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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참사’ 하노이 북·미 회담 뒤집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이번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정말 ‘참사’로 끝난 건가. 지난달 28일 오후 담판 결렬이 선언되자 “30여 년 전 레이캬비크 회담 꼴이 났다”는 분석이 세계 언론에서 쏟아졌다. 졸지에 화두가 된 이 회담은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역사적 담판이다. 주인공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핵 감축을 다룬 이 회담은 사전 합의가 없었던 것이나 타결에 실패한 점 등 곳곳에서 이번 하노이 회동을 빼닮았다.
 
사전 합의가 빠진 건 급조된 탓이었다. “핵 감축을 위해 만나자”는 고르비의 제안을 레이건이 바로 받았다. 말 나온 지 11일 만에 회담이 이뤄졌으니 실무진 간 합의가 있을 틈이 없었다.
 
초반엔 핵 감축에 관한 대타협이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미사일을 요격해 떨어뜨리는 미국 ‘전략방위구상(SDI)’이 막판에 발목을 잡았다. 기술을 나눠줄 테니 개발을 인정해달라는 레이건의 요구를 고르비가 거부해 회담은 깨진다. 당시엔 즉흥적 정상회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실패작이란 비아냥이 넘쳐났다.
 
그러나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핵 감축 의지와 함께 상대의 구체적 바램을 확인한 게 큰 수확이었다. 결국 SDI를 받기로 마음먹은 고르비가 1987년 12월 미국에 가 1년 전 합의에 실패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사인한다. 이런 곡절을 겪은 터라 레이캬비크 회담을 지금 돌아보면 실패라 할 수는 없다.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디딤돌로 보는 게 옳다.
 
하노이 회담이 제2의 레이캬비크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 큰 틀에서 북한이 양보해야 한다는 거다. 회담을 박차고 나온 격인 트럼프이지만 그가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나쁜 합의(bad deal)’ 대신 ‘합의 무산(no deal)’을 택한 그의 판단을 미 여론이 지지한다. 게다가 트럼프의 눈앞에는 러시아 스캔들, 대중 무역전쟁, 국경장벽 등 온갖 국내 문제가 쌓여있다. 북핵에 신경 쓸 여력이 당분간은 없단 얘기다.
 
이런 흐름 속에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 결렬 다음 날 3·1절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이 먼저 설득해야 할 목표는 과연 미국일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막고 있는 유엔 제재 해제는 미국이 양해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를 바꾸려면 거부권 있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 중국·러시아는 그렇다 쳐도 영국·프랑스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문 대통령의 지난해 말 유럽 순방 때 드러나지 않았나. 유럽 나라들이 북핵에 얼마나 강경한지 말이다. 하노이 회담을 제2의 레이캬비크로 만들려면 한 가지 밖에는 없다. 북한이 영변 외에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 등 주요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약속하는 거다.
 
국내 정치가 그렇듯, 국제관계도 ‘생물’이다.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노이에서 만난 한 미국 기자는 “갈수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와의 타협을 망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줄고 있어 김정은으로서는 다음 대통령과 승부를 보려 할 거란 관측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전임자인 빌 클린턴의 대북 유화정책을 뒤집은 전례 때문에 북한은 트럼프와의 거래를 피할 공산이 크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김정은-트럼프 간의 대타협 가능성은 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나서 하루빨리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도 폐쇄하라고 김정은부터 진지하게 설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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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