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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인희 보내고…뒤따라 간 삼성가 맏사위

조운해(左), 이인희(右)

조운해(左), 이인희(右)

“‘이리 오세요’ 처음 만난 날 함께 극장을 갔는데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아내가 먼저 팔을 살짝 잡고 나를 이끌어 주었지.”
 
지난 1일 9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조운해(왼쪽 사진) 전 고려병원 이사장은 고(故) 이인희(오른쪽) 한솔그룹 고문과의 첫 만남을 극장에서의 추억으로 기록했다. 2001년 지인에게 선물할 용도로 소량 발간한 그의 자서전 ‘조운해 회고록’에서다. 어둑한 극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을 20대 남자는 아내가 될 사람의 여장부 면모를 첫눈에 알아봤다고 회고했다.
 
이병철의 맏사위이자 평생 의료인으로 살았던 고인은 70년을 함께 산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31일 만에 세상과 등졌다. 고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매형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고모부다.
 
지난 1월 30일 먼저 세상을 떠난 이 전 고문과 고인은 말년까지도 금실이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것은 지난해 말부터였다. 거동과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와병 생활이 이어진 터라 이 전 이사장이 별세했을 당시 주변에서는 “조 전 이사장님께서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고인은 1925년 11월 경북에서 명문가로 이름난 한양 조씨 조범석가(家)의 3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 조씨는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금융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도 조 전 이사장 가문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 동네 친구로 같은 초등학교에서 유년기를 보낸 김집 전 체육부 장관마저 조 전 이사장의 집안에 대해 부러움을 느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먼저 하늘길 여행을 떠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첫째 딸 이 고문과 1948년 11월 만났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박 전 국회의장은 조 전 이사장의 경북중학교 1년 선배였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친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였다. 박 여사가 박 전 국회의장에게 맏딸의 배필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일이 당시 이화여대에서 수학하던 이 전 고문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생전 조 전 이사장은 아내에 대해 “삼성가의 장녀답게 통솔력도 있었고 사업가로서의 재능도 탁월했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그는 아내를 가리켜 “꼬장꼬장한 성격을 가진 자신과 달리 걸걸한 편”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뒤바뀐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기술했다. 고인은 극장에서의 첫 만남과 생활 속에서 느낀 아내 이 전 고문의 성품은 한솔그룹을 이끈 이 전 고문의 여장부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의료인에서 재벌가의 큰사위가 됐지만 조 전 이사장은 그룹의 재산이나 경영 활동과는 무관한 길을 걸었다. 고인은 해방 직전인 1944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나와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해가 1960년이었다. 43세가 되던 1968년 11월에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을 개원했다.
 
고려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그는 동료 의료인을 만날 때마다 “환자를 당신 가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그들 입장에 서서 진료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1984년 2월 고려병원 초대 원장직을 내려놓은 조 전 이사장은 이후에도 고려병원 이사장과 병원협회장, 아시아병원연맹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의료인 외길을 걸었다.
 
고인은 슬하에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과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조옥형·조자형씨를 뒀다. 한솔그룹 그룹장으로 치러진 이 전 이사장과 달리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엄수된다. 장례식장은 삼성서울병원이고 발인은 오는 6일 오전이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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