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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볼턴의 복수

최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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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초로 핵실험 버튼을 누른 4개월 뒤인 2007년 2월 13일. 영변 핵시설의 폐쇄·불능화, 핵사찰의 수용 대신 중유 지원을 받는 북·미 간 ‘2·13 합의’가 이뤄졌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위한 양자대화도 시작됐다.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 일행이 직후 관계 정상화 협상을 위해 뉴욕을 찾았다. 경호원 15명과 4대의 리무진 등 국빈급  대접을 받은 이들이 떠들썩한 교섭 장소로 고른 곳은  대북제재를 주도하던 존 볼턴 유엔대사의 관사였던 월도프 호텔이었다. 미국의 찰스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는 “오랫동안 북한을 경멸해 왔던 미국 내 대북 강경노선에 대해 북한 측이 침을 내뱉는 듯한 장면 같았다”(『실패한 외교』)고 이 상황을 묘사했다.
 
당시 이라크전 여론 악화와 북핵 관리 실패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하자 공화당 부시 정권은 등 떠밀려 북한과의 ‘비핵화’ 딜에 나선 처지였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가 퇴진하고 볼턴 역시 민주당 주도 상원에서 자신의 연임 인준 가능성이 사라지자 대사직을 포기한 시점이었다.
 
“북핵의 유일 해법은 북한 정권 와해(regime collapse)”라는 당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이 볼턴이었다. 예일대 최우등 졸업에, 예일대 로스쿨 박사인 그는 외교를 선악의 ‘도덕적 가치’로 접근한 딕 체니 부통령 휘하의 네오콘 광신도이자 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였다. 북한을 ‘최악의 스탈린주의 국가’,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선언한 1기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그는 “나쁜 행동엔 보상 없다(No reward for Bad behavior)”는 대북 원칙의 행동대장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카운터 파트였던 청와대의 이종석 NSC 사무차장에겐 “노 정부의 유일한 장점은 북한에 대해 당신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전혀 알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그의 도덕적 외교로는 북한에 어정쩡한 동맹은 동맹이 아니었다.
 
12년 뒤 하노이의 북·미 정상회담장. 김계관은 사라지고 볼턴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귀환했다. 참사의 예고였다. 참석 자체도 애매했던 그는 회담 시작 전 “이틀간 논의할 것이 많다(Much to discuss)” 는 트윗을 날렸지만 사랑에 빠졌다는 북·미 정상 간 분위기는 그 의미를 놓치게 했다. 볼턴의 맞은편 확대회담 자리는 비어 있었다.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을 주장하던 그를 “인간 쓰레기”라고 비난하던 북한의 유령인간 취급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놓친 건 바로 볼턴이자, ‘볼턴’으로 상징되는 미국 내 강경 기류의 부활이었다.
 
최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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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회담 결렬 직후 “우리가 따로 발견한 핵시설을 알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이 굉장히 놀란 듯했다”고 전했다. 볼턴은 “영변 내외의 또 다른 핵시설, 심지어 생화학무기 등 모든 WMD(대량살상무기)의 리스트를 꺼냈다”고 어제 구체화했다. 김정은의 면전에서 거짓을 추궁했다는 얘기다. 미국 정치의 가장 오래된, 험한 모욕은 ‘매국노(betrayer)’와 ‘거짓말쟁이(liar)’다. ‘최고 존엄’ 김정은의 당혹감이란 상상조차 어렵다.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죽음을 나중에 알았다는 김정은의 언급에 북한을 ‘수용소’와 ‘기아’로 기억해 온 볼턴의 표정은 어땠을까….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의 서로 다른 역할극(role play)에 대한 김정은의 착시(錯視) 역시 실패를 재촉했다. 싱가포르의 과분한 대접에 이어 당근을 계속 매단 이는 ‘굿 캅(good cop)’ 폼페이오 장관이다. 하지만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채찍을 쥐고 있던 ‘배드 캅(bad cop)’은 볼턴이었다. 미·중 수교 접촉 당시 굿 캅이던 실세 키신저 보좌관 대신 철저히 소외된 윌리엄 로저스 국무장관은 중국을 계속 비난하며 ‘역사의 바보’ 역을 맡고 말았다.
 
회담 당일까지 낙관론과 남북경협의 부푼 꿈을 거론하던 우리 정부 역시 볼턴을 놓치고 말았다. 폼페이오와 비건 특별대표의 국무부 라인이 교섭을 주도하던 상황극에서 볼턴의 카운터 파트였던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무대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강경화 외교장관- 평화교섭본부장 등의 외교부 라인이 나섰지만 그 내공만큼의 낭패를 겪고 말았다. 싱가포르에서 하노이까지의 260일 동안. 북한은 탄두 8기만큼의 핵물질을 더 생산했다는 미국발 보도까지 나오는 지금. 70여 년의 냉전체제를 해체해 보려는 우리 외교안보 진용의 대대적 강화 등 절실함은 시급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김정은 달래기’의 조급함만이 서성거리고 있다.
 
볼턴 또는 볼턴이 상징하는 미국의 완강함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거나…. 이젠 둘 중 하나만이 옵션으로 남게 될 터다. 하노이의 복수에 성공한 듯한 볼턴의 좌우명은 이렇다. “굴복이란 선택지는 없다(surrender is not an o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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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