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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복 황제옷 입고 거울보며 미소…100년 전 파격의 고종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림이 3·1운 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에 처음으로 나왔다. 기존 어진(御眞·왕의 초상화)과 형태·내용이 전혀 달라 주목된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림이 3·1운 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에 처음으로 나왔다. 기존 어진(御眞·왕의 초상화)과 형태·내용이 전혀 달라 주목된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여기 흥미로운 그림 한 점이 있다. 대한제국 고종(1852~1919) 황제가 전신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지그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림으로나, 사진으로나 지금껏 전혀 보지 못한 고종의 모습이다. 희소성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 근대 열강의 각축 속에서 나라를 앗길 위기에 직면했던 고종은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문제의 그림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지난 1일 개막한 ‘자화상-나를 보다’(4월 21일까지)에 나왔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에서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다.  
 
그림을 그린 주체·시기·목적 등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00여 년 전 우리가 선 자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종 황제 어진. 20세기 초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종 황제 어진. 20세기 초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과연 고종이 맞나=새로 공개된 고종 황제 전신상(全身像)은 크기가 작은 편이다. 가로 32.5㎝, 세로 47㎝ 크기다. 전문가들은 “고종 황제가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도상(圖像)이 나온 건 처음이다. 황제 복장이나 얼굴 모양 등을 놓고 볼 때 그림 속 주인공이 고종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림 속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가 입는 면복(冕服·국왕이 제례 때 착용한 관복)인 12장복 차림이다. 12장복은 해·달·별·꿩 등 12개 문양이 그려진 옷을 말한다.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를 천명한 1897년 이전의 조선 왕들은 9개 문양을 새긴 9장복을 입었다. 고종이 머리에 쓴 면류관(冕旒冠)에 달린 구슬을 꿴 줄도 모두 12개다. 역시 이전 왕들은 9개 줄이 달린 9면류관을 썼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한 고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복장”이라고 말했다. 권행가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복식 표현이 자세한 것은 물론 동그란 얼굴 형태가 고종을 닮았다”고 평했다. 미술사학자 목수현씨는 “황제복을 걸친 임금은 고종과 아들 순종뿐이다. 둥글고 온화한 모습이 고종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도 “얼굴의 전반적 형태가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에 나타난 고종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거울을 보는 고종 황제 초상과 함께 전시되는 고종 황제 어진.[사진 서예박물관]

거울을 보는 고종 황제 초상과 함께 전시되는 고종 황제 어진.[사진 서예박물관]

◆누가 언제 그렸을까=고종을 그린 작품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최근 낸 『어진, 왕의 초상화』에 따르면 고종은 1902년 어진을 만드는 도감(都監·임시관청)을 직접 설치하는 등 어진 제작에 관심이 컸다. 황제 집무복인 황룡포(黃龍袍) 차림의 어진이 국립중앙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당시 어진도감에서 고종의 초상을 다수 그린 채용신(1850~1941)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고종 황제의 1904년의 모습. 미국인 목사 윌리엄 아서 노블의 앨범에서 발견됐다. [뉴시스]

고종 황제의 1904년의 모습. 미국인 목사 윌리엄 아서 노블의 앨범에서 발견됐다. [뉴시스]

대부분 정면을 바라보는 기존 어진과 달리 이번 고종 초상은 측면상이다. 작품 오른쪽에 ‘태상황제 사십구세 어용초본(太上皇帝 四十九歲 御容初本)’이라 적혀 있다. 태상황제는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순종에게 황제 자리를 강제로 넘겨준 뒤에 붙여진 칭호다. 고종이 49세 되던 해는 1900년. 그림 속 인물과 제작 시기 사이에 7년의 격차가 난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1900년에 그린 고종 초본을 바탕으로 1907년 이후 다시 본뜬 그림으로 보인다. 현재 세종대박물관에 있는 채용신의 ‘미인도’에도 거울에 비친 여인의 뒷모습이 나오는 만큼 이번 작품도 채용신이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다른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그림을 그린 화가·시점 등은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권행가 교수는 “구도·필선 등에서 채용신의 특징이 엿보이지 않는다. 황실보다 민간에서 그렸을 확률이 크다. 1907년 고종 퇴위, 1919년 고종 국장 이후 고종의 형상이 담긴 그림을 소장하려는 욕구가 컸다”고 설명했다. 목수현씨도 “누가 그렸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주체·시기를 확정하기 어렵다. 실제 상황을 그리기보다 그런 정경을 설정한 상상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체 왜 그렸을까=이번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실제 모델보다 거울 속 인물이 부각됐다는 점이다. 거울에 비친 몸체가 더 크고 당당해 보인다. 얼굴 표정 또한 실물보다 밝고 온화한 편이다.
 
2017년 재현한 고종 황제 면류관. 구슬을 꿴 12개의 줄이 달려 있다. [사진 경운박물관]

2017년 재현한 고종 황제 면류관. 구슬을 꿴 12개의 줄이 달려 있다. [사진 경운박물관]

이동국 큐레이터는 “고종 황제는 격변기 대한제국의 버팀목 같았다.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지만 보다 밝은 조선의 내일을 희구하는 고종의 마음, 혹은 민심이 투영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권행가 교수는 “인물의 앞뒤를 모두 보여주는 건 근대 서양화에선 새롭지 않다. 다만 이런 형상이 황제의 그림에 원용된 배경은 아직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목수현씨는 “1919년 고종 타계 이후 추모 열기가 거세게 일었다. 고종 사진첩도 많이 팔렸다. 나라사랑 마음이 담긴 작품일 수 있지만 그건 추정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 시대상이 담긴 그림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보다 정밀한 후속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작품 출처 또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미술기획자로 일하는 국내 소장가가 지난해 프랑스에서 가져왔다. 함께 들여온 대한제국 당시 대신들의 초상 11점도 이번에 공개돼 작품 신뢰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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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