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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본 몰카영상, 누군가에겐 피눈물이란 생각 해봤나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22)
공중화장실에서 경찰관, 상인회장, 지역 생활안전협의회원, 시민경찰이 합동으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중화장실에서 경찰관, 상인회장, 지역 생활안전협의회원, 시민경찰이 합동으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장실이 급하다. 어렵사리 찾아 뛰어온 공중화장실. 그러나 볼일을 빨리 볼 수가 없다. 일단 천장, 벽, 손잡이, 변기 주변, 휴지걸이 등을 살핀다. “음~~ 안전한 것 같군.” 안심될 때 그제야 화장실에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최근 한국에 사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체크하는 일이다. 화장실, 지하철, 일터…. 첨단 초소형 카메라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딘가에 설치돼 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 있어.” 불안과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이렇게 찍힌 영상물을 우리는 ‘몰카(몰래카메라) 영상’이라고 부른다. ‘몰카’라 부르는 불법 영상물이 차고도 넘친다고 한다. ‘몰카’라고? 그런데 ‘몰카’는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난쯤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것이 누구에게 흥미를 주는가. 찍힌 당사자에게는 치욕스러운 범죄 피해인데…. 그래서 이제 ‘몰카’가 아닌 ‘불법 카메라’라 부르기로 했다.
 
남자친구 집에서 샤워하다 뛰쳐나온 여성
남친과 같이 집에 갔습니다(이제 남친이라 부르기도 무섭고 싫네요). 샤워하려다 보니 샴푸가 바닥나 여분의 샴푸를 가지러 거실로 나왔죠. 근데 그놈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 너무 무서워서 옷만 입고 뛰어나왔어요.

평상시에 그놈이 “난 야동도 자연스럽게 평범한 사람이 나오는 게 좋아” 이런 말을 했는데…. 너무 소름 끼치고 무서워요. 이제 내가 야동 속에 등장하는 ‘일반인 여자 1’이 돼 있을 것 같아 너무 괴로워요. 지금 괜히 신고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영상을 지울 수 있을까요?
 
어느 대학의 대나무 숲에 올라온 글이다. 이렇게 찍힌 동영상은 그 영상의 주인공은 까맣게 모르는 상태에서 동의 없이 ‘국산 야동’이란 제목이 붙어 웹하드, SNS, 페이스북, 여러 포르노 사이트에 성인 동영상물로 유통된다. 심지어 영상 유출로 심한 충격을 받고 자살한 여성의 영상은 유작이란 이름을 붙여 더 비싼 가격으로 웹하드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비싼 값이라야 50원, 100원, 200원의 가격이다.
 
몰카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볼펜, 자동차 열쇠, 라이터, 시계 모양 몰카는 물론(위), 샤워기 구멍을 이용한 몰래카메라도 등장했다(아래). [중앙포토]

몰카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볼펜, 자동차 열쇠, 라이터, 시계 모양 몰카는 물론(위), 샤워기 구멍을 이용한 몰래카메라도 등장했다(아래). [중앙포토]

 
스무 살 때 대학에 갓 입학해 첫사랑을 만난 여학생 A의 이야기다. “남자친구 B는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고, 나는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에게 되도록 맞춰 주려 했죠. 그런데 너무 집착해 많이 고민하다가 헤어지자고 말했어요. 그 말을 들은 B는 화내며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뜻을 굽히지 않자 사랑하는 동안에 찍었던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겁니다. 신상이 털렸다고 얘기하죠.
 
처음에는 그 사실조차 알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은 거예요. 영상 속 인물이 너와 비슷하다. 확인해 봐라. 설마 하고 너무 두려워 며칠 동안 컴퓨터를 열어 확인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이미 수만 명의 사람이 내가 주인공인 촬영물을 본 후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여학생 A는 과거의 삶과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나체를 본 가족과 아침마다 밥을 먹고, 그 영상을 본 친구들과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며 어울려야 했어요.” A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클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궁리 끝에 피해자 A는 영상물을 지워 주는 디지털 장의사란 업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영상물이 유포된 지가 좀 오래되어 완벽한 삭제는 어렵다고 했지만, 삭제 업체에 매달 100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처음엔 3개월을 계약했지만, 영상은 모두 삭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반복해 연장했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영상 파일은 삭제하고 삭제해도 끝이 없이 또다시 등장한다. 피해 여성은 디지털 장의사란 업체에 지불할 돈을 마련해야 했다. 집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고, 학교를 휴학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에 매달려 1년 넘게 삭제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얼굴 성형도 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저 사람이 내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을 사랑했던 대가가 너무 가혹했다.
 
이별 보복 동영상의 희생양, 얼굴 성형까지
곳곳의 여자 화장실을 가면 문고리, 벽면, 문짝 등에 구멍이 뚫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여성들은 이 구멍을 휴지로 틀어막는다. 몰카가 구멍에 자주 설치되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곳곳의 여자 화장실을 가면 문고리, 벽면, 문짝 등에 구멍이 뚫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여성들은 이 구멍을 휴지로 틀어막는다. 몰카가 구멍에 자주 설치되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이런 영상물을 이별에 대한 ‘보복 동영상(리벤지 포르노)’이라고 부른다. 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늦게나마 인지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런 피해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촬영물이 유통되고 있다.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물은 저작권이 있지도 않다. 대부분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디지털 성범죄의 발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화장실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동의해 찍는 내 방일 수도 있다. 그렇게 찍힌 영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또 영구히 삭제되지도 않는다.
 
피해자는 한 명이지만 이 영상을 유포하고 소비하는 사람까지 가해자는 다수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피해에서 보듯 헤어진 부인이나 여자친구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소지하고 있다며 유포 협박의 빌미가 되고, 데이트 폭력과 현실의 물리적 폭력까지 연결돼 있다.
 
최근 연예인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화제가 될 때면 커뮤니티에는 노골적으로 ‘그 영상 보고 싶다’는 글이 수없이 많이 올라오고 영상물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인터넷을 뒤지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훔쳐보고자 하는 관음적 호기심은 피해자에게 또 한 번의 2차 피해를 준다. 화면 안에 벌어지는 범죄행위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소한 일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소비가 된다. 그래서 디지털 성범죄는 더 악랄하고 비열한 범죄다.
 
그런데 지난해 말 디지털 성범죄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는 범죄 영상을 올리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팔고, 유해물을 필터링하겠다고 말로는 했지만 안 하고, 동영상을 삭제해 주겠다면서 돈을 챙겨 삭제하고, 또 다른 한 편에서 다시 그 영상을 올려 어마어마한 수익을 챙기고…. 그 모든 것이 한통속인 무서운 카르텔이 있음이 천하에 밝혀졌다.
 
또 정부의 음란물 사이트 접속 차단 정책에 반발한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야한 동영상을 볼 권리에 대한 자유권을 이야기한다. ‘야한 동영상을 안 보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피켓을 들었다. 이 구호만으로도 야동을 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해 불법적 방식으로 음란물로 만들어 소비하는 현실에서 이를 소비할 자유를 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군가의 고통의 대가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권리 따위는 없다. 불법 촬영한 자, 유통하는 자는 아주 질이 나쁘다. 촬영물을 유포하고 유통되는 단계에서부터 미리 차단하는 것이 삭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소비하는 자가 없어진다면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은 발을 붙일 수 있을까. 우리는 단돈 100원으로라도 누군가의 피눈물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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