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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누가 세종로를 비틀었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던 노래, 동백아가씨. 왜색논쟁으로 한 시절 금지곡이었던 노래. 그러나 정작 시비의 대상이 될 것은 노래가 아니고 가수의 이름이었다. 저건 일본식 이름이 아니더냐. 미자, 요시코라니.
 
창씨개명. 일제만행으로 빠지지 않는 단어다. 그리고 성을 바꾸고 이름을 고쳐 친일파로 단죄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저런 이름을 딸에게 건넨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차피 사라진 나라인데 맞춰 살자고 했을 수도 있다. 새 유행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바람 따라 무심히 흔들리는 민초들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계획이 발표되었다. 세종로(사진)라면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일제가 경복궁 앞길의 축을 조선신궁 방향으로 틀었다. 왕조 능욕과 민족정기 말살의 잔학한 조치였다. 침탈·억압·학대·수난의 비대칭 단어에서 우리는 약자고 피해자다. 만행을 드러내고 억울함을 파헤쳐서 고발과 증언으로 해원(解寃)의 살풀이를 해야 한다.
 
시평 3/8

시평 3/8

그런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실 파악이다. 혹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과녁을 만들고 거기 흥분과 분노의 화살을 쏟아붓는 것은 아닌지. 이 땅의 생김새가 측량된 도면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가 다 저문 시점이었다. 우리에게 경복궁 앞 육조거리 도면이 남아있다. 그런데 당혹스럽게 그 앞길의 방향이 이미 경복궁 축과 전혀 맞지 않는다. 심지어 길은 중간에 애매하게 꺾여 있었다. 당시 지적도에 근거한 모형은 박물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맞지 않는 축의 각도에 총독부 건축공무원들도 당황스러워했다. 이걸 맞춰 놓을 정도로 총독부가 조선을 장악하지 못한 때였다. 그 길은 있던 방향 그대로 확장계획이 잡혔다. 지금까지의 자료로는 육조거리 확장계획 조감도를 처음 그린 이는 독일건축가 게오르그 데 라란데(George de Lalande)다. 무심한 외국인은 조선총독부청사의 고문건축가로 지목되었고 뒤의 전각이 아니라 앞의 길에 맞춰 건물을 앉혔다.
 
일본인 중에도 총독부청사 위치를 반대한 이들이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철거예정의 광화문을 안타까워 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다. 그러나 와세다대학 교수 콘 와지로(今和次郞)의 비판은 그런 수준을 훨씬 넘는다. 그는 도대체 어찌 이렇게 피정복자를 유린하는 비참한 일을 행하느냐며 총독부 건축관계자들을 면전에서 공박한다. 그리고 철거가 제일 좋겠지만 거의 다 지어 되돌릴 수 없다면 차라리 이를 사회사업시설로 전용하라고 주장한다.
 
조선신궁의 위치를 남산으로 결정한 것은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이토 추타(伊東忠太)다. 총독부청사 착공 후다. 영어 단어 ‘아키텍춰’를 ‘건축’으로 번역한 인물이다. 민족정기 말살하는데 앞장 선 이의 자취라고 부인하려면 우리는 ‘건축’이라는 단어를 바꿔야 한다. 결국 순자, 미자, 영자도 개명해야 할 것이고. 민족정기 말살 목적으로 일제가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분노의 증언도 있다. 그러나 주요지점에 물리적 기준점을 설정하는 것은 측량의 기본사안이다. 측량을 모르던 백성들에게 그것이 주술적 만행으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병들면 무당 부르지 않고 병원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흥분하지 않는 것이다. 평상심으로 봐야 한다. 총독부인들 조선통치의 거대계획 수립실행에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그럴 능력도 없었다. 일제하 조선백성들이 눈만 껌뻑거리는 존재들도 아니었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민국은 반민족행위자, 부역자 처벌에 실패했다. 그 피해의식은 왜색, 친일이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확대적용하게 만들었다. 역사를 지우지 못한다. 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과거가 현실을 포박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미래의 조감도를 그리기 위해서다. 지금 분명 일본은 평화헌법으로 유지되는 국가고 천황도 다만 인간임을 스스로 밝혔다. 후손이라는 이유로 전쟁의 책임과 사과를 여전히 요구한다면 먼저 사과해야 할 주체는 한국전쟁 침략자의 손자다. 대한민국 정부가 광복 전에 수립되었다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도 사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면서 몇 세대 전 그들의 행위를 추궁하는 건 논리모순이다.
 
역사 서술의 주어는 1인칭, 우리여야 한다. 한반도 주변은 야수 우리라고 지도가 알려주고 역사가 증명한다. 그 역사가 반복 재현된 것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의 교훈이다. 할퀴고 물어뜯은 그들이 사과 않는 야수라고 비난하고 있으면 역사는 여전히 그들의 것이다. 사과가 그들의 짐이라면 반성이 우리의 힘이다, 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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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