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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이코노믹스] 기업에 칼 휘두르는 빌미일 뿐…연금은 망가져

스튜어드십코드 완장 찬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경영 개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첫 타깃은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식의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바꾸고 임원 해임 관련 정관 개정을 요구하기로 했다. 전 세계 주요 연금 중 경영 참여를 공식화한 곳은 국민연금밖에 없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방향을 주총 2~3일 전에 공개하기로 했다. 다른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들의 ‘쏠림 투표’를 유도해 가지고 있는 지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스튜어드십코드 애초 나쁜 의도
‘연금사회주의’의 수단 전락 우려

세계적으로 높은 기업지분 악용
경영 개입하는 자체가 직권남용

연금의 경영참여 공식화 한국뿐
기업성장 잠재력 잠식할 공산 커

정부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은 이런 변화를 스튜어드십코드로 합리화하고 있다. 투자기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서 고객이 맡긴 돈의 수익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내용을 살펴보면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일”이다. 수익률을 내세웠지만 기업을 좌지우지하고 한국을 ‘연금사회주의’로 몰아가려는 수순같다. 또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빼주겠다”는 얘기다. 경영 개선에 있어서 국민연금은 기업보다 훨씬 무능하고 이해 상충을 많이 갖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의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지극히 비정상적인 기업 지분을 직시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기업 지분의 10%, 상장기업 지분의 7%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는 1% 부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그림 1). 일본연금(GPIF)만 5%를 상회하지만 모두 민간회사에 위탁운용한다. 의결권도 함께 위탁하기 때문에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영(零)’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전체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확립된 기관투자가 규제 원칙은 내부거래금지와 투자 다변화 촉진이다. 소위 ‘5%룰’은 그 정신에 입각해 만들어진 규제이다. 한 기업의 주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영향력을 활용해 내부정보를 얻어내기 쉬워지는 한편 주식을 팔려고 할 때 쉽게 팔지 못한다. 따라서 5% 이상 지분 갖는 것을 가능한 억제하고, 5%를 넘을 때는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
 
국민연금

국민연금

이런 규제 철학에 비추어 볼 때 국민연금은 기본 원칙을 저버렸다. 그간 국내주식투자 수익률이 별로 나쁘지 않아 비판이 없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이미 국민연금은 작년 국내 주식투자에서 16.8%의 마이너스 수익률로 22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손실이다(그림 2). 그러나 스튜어드십코드 추진자들은 비판의 과녁을 엉뚱한 곳에 겨눠왔다. 비정상적인 지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의 ‘대주주’이기 때문에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과거 정상적 투자나 의결권 행사를 크게 잘못한 듯이 왜곡했고 이것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빌미로 사용했다.
 
영미(英美)에서 스튜어드십코드는 원래 무능하고 이해 상충 문제를 많이 가진 기관투자가들이 자기 허물은 감추고 집사로서 임무를 다하고 있는 듯 포장하기 위한 립서비스인 ‘자율규제’로 출범했다. 그래서 지난 30여 년 기관투자가 행동주의는 ‘약탈적 가치 착출’만 불러왔다. 기업이 투자자 압력에 밀려 자사주 매입, 배당 등 ‘주주환원’을 늘렸지만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기업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고 고용 불안, 분배 악화라는 부정적 결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관투자가 행동주의를 부추기는 규제가 도입되면서 미 주식시장에선 순유출액이 급증했다(그림 3). 미국의 대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벌어들인 이익의 60%가 넘는 4조 달러(약 4300조원)의 돈을 ‘주주가치’를 높인다며 자사주를 매입해 태워 없애는 데 썼다. 이런 기관투자가 행동주의의 허점을 이용해 큰돈을 버는 세력이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이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게  8조원 규모의 특별배당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에선 2011년 행동주의를 추가로 강화하려는 법안이 추진되자 법원이 그동안 연구사례를 취합해 “특수 이해관계를 가진 기관투자가들, 특히 공공연금과 노조연금들이 (법안 개정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개연성이 높다”며 행동주의 강화 법안을 폐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스튜어드십코드가 재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학자·정치인을 통해 추가로 왜곡됐다. 도화선은 2017년 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재벌개혁 공약’이었다. 그는 “주주권 행사 모범규준인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고…그래서 삼성물산 합병에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당선 후 스튜어드십코드는 정부의 ‘경제운용방향’에 ‘공정경제’ 실현 수단으로 못박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돈이다. 세금이 아니다. 재벌 개혁이 필요하면 공정거래위원회 등 담당부처가 하면 될 뿐이다. 가입자들은 집사가 노후자금을 잘 굴려주기만 바랄 뿐 재벌개혁에 나서라고 동의해준 적이 없다. 그렇지만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국민연금을 가입자의 집사에서 재벌개혁의 집사로 왜곡했다. 이 왜곡에 동원된 삼성물산 합병 건도 그 실상이 크게 왜곡돼 있다. 당시 국민연금의 투표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수익률이었다. 합병은 수익이 나는 일이었다. 합병 발표로 삼성물산 주가가 이미 15%가량 뛰었고 투표 당일까지 그 수준을 유지했다. 재벌 비판론자들은 이 상황은 언급하지 않고 합병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진 사실만 부각시키면서, 주가가 떨어질 것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 로비를 받아 찬성표를 던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주가 떨어질 가능성을 알았다면 외국의 내로라 하는 기관투자가들도 알았을 터이고 삼성물산 주식을 팔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 주식을 팔지 않았다. 주가가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봐야 한다. 그 후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진 것은 호주에서의 대규모 부실시공 등 다른 이유가 많았다.
 
현재 644조원인 국민연금기금은 2040년경까지 최고 1777조원 규모로 급증한 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급전직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당장은 기금 규모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파워는 더 막강해진다. 그 힘을 특정 목적이나 이익에 사용하고 싶은 유혹은 달콤하다. 그러나 그 이후 국민연금의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젊은 세대가 부담을 다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칼을 휘두르면 일부 국민에게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의 중장기 가치가 올라간다는 보장은 없다. 연금 가입자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은 더욱 없다. 정부는 국민연금에 대한 ‘직권남용’을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기관투자가 행동주의, 주가에 긍정적 효과 없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가들의 행동주의적 개입을 통해 기업의 중장기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기관투자가 행동주의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지 40년 가까이 흘렀고 이미 수많은 실증연구가 이루어졌다. 2010년경까지 진행된 실증 연구들은 기관투자가 행동주의가 긍정적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배당, 자사주 매입 등 단기이익을 추구한 경우가 많았고, 행동주의에 나서는 공공연금·노조연금 등이 주가 상승보다 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주의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를 전반적으로 옹호하는 대표적 학자인 하버드대 베브척(Bebchuk)과 그의 동료들조차 “기관투자가 행동주의는 긍정적 영향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이들은 주가 상승만을 목표로 삼는 헤지펀드 행동주의의 실증연구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현재 많은 행동주의 옹호자들은 베브척과 그의 동료들이 내놓은 헤지펀드 행동주의 실증연구를 인용해 기관투자가 행동주의가 중장기 주식 가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베브척과 동료들의 연구 또한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사용한 통계는 신뢰성과 타당성을 크게 결여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Compustat)에 있는 기업들의 절반가량이 5년 이내에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5년 후에 생존한 기업의 평균 성과가 처음에 있던 전체 기업의 평균 성과보다 좋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사라진 기업의 성과를 쏙 빼놓고 ‘반쪽 비교’만 한 뒤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계 왜곡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워싱턴대 데한(Ed deHann)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지난해 내놓은 논문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 전에 이익률이 상승하던 기업은 다른 이유 때문에 이익률이 올라가고 있었고, 헤지펀드 개입 이후에도 계속 그 추세를 유지했으면 그 이유를 헤지펀드 개입에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데한과 그 동료들은 과거 추세치를 감안하면 헤지펀드 행동주의조차 주가 상승에 긍정적 효과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영미에서 처음 탄생한 스튜어드십코드가 애초에 나쁜 의도로 출발했으니 결과도 좋게 나올리 없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 기업과 혁신, 산업과 금융, 한국경제사가 관심사다. 『왜곡된 스튜어드십코드와 국민연금의 진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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