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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퍼스펙티브] 느슨한 지식재산 보호, 창업 의욕 꺾는다

지식재산 강국의 길
애플·구글·아마존·알리바바 같은 세계적 기업이 대출을 받기 위해 한국의 은행에 담보를 맡긴다면 얼마나 인정받을까. 은행들은 우선 부동산 전문가를 파견해 실사를 벌일 것이다. 자산이란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이라는 고정관념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회사가 미국·일본처럼 선진국 은행에 담보를 맡긴다면, 특허·디자인·상표 등 지식재산 정보를 먼저 파악할 것이다. 이 기업들의 기업 가치는 유형자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허·디자인 등 무형자산에 대부분의 가치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의 자산 중 무형자산 비율은 80%에 육박한다.
 
유럽 지도를 보면 특이한 점이 보인다. 영국이란 나라는 지리적으로 변방에 고립된 섬나라다. 그런데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허 보호가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특허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일정 기간 배타적으로 독점권을 행사하며 사업할 수 있게 보호해주는 제도다. 발명을 장려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특허 보호로 일어난 영국 산업혁명
 
특허 개념은 147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창안됐다. 베네치아 군주는 새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에게 독점 사업권을 주었다. 그랬더니 새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이 도시에 몰려와 사업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베네치아는 가장 번성한 도시국가가 됐다. 이 제도를 물려받은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은 1624년 발명가에게 독점권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새 아이디어가 돈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표적 예가 1769년 증기기관 특허를 취득한 제임스 와트다. 와트는 이 특허 덕분에 막대한 부와 명예를 이룬다. 유럽의 많은 발명가가 영국으로 몰려들고, 영국이 산업혁명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식재산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특허·상표·디자인·저작권이다. 특허는 새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발명으로 가장 기본적 지식재산이다. 디자인은 제품의 독창적 형상에 대해 보호하는 제도다, 상표는 기업이나 제품의 이름으로 인지도를 인정받는다. 인지도가 높은 상표는 독점적 권리로 인정을 받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한다. 그리고 저작권은 소프트웨어·문학· 음악·미술에 관한 독창성을 인정하는 제도다. 특허와 디자인은 20년, 저작권과 컴퓨터 프로그램은 공표된 뒤나 혹은 저작자 사후 70년간 보호받는다. 그리고 상표는 10년 단위로 연장해 보호받는다.
 
지식재산이 독점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지금은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권리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독점권이 양도와 임대가 가능한 자산이 되고 있고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는 법적 소송 대상이 됐다. 회사 자산의 대부분이 지식재산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추세다. 그동안 토지·현금·건물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행위가 지식재산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식재산 방치하는 대한민국
 
21세기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은 지식재산 분야에선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특허청으로부터 받은 특허증이 분쟁이 발생하면 절반가량(2018년 기준 45.6%)이 무효가 된다. 일본 21%(2017년), 미국 25.2%(2018년)에 비해 차이가 크다. 특허가 무효가 되면 그 재산은 허공에 날아가 버린다.
 
실상이 그러니 은행에서 특허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지금도 벤처기업이 특허를 활용하여 사업을 하려고 금융권을 두드려도 지식재산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는 불법적인 연대보증이나 중소기업 기술 탈취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특허를 평가하여 가치를 인정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기술을 침해해도 벌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의 특허 소송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이긴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혹 이긴다 해도 손해배상액이 너무 적어서 상처뿐인 영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이전에는 손해배상액의 중앙값이 7600만원이던 것이 그 이후에는 2억 4300만원이라는 통계가 조금 위안을 줄 뿐이다. 이 모든 일은 지식재산을 소홀히 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지식재산 보호를 허술하게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는 심각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부딪치는 고용과 성장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새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려 해도 걱정이 앞선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침해하면 속수무책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창업 의욕을 꺾는다. 창업 후 다른 기업이 침해하면 침해 배상을 받기 어렵다.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지식재산 소송에서 보듯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생사가 걸릴 정도의 배상액을 물린다. 한국에서 무형자산을 허술하게 관리해 회사가 망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제도가 지식재산 보호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고, 허술하게 관리되기 때문에 공격엔 속수무책 당하기 마련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식재산 전쟁
 
미국은 1787년 건국 헌법에 특허 보호를 명시하고 강력한 특허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지식재산을 국가의 중요한 어젠다로 설정하고, 무역과 연계시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가 바로 오늘의 미국이다. 과거 영국이 특허제도를 채택하여 유럽의 변방에서 선진국으로 일어섰던 과정과 동일하다.
 
전 세계에서 새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꿈을 실현하고자 미국으로 향한다. 2016년 미국정책재단(NFAP)은 자산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 창업기업 87개 중에 44개(51%)가 이민자가 세운 회사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일런 머스크(테슬러, 남아프리카), 세르게이 브린(구글, 러시아), 앤드루 그로브(인텔, 헝가리), 제리 양(야후, 대만), 피에르 오미디야르(이베이, 프랑스)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한 꺼풀 벗겨보면 지식재산 전쟁이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 등 선진국의 특허를 침해해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통신장비회사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孟晩舟)를 억류한 사건의 핵심은 기술을 무단 침해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중국은 특허를 강하게 보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2017년 3월에 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지식재산권 종합관리계획’을 발표한 이후 국무원에서 ‘지식재산 강국 건설 가속화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7월에 시진핑 주석은 중앙재경영도소조에서 ‘지식재산권 보호와 침해자 엄벌’을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2018년 12월에는 국무원에서 특허 침해를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이 3배 배상인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배상률이다. 변화에 느린 보수 국가로 알려진 일본도 지식재산에서는 빠른 행보를 보인다.
 
지식재산 중심 국가로 깨어나야
 
잠자고 있는 한국도 이제 눈을 떠야 한다. 첫째, 대한민국을 ‘지식재산 중심 국가’로 선포하고, 그에 맞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산업정책과 연구개발에서부터 창업·기업평가·자산관리·분쟁해결·통상·경제운영까지 모든 일을 지식재산 중심으로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식재산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무형자산이 얼마나 많이 빠져나가고 있는지 보인다.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확대 개편해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지식재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해야 한다.
 
둘째, 지식재산 보호를 위한 강력한 법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현재 타인의 지식재산을 침해해도 처벌이 약하고 배상액이 낮다. 그러니 침해하는 일이 자꾸 재발한다. 고의로 지식재산을 침해하면 절도죄 수준의 엄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사실 유형의 자산이든 무형의 자산이든 똑같은 자산인데, 현재 무형자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면이 있다. 그리고 배상액도 미국과 중국 수준으로 대폭 올려야 한다.
 
소프트웨어 보호는 특히 절실하다. 현재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약체 국가가 된 이유가 그동안 소프트웨어를 보호하지 않아 우수 인력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뉴스 저작권도 마찬가지로 보호돼야 한다. 남이 먼저 쓴 기사를 베끼어 쓰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어느 누가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겠는가.
 
셋째, 지식재산 전문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기 때문에 인력 양성이 기본이다. 그래야 무형자산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 관리 방식이 바뀐다. 지금은 무형자산을 침해당했다고 경찰과 검찰에 신고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담당자가 이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교육 프로그램에 지식재산 강의가 포함돼야 한다. 은행도 무형자산을 평가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부동산만 담보로 요구한다. 금융권의 지식재산 평가 능력이 획기적으로 제고돼야 한다. 특허 무효율이 높은 이유는 부실 심사에 있다. 미국 심사관은 일 년에 79건, 일본은 168건을 심사하는 데 비해 한국 심사관은 205건을 심사하고 있다. 공무원 증원해야 할 곳은 바로 이런 곳이다.
 
기업 자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무형자산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 자산이 숭숭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일은 추가로 큰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제도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때, 문을 걸어 잠그고 태평하게 지내던 구한말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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