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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진 ‘통일’ 목소리…“통일한국 어떤 국가될지 고민해야”

글로벌 피스 컨벤션 2019
지난달 27일 통일 한반도 비전을 주제로 ‘글로벌 피스 컨벤션(GPC)’이 열렸다. [중앙포토]

지난달 27일 통일 한반도 비전을 주제로 ‘글로벌 피스 컨벤션(GPC)’이 열렸다. [중앙포토]

‘통일’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남북한 통일보다는 교류와 협력, 공존이 강조되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쪽으로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청와대와 정부 안팎에선 ‘통일’ 명칭이 붙은 직제와 자리에서 아예 통일이란 표현을 빼버리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지나치게 통일을 앞세우는 건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칫 우리 사회에서 통일이 실종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주 서울에선 인권·종교·경제·여성 등 30여개가 넘는 세션으로 짜인 ‘통일 한반도 비전’ 국제포럼이 열렸다. 현장을 찾아 잃어버린 ‘통일’을 소환하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북한에 735일 억류 케네스 배
“인권 보장된 통일국가 중요”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 대사
“분단 지속 불가능 북도 잘 알아”

‘북 비핵화’라는 질문 넘어서서
포괄적인 통일 전략·비전 짜야

발제자로 참석한 케네스 배 느헤미아 글로벌 이니셔티브 대표. [중앙포토]

발제자로 참석한 케네스 배 느헤미아 글로벌 이니셔티브 대표. [중앙포토]

“미국 핵무기는 안 무섭다고 하더라. 종교가 들어와 사상을 흔들고 신앙을 통해 주체사상을 무너뜨리면 망한다고 하더라. 형법 60조 위반인데 사형 내지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했다.”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느헤미아 글로벌 이니셔티브 대표는 북한 억류 당시 공안당국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2012년 11월 체포돼 735일간 수감생활을 한 배씨에게 씌워진 혐의는 ‘국가전복 음모죄’ 였다. ‘뭘 했기에 내게 국가전복죄를 묻느냐’는 배씨의 항변에 북측은 “기도와 예배로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신 같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사상을 무너뜨리면 나라를 지탱할 수 없어 본보기 삼아 벌을 내리는 것”이란 말도 들었다는 것이다.
 
배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피스 컨벤션(GPC) 2019’에 발제자로 참석해 이같이 밝힌 뒤 “저는 그나마 미국 시민권자이고 언론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아플 때 병원에 보내줬지만, 북한 현실은 종교를 가진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통일의 주체가 북한 당국이 아닌 주민이 되어야 하고, 한민족이 함께 노력할 때 한반도에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국가가 세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활동가 등은 남북 화해와 협력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종교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해서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렉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 사무총장은 주제발표에서 “1950년대 통계에 따르면 북한 주민 22%가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2017년 보고서엔 3만8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22%에서 0.2%로 급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국내에 정착한 1만3000여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공개한 뒤 “놀라운 건 비밀스러운 종교활동에 참여해본 사람이 1%가 넘고 최근엔 2%에 달한다”고 말했다. 매우 낮은 비중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 2%는 매우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란 설명이다. 강신삼 통일아카데미 대표는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교황과 외국 대통령 등 국제적인 지도자들이 소련의 무장력보다 종교와 인권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북한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분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북한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남북관계가 나아가야 할 길은 결국 민주적이고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신진(충남대 교수) 국가전략연구소장은 “백 년 전 우리 선조들은 3·1운동을 통해 전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 국가의 독립은 물론 인류 전체가 평등하게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주창했다”며 “한반도 통일은 부국과 빈곤국가의 통합, 인권 탄압과 자유로운 나라와의 통합을 보여주는 사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중인 존 에버라드 전 주북 영국 대사. [중앙포토]

주제발표 중인 존 에버라드 전 주북 영국 대사. [중앙포토]

한국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높아지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안드레이 란코프(국민대 교수) 코리아 리스크 그룹 대표는 “통일은 과정이나 수단이 아닌 목표가 되어야 한다”면서 “당장 통일이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미래의 통일이 가능하도록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는 “북한의 엘리트와 주민들은 분단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면서 “더 이상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통일 또는 북한의 붕괴, 중국의 지배라는 세 가지 선택만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기대와 결렬로 롤러코스터를 타던 시점이라 북핵 문제도 화두가 됐다. 통 킴 전 미 국무부 한국어 수석통역관은 “핵이 있어야 정권이 유지되고 생존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 없이도 체제를 이어나갈 수 있다면 포기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경영 한양대 겸임교수는 “북핵 포기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반론을 폈다. 정 교수는 “2017년 화성-15호를 발사한 후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했다”며 “체제 보위의 유일 수단이 핵이라 생각했는데 외부의 강한 압박을 받다 보니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도 “만약 북한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지도상에서 없애야 하는 극단적 상황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북 간에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고 화해와 협력, 상생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명확해지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비전을 가진 통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피스재단(이사장 문현진)이 주최하는 글로벌피스컨벤션은 국제평화와 인간계발에 헌신한 정치·시민사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체제 갈등과 분쟁·저개발 등의 해법을 모색하는 행사다. 지난 200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작됐고, 2012년과 올해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통일 한반도의 비전 코리안 드림’이란 주제로 국회의사당과 롯데호텔 등에서 진행됐다. 문 이사장은 기조연설에서 “남북통일과 관련해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을 어떻게 비핵화할 것인가’라는 협소한 질문을 넘어, ‘어떤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라거나 ‘새로운 통일한국은 어떤 국가가 될 것인가’하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문제의식 없이 비핵화 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 논의되는 있는 현실은 큰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국민을 통합하고 민족의 미래 운명을 올바르게 개척해 나갈 국가적 비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며 “그 비전이 바로 분단을 청산하고 평화롭고 번영된 새로운 통일 한반도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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