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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서 쓸 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같은 제목은 피해야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프로포잘 잘 쓰려면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프러포즈(propose)를 하듯이, 기획자들은 프로포잘(pro-posal)이라는 글을 쓴다. 이를테면 연구자라는 이름의 기획자들도 자신이 어떻게 연구를 하여 어떠한 논문을 쓰겠다는 계획을 표명하고, 독자에게 그에 대한 동의나 공감을 구한다. 분야마다 다른 관습과 기대가 있기에, 프로포잘 쓰기의 철칙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프로포잘을 작성하면서 염두에 둘 만한 몇 가지를 떠올려 본다.
 
프로포잘이 계획서라고 해서, 계획을 통해 결국 완성한 결과물보다 더 느슨하거나 미숙한 글이어서는 안 된다. 계획서는 계획서 나름대로 갖추어야 할 완결성이 있다. 계획이 미숙할지언정, 계획서가 미숙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누가 프로포잘을 읽고서, “이건 대충 쓴 계획서에 불과하잖아!”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가 프로포잘을 일러 “이건 계획서에 불과하잖아!”라고 비판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프로포잘은 계획서에 불과하고, 그는 미친 사람에 불과하니까.
 
프로포잘이 완결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해서, 향후 반드시 거기에 담긴 계획대로 작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여러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계획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프로포잘을 쓰는 일은 난폭한 죄수에게 구속복(拘束服)을 입히는 일이 아니라, 작업에 방향타를 부여하는 일이다. 방향이 맞으면 그럭저럭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방향이 틀리면 시간이 갈수록 목적지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연구는 관련 집단과의 관계 내서 이뤄져야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작업의 방향을 점검하려면, 작업이 일단 있어야 한다.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려면, 일단 인생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듯이. 즉 프로포잘은 완전한 무(無)의 상태에서 미래의 계획을 꿈꾸는 일이 아니다. 프로포잘이란 일정 정도 작업이 진행되어야 제대로 쓸 수 있는 글이며, 그간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알기 위해서 쓰는 글이기도 하다.
 
결혼을 위한 프로포즈도 그렇지 않던가. 관계가 무(無)인 상태에서 프로포즈를 할 수는 없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프로포즈를 해서는 안 된다. 관계가 성숙되어, 미래를 함께하자는 암묵적인 기대가 있는 경우에 통상 프로포즈는 이루어진다. 암묵적인 기대가 있다고 해서, 준비를 소홀히 했다가는 프로포즈가 오히려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 프로포즈를 할 때, 양복을 입는 게 좋을지 개량 한복을 입는 게 좋을지 정도는 미리 파악하는 게 좋다.
 
연구의 예를 들어보자. 상대를 파악한다는 것은, 연구가 진공 속의 행위가 아니라 관련 연구자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언론에서 천재라고 불렀던 어떤 젊은 연구자는 ‘국민’이 준 박사학위에 감사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학위는 ‘국민’이 주는 것이 아니다. 연구의 평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은 동료 연구자에게 있기에, 연구자는 동료 연구자를 일차적으로 의식해야지 ‘국민’을 먼저 의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곧 동료 연구자에게 아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프로포잘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반응은, 이 연구가 수행되고 나면 이 분야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관련 연구자들이 갖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키려면, 이른바 선행 연구의 검토가 필요하다. 자신을 대가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종종 “어느 날 문득 나는 이것에 착목(着目)했다, 그래서 연구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곤 하는데, 제도화된 연구 활동은 산속에서 고독하게 도 닦는 일과는 다르다. 도인이 보기에는 동료 학자들의 연구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제도화된 학계에서 프로포잘을 쓸 때는, 관련된 기존 학술 담론과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와의 관계를 명료히 해야 한다. 이것이 꼭 자신의 프로젝트가 기존 학술 담론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프로젝트가 기존 학술 담론 전체를 ‘전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조차 자신의 프로젝트와 기존 학술 담론과 ‘관계’가 없지 않다. ‘전복’도 관계의 한 양상이다.
 
기존 프로젝트들과 자신의 프로젝트와의 관계를 명료하게 하려면, 해당 분야의 현황에 대해 나름의 이해와 정리가 필요하다. 그 정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프로젝트의 위상을 도출하게 된다. 분야의 현황을 정리하는 데 있어, 잡다한 나열은 금물이다. 요령 있는 정리를 위해서 거론 대상을 선별하고, 거기에 일정한 스토리를 부여해야 한다. 잡다한 나열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어로 된 관련 사례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어떤 분야든, 다양한 외국어로 된 사례들을 검토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해당 분야의 현황에 스토리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각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대개 자신이 취할 방법론이나 자료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기존 논의를 넘어서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방법론이나 자료를 취할 경우, 특히 중요하다.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연구사에 대한 논의와 일정 정도 겹칠 수는 있지만, 방법론의 검토와 현황의 검토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 과학화된 방법론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은, “나는 어느 날 문득 여기에 착목했으며, 나의 방법론은 정신 집중이다!”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결혼 프로포즈할 때나, 연구 프로포잘을 할 때나 정신 집중은 중요하지만, 정신 집중이 방법의 전부는 아니다.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정신을 집중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방법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불가피하다. 방법에 대한 자의식이 없으면, 시각이 자유로워지기보다는 그저 관습적인 방법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결여된 분야는 대개 활력이 사라진 분야이다.
 
분야의 현황을 정리하다 보면, 자신의 프로젝트가 ‘기존 논의에 어떤 새로운 공헌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새로운 자료를 통해 다른 경로를 거쳐 같은 결론에 이를 수도 있고(그리하여 기존 결론을 보강할 수도 있고), 같은 자료를 통해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고, 새로운 자료를 통해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결론이지만, 보다 풍요로운 기술(記述)에 도달할 수도 있으며, 새로운 예를 추가할 수도 있다. 각 경우마다 공헌이 실현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해당 분야의 현황을 조망하는 것 자체가 글의 목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새로운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존 논의를 요약 정리하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독자의 관심 끌 수사 더해지면 금상첨화
 
사람들은 추진되는 프로젝트들이 결국 이 사회에 공헌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연구의 경우, 그 공헌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기대효과’와는 다르다. 연구자는 대개 연구가 불러일으킬 사회적 효능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없고, 관련된 사회적 파장을 통제할 수도 없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대한 이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이 사회의 기갈이 멈추고, 국민들의 피부가 매끈해지며, 청소년의 분노가 사그러들고, 애완 동물의 소화 기능이 강화될 것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연구자라기보다는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기대 효과를 묘사적으로 서술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연구가 답이라면 문제는 무엇인지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중세 때는 몇 명의 천사가 손가락 위에서 춤출 수 있는가와 같은 것이 연구 질문이 되었던 적도 있다. 어떤 시대 어느 사회에서는 여자가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와 같은 것이 토론의 주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이런 점을 보면, 연구자가 던져야 할 전문적인 질문도 해당 시대의 흐름과 전적으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던진 연구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실제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원래 예상했던 곳과 상당히 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이 우주는 냉혹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계획의 특징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통제하기 어려운 우연(fortuna)과 의연히 맞서는 데에 기획자의 위엄이 있다. 도박사에게 위엄이 있듯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향해 자신의 인생을 던지는 위엄이 기획자에게도 있다.
 
아, 그리고 적절한 제목을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충분한 정보력을 가지되, 독자의 관심에 호소할 만한 수사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오해를 야기해서는 안 된다. 심각한 영화를 찍기로 유명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중에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라는 진지하고 사색적인 영화가 있다. 이 영화가 한국에 개봉했을 당시, 제목만 보고 대단히 야한 영화인 줄 알고 중년 관객들이 극장에 몰려갔다가 크게 낙담했다는 후문이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학 교수를 지냈다. 영문저서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2018)가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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