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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설계 발주, 8조6000억원 생활SOC 망칠라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마을 공공건축의 문제
경북 영주시 들판에 들어선 이곳은 별장도 카페도 아니다. 보건소다(설계 윤승현). 일찌감치 마을 시설 설계의 중요성에 눈뜬 영주시는 건축 투어 명소가 됐다. 건축은 이렇게 마을을 바꾼다. [사진 김재윤 작가]

경북 영주시 들판에 들어선 이곳은 별장도 카페도 아니다. 보건소다(설계 윤승현). 일찌감치 마을 시설 설계의 중요성에 눈뜬 영주시는 건축 투어 명소가 됐다. 건축은 이렇게 마을을 바꾼다. [사진 김재윤 작가]

정부가 생활 SOC 투자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을 본격화하고 있다. 마을도서관·체육센터 등을 짓는 사업이다. 올해 중앙정부 예산만 8조6000억원에 이른다. 소홀했던 동네 환경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늘린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임이 틀림없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결국 토건 사업”이라 싸잡은 비난은 적절치 못하다. 오죽 토건의 악몽에 시달렸으면 그럴까 싶기는 하지만, 모든 건축사업을 토건 공화국적 사업으로 몰아가는 비난은 곤란하다. 오히려 동네 골목을 가꾸고 시민 생활에 밀착한 복지·문화·생활체육 시설을 늘리는 정책이 그간 미진했음을 문제 삼아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걱정거리가 있다. 생활 SOC라는 명칭이 새롭긴 하지만 그 내용까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부 중앙부처들이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보조하는 각종 사업 속에 이미 있던 것들이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사업은 보건복지부, 국민체육센터 조성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 도시재생사업은 국토해양부, 어촌뉴딜 사업은 해양수산부, 농산어촌개발사업은 농림축산부가 해오던 일들이다. 이 가운데 국민 일상생활에 밀착한 시설, 즉 동네시설들을 선별해 ‘생활 SOC’라고 이름 붙인 것뿐이다. 물론 이를 문제라 할 수 없다.
 
걱정은 이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존 사업과 내용만 같은 것이 아니라, 조달하는 방식 역시 그대로 반복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리하여 새로 공급될 생활 SOC 역시 기존 동네 건축처럼 남루하게 설계하고 짓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현재 동네 건축이 설계되는 방식은 둘 중 하나다. 첫째는 가격입찰 설계용역. 공모로 설계자를 선정하는 것은 중·대규모 건축물에나 해당하는 얘기다. 공공건축의 90% 이상인 소규모 건축물, 즉 동네 건축 설계는 가격입찰이다. 가장 싼 값을 부르는 설계자에게 맡긴다는 얘기다. 설계를? 문화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할 디자인을 그럴 리 있냐고? 사실이다. 둘째는 농산어촌개발이나 도시재생, 어촌뉴딜 같은 지역사업에 포함된 건축물이 설계되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도로·방파제 등 토목시설물과 마을회관·도서관 등 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설계를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용역’으로 한데 묶어 가격 입찰에 부친다. 용역을 수주한 엔지니어링 업체는 이 중 건축물 설계를 제삼자에게 넘긴다. 사실상 하청이다.
 
가격입찰이나 하청에 맡겨진 설계가 좋을 리 없다. 파출소·우체국·어린이집·마을회관이 남루하기 일쑤이고 동네마다 찍어낸 듯 똑같은 이유다. 어촌 마을에 애써 새로 지은 선착장이나 여객터미널 건물이 마을 초입 풍경을 되레 허접스럽게 만들곤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또한 이런 싸구려 설계를 찾는 발주 방식 때문이다. 생활 SOC 투자확대 정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야만적인 설계방식이다. 그대로 진행한다면 이들 역시 가격입찰 설계와 하청 설계에 맡겨질 것이 뻔하다.
 
동네 환경과 삶의 질 향상은 생활 SOC의 양적 확대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의 질적 수준 역시 필수 요건이다. 그런데 이런 설계방식을 방치한 채 물량만 확대하는 정책이라면 질적 수준은 언감생심이다. 남루하고 부실한 건축물과 시설이 양산되면서 자칫 생활 SOC가 동네 환경을 망치는 흉물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서울 휘경동 어린이집(설계 윤승현). [사진 김재윤]

서울 휘경동 어린이집(설계 윤승현). [사진 김재윤]

매년 새로 지어지는 공공건축물은 9000개에 이른다. 이 중 90% 이상이 동네마다 들어서는 작은 건축이다. 이들이 하나하나 매력 있게 설계되고 골목골목 보석처럼 자리 잡으며 한 해 한 해 그 숫자를 늘려간다면 우리 동네 풍경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네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선 부실 설계의 주범인 설계 가격입찰과 하청설계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선진 정책 사례들도 있다. 일본 구마모토현이 1988년 시작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건축전문가가 설계자를 추천하거나 설계자 선정방법을 제안해 좋은 공공건축을 만들어내는 정책이다. 미국 뉴욕시는 D+CE(Design and Construction Excellence)를 2004년부터 시작했다. 경찰국·소방국 등 주요 공공건축 발주청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이들이 발주하는 건축물 설계자를 특별관리 풀에서 선정한다. 영국 런던 쇠퇴 지역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건축된 페캄 도서관은 매년 50만 명이 찾는 명소로 지역 재생을 이끄는 활력소가 됐다. 좋은 건축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주민 삶을 풍요롭게 하고 경제적 역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좋은 건축의 가치를 새삼 깨달은 영국 정부는 ‘좋은 공공건축(Better Public Buildings)’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도 유력한 사례들이 있다. 경북 영주시는 2009년부터, 서울시는 2012년부터 공공건축가 및 총괄건축가 제도를 통해 소규모 공공건축 설계자 선정절차를 관리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 규모의 중소도시인 영주시는 좋은 공공건축 정책의 성공 사례로 꼽히면서 전국에서 공공건축 투어를 오는 사람들만 매년 1500여 명에 이른다. 서울시 역시 모든 공공건축 설계에서 가격입찰을 금지하고 설계 공모 방식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면서 주목할 만한 좋은 건축물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그런데 왜 다른 공공기관들과 지자체들은 이런 정책을 채택하지 않는 걸까. 여전히 가격입찰과 하청설계를 허용하는 법령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작은 것을 사소하게 여기는 관행 때문이다. “수많은 작은 것들을 어느 세월에 하나하나 살피라는 말인가. 가격입찰로 간단히 해치우든가 큰 것과 한데 묶어 처리하는 게 답이다. 일 처리가 빠르고 업무량도 비용도 줄어드니 얼마나 효율적인가.”
 
삼청공원 화장실(이소진). [사진 아뜰리에 리옹 서울]

삼청공원 화장실(이소진). [사진 아뜰리에 리옹 서울]

개별적 문제 해결 노력을 비효율로 보는 관행이 너무 강고하다. “효율, 즉 많은 물량의 빠른 처리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그러나 ‘효율’은 개발도상국 시절의 덕목이다. 선진 사례에서 우리를 감탄케 하는 것은 효율이 아니다. 크고 작은 문제 하나하나마다 관련 주체들이 협력하고 갈등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쌓여가는 문제 해결 능력과 조정 능력, 그리고 그것을 저력으로 사회 발전 동력이 생성되는 선순환이다.
 
건축은 생활 장소를 만드는 일이다. 세상에 동일한 장소는 없으니 매번 다른 장소에서 다른 해결책을 고민한다. 창조적 해결능력이 요구되는 일이니 좋은 설계자가 필수다. 우리에겐 이미 우수한 설계인력이 풍부하다. 세계 11위 경제 규모와 남다른 교육열이 낳은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을 공공건축 설계로 연결하지 못한 채 여전히 ‘효율’에 매달리는 설계조달 시스템이다. 표준화와 속도 효율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관행과 행정을 개별적 여건에 맞춘 해결책을 지향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일. 이것이 생활 SOC 정책이 제기하는 진짜 혁신 과제다.
 
생활 SOC 설계가 중요한 이유 또 하나. 동네 건축의 산업적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건설투자액 251조원 중 185조원이 건축투자다. 건설업 전체의 74%가 건축산업이다. 토목산업의 3배다. 이 중 동네 건축, 즉 소규모 건축물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공공·민간을 통틀어 한 해 짓는 건축물 약 20만 동 중에서 소규모 건축물(연면적 1000㎡ 이하)이 90% 이상이다. 건축 연면적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동네 건축은 우리 사회 건축물 대부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산업 규모로 봐도 토목산업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게다가 동네 건축은 골목 경제의 현장이다. 규모가 작으니 설계도 시공도 작은 업체들 담당이다. 당연히 일자리와도 직결된다. 작지만 견실한 강소업체들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좋은 경제, 좋은 사회로 가는 길목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 중요한 산업과 일자리가 저열한 설계 시장에 방치된 것이다.
 
동네 공공건축, 즉 생활 SOC의 설계 질을 높이는 일은 소규모 건축의 저열한 산업구조를 혁신하는 마중물 정책이기도 하다. 시민 생활공간 개선은 물론. 산업 부가가치를 늘리고 강소업체를 키우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겨냥하는 일이다. ‘사소한’ 동네 건축의 설계 관리 능력이야말로 생활 SOC 정책의 성공을,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다.
 
◆박인석 교수
도시·주거건축 전문가다. 주거 공간을 아파트단지로만 채워가는 현실을 비롯해 국내 건축의 구조적 문제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아파트 한국사회:단지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아파트와 바꾼 집』 『건축이 바꾼다』 등이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이다.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마쳤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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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