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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화장실의 자유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성인이 된 걸 처음 실감한 때를 기억한다. “저, 화장실 가도 돼요?” 습관이 돼 하마터면 말할 뻔한 문장을 부여잡고, 교수님의 목소리를 강의실 문 뒤로 닫아둔 채 화장실에 갔다. 이제 손들지 않고, 허락받지 않고 가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도 되는구나. 교과서 속 뜬구름인 줄 알았던 자유란 게 손에 잡힌 휴지만큼 명백했다.
 
화장실은 자유의 공간화다. 90년대까지 남자화장실만 있는 곳이 많았다던 나의 대학엔 몇 년 전 드디어 교수연구실 층에도 여자화장실이 생겼다. 여성의 자유가 늘어난 곳엔, 여성 화장실이 생긴다. 유흥주점 방 안에 특정 성별을 위한 화장실만 하나 딸려 있다면, 그것은 그 방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성별이 누구인지 표시해 놓은 것이다.
 
모두의 자유가 늘어난 곳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생긴다. 7년 전, 스웨덴에서 낯선 화장실을 마주했다. ‘남성용 화장실’ ‘여성용 화장실’ ‘장애인용 화장실’ 등 입장 자격을 확인하고 알맞게 들어가려 했는데 그런 표지가 없었다. 사람 그림만 그려진 똑같은 객실만 여러 개 주르르. 그중 하나의 문을 열어 보니, 비행기 안 화장실처럼 변기와 세면대 등 모든 게 1인용이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시간을 혼자 보내고 나올 수 있도록.
 
누군가와 동시에 화장실을 쓰는 건 불편한 일이다. 오죽하면 ‘누르면 물소리가 나는 벨’이 칸칸이 설치되던 때도 있었다. 내 안전과 편안함은 타인이 쥔다. 여자화장실이라도 입구에서 마주친 저 사람이 ‘여자처럼’ 보이는지 봐야 한다. ‘물줄기’를 신경 쓰는 우리 사회에서 남자화장실이라고 편할 리 없다. 타인에 대한 불편은, 동성이라면 감수해야 하는 것이 된다.
 
요즘 ‘성 중립 화장실’이란 말로 이슈가 된 그 화장실의 본질은 ‘나만 쓰는 공공 화장실’이 아닐까 싶다. 사람 단위로만 세는 공간엔 성별뿐 아니라 모든 분류가 불필요하다. 너는 어느 쪽이냐 묻는 입구에 대고 소설 ‘광장’의 이명준처럼 “중립”이라고 답할 결연함도 필요 없다. 나만 쓰는 화장실엔 나의 자유만 있을 뿐이다.
 
더 많은 공간, 더 잦은 점검, 가능한 범죄에 대한 더 정확한 처벌이라는 비용에 대한 동의가 모인다면 우리는 화장실이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게 할 수 있다. 먹는 일은 능력과 차별의 영역이지만 배설은 귀천도 계급도 없는 평등의 영역이니까. 우리의 가장 원초적이고 사적이며 동등한 일을 나만의 자유가 허용된 공간에서 행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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