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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구나" 황현이 자결 앞두고 쓴 시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43)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된다. 이른바 ‘경술국치’다. 나라가 망하고 순종이 통치권을 일왕에게 넘긴다는 양위조서(讓位詔書) 내용은 여드레가 지나 호남 땅 구례에 도착한다.
 
한 선비가 조약문을 읽어 내린다. 내용이 기가 막혔다. 더는 읽을 수 없어 조서를 기둥에 묶어 버린다. 그는 나라가 망했는데 무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문득 을사늑약 체결 이후 마음먹은 자결(自決, 의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 떠올랐다. 밤이 깊어 4경(새벽 1∼3시)이 됐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한시를 쓴다.
 
을사늑약에 죽음으로 항거하며 쓴 절명시
전남 광양시 광양읍 봉강면 석사리 매천 생가 마당에 세워진 절명시 시판. [사진 송의호]

전남 광양시 광양읍 봉강면 석사리 매천 생가 마당에 세워진 절명시 시판. [사진 송의호]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이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沉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秋鐙揜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 어렵구나
 
56세에 생을 마감하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 선생의 절명시(絶命詩)다. 글 아는 선비가 500년 조선의 망국을 접하고 선택할 길은 달리 없었다. 죽음으로 항거하며 절의를 지키는 순절(殉節)뿐이었다. 선비들의 연이은 순절은 올해로 100년째를 맞는 3‧1 만세운동을 태동시키는 한 발단이 됐다.
 
지난 1월 전남 광양과 구례로 매천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선생이 순절한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월곡마을 대월헌(待月軒) 뒤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 매천사(梅泉祠)가 들어섰다. 그는 대월헌 오른쪽 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매천은 절명시 4수와 유서를 쓴 뒤 더덕주에 아편을 넣어 음독한다. 그는 동생 황원에게 “세상일이 이리되었으니 선비는 당당히 죽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 정상영 회장이 전남 구례 매천사 앞에 섰다.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 정상영 회장이 전남 구례 매천사 앞에 섰다.

 
매천의 절명시가 지난달 언론에 일제히 재조명됐다. 순절로부터 3년이 지난 1914년. 35세 승려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매천을 기린 한시를 지어 유족에게 전한다. 인근 구례 화엄사에 강연하러 왔다가 매천을 잊지 못한 것이다. ‘의리로써 나라 은혜를 갚으시니/한 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네/이승에서 끝나지 않은 한을 저승엔 남기지 마소서….’
 
통찰력 번득이는 시 2500여 수 남겨
문화재청이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돌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이 친필 추모 시 이미지를 공개하고 있다. ‘문화재에 깃든 100년전 그날’이란 특별전이다.
 
구례 서시천 체육공원에 세워진 '매천황현선생시비'

구례 서시천 체육공원에 세워진 '매천황현선생시비'

 
매천은 문장가이면서 동시에 지사였다. 글과 행동은 일치했다. 문사로서 그는 시인이자 사가였다. 감성과 통찰력이 번득이는 시 2500여 수를 남기고 또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비판적으로 기록했다. 『매천야록(梅泉野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매천이 태어난 곳은 구례 남쪽 광양시다. 백운산 앞자락 광양읍 봉강면 석사리에는 초가인 생가 매천헌이 복원돼 있다. 방문을 열자 동그란 안경 너머 눈동자가 강렬한 눈에 익은 매천의 초상화가 있었다.
 
1911년 채용신이 사진을 보고 그린 황현 초상화. [사진 광양시 제공]

1911년 채용신이 사진을 보고 그린 황현 초상화. [사진 광양시 제공]

 
문화관광해설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여름 이곳에 들러 초상화 앞에 큰절을 올리며 선생의 비판정신을 기렸다”고 설명했다. 생가 왼쪽 600m 떨어진 곳에는 묘소 등이 있는 매천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 묘소 앞과 그가 은둔했던 구례군 만수동 구안실 매천(梅泉)샘 옆 매화는 지금쯤 움을 틔웠을까.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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