구가 “시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는 이유로 교회측에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아버지전도 어머니전의 이 같은 성공에 힘입은 것이다. 시종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전을 관람한 관객들 중에서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전시회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익산 전시회에서는 페루에서 전시됐던 작품 일부를 옮겨온 ‘페루 특별전’도 준비돼있다. 나라와 인종·문화를 초월한 어머니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교회측은 어머니전은 물론 아버지전도 지방과 외국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훈범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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