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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엄마는 지금도 당구 여신이야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꾼 ‘당구 여신’ 차유람과 그의 딸 한나. 2015년 결혼 후 큐를 놓았던 차유람은 아이들에게 과거에 갖혀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다시 도전에 나섰다. [우상조 기자]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꾼 ‘당구 여신’ 차유람과 그의 딸 한나. 2015년 결혼 후 큐를 놓았던 차유람은 아이들에게 과거에 갖혀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다시 도전에 나섰다. [우상조 기자]

 
“딸에게 ‘엄마가 왕년에 당구 스타였다’고 말하면서 늙기는 싫었어요. 가장 ‘차유람’ 다운 건 큐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죠.”
 
‘얼짱 당구소녀’ 차유람(32)이 ‘엄마 당구 여신’으로 돌아왔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차유람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아이를 낳은 뒤에도 변함없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2015년 결혼한 뒤 당구계를 떠났던 차유람은 4년 만에 복귀를 준비 중이다.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꾼 뒤 올해 말 복귀를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꾼 ‘당구 여신’ 차유람이 경기 고양시의 한 당구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2015년 결혼 후 4년간 큐를 놓았던 그는 딸과 아들 남매를 낳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복귀할 예정이다. [우상조 기자]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꾼 ‘당구 여신’ 차유람이 경기 고양시의 한 당구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2015년 결혼 후 4년간 큐를 놓았던 그는 딸과 아들 남매를 낳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복귀할 예정이다. [우상조 기자]

 
차유람은 19세이던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자넷 리 초청 포켓볼 대회’를 통해 대중에 첫선을 보였다. 걸그룹 멤버같은 빼어난 외모에 출중한 당구 실력까지 갖춰 단번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3년 실내 무도아시안게임에선 2관왕(9볼, 10볼)에 올랐다. 9볼과 10볼은 일반인들이 치는 포켓볼(8볼)과는 다르다. 순서대로 공을 넣어야 하는 까다로운 경기다.
차유람과 남편 이지성씨, 딸 한나, 아들 예일이. [차유람 제공]

차유람과 남편 이지성씨, 딸 한나, 아들 예일이. [차유람 제공]

 
차유람은 2015년 6월 결혼한 뒤 당구계를 떠났다. 딸 한나(4)와 아들 예일(1)을 키우면서 육아에 전념했다. 차유람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당구공만 노려보고 살았다. 2013년 실내 무도아시안게임 당시엔 어깨에 주사를 맞아가며 공을 쳤다”며 “포켓볼은 턱이 당구대에 거의 닿을 만큼 엎드려서 공을 쳐야 한다. 그래서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어깨 부상이 악화했고, 척추측만증에 시달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도란도란 살고 싶었다. 그래서 3년간 아예 큐를 잡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포켓볼 선수 시절 차유람의 모습. [중앙포토]

포켓볼 선수 시절 차유람의 모습. [중앙포토]

 
큐를 내려놓은 차유람은 가족과 함께 봉사하며 지냈다. 그의 남편은 250만부가 팔린  『꿈꾸는 다락방』의 저자인 작가 이지성 씨다. 차유람은 “남편은 나와 가치관이 똑같았다. 자기 계발의 이유가 돈·명예가 아니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캄보디아·필리핀 등지에 40여개의 학교를 짓는 실천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당구는 컨트롤이 가능한데, 육아는 컨트롤이 안 돼 힘들었다. 출산 후 체중이 20㎏가량 늘었다. 육아에만 신경 쓰다 보니 나를 잃어가는 기분도 들었다”며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땄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당구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복귀 이유를 설명했다.
 
차유람은 공식 복귀시점을 올해말이나 내년초로 잡았는데 자신이 안나타난다면 중도에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말을 그렇게했지만 차유람은 승부욕이 엄청나다. 예전에 지면 분해서 울고 벽을 친 적도 있다. 우상조 기자

차유람은 공식 복귀시점을 올해말이나 내년초로 잡았는데 자신이 안나타난다면 중도에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말을 그렇게했지만 차유람은 승부욕이 엄청나다. 예전에 지면 분해서 울고 벽을 친 적도 있다. 우상조 기자

큐를 다시 손에 잡은 차유람은 당구 인생 제2막을 맞아 종목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주종목인 포켓볼이 아닌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스리쿠션으로 변경한 것이다. 차유람은 “포켓볼은 주 무대가 중국이고, 국내 대회는 거의 없다”면서 “스리쿠션은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높다. 팬들과 소통하고 싶어 종목을 변경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당구계에선 스리쿠션 종목의 프로화를 추진 중이다.
 
스리쿠션과 포켓볼은 당구대 크기와 형태는 물론 경기 방식까지 완전히 다르다. 포켓볼은 적구(的球·맞힌 공)를 구멍에 넣어야 하는 경기다. 반면 스리쿠션은 수구(手球·공격자의 공)를 큐로 쳐 제1 적구와 제2 적구를 맞히는 동안 당구대 측면에 3회 이상 닿아야 하는 경기다. 차유람은 “차라리 당구를 아예 모르는 백지상태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포켓볼과 스리쿠션은 다른 게 많다”고 말했다.
 
하루에 5시간씩 훈련하며 복귀를 준비 중인 차유람. [우상조 기자]

하루에 5시간씩 훈련하며 복귀를 준비 중인 차유람. [우상조 기자]

차유람은 일주일에 나흘 동안 하루 4~5시간씩 훈련을 하고 있다. 그의 스리쿠션 스승은 이장수 전 당구대표팀 총감독이다. 포켓볼을 가르쳐 준 것도 바로 이 감독이었다.
 
차유람은 “포켓볼 선수 시절 가수 임창정 씨와 재미로 스리쿠션 경기를 했다가 진 적이 있다”며 “언젠가 그에게 빚을 갚고 싶다. 이제 종목을 스리쿠션으로 변경했으니 호락호락하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포켓볼 선수 시절엔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스리쿠션에선 무조건 공격만 하다간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스타일을 조정하는 중”이라면서 “승패를 떠나 ‘차유람 만의 당구’를 보여드리고 싶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기본기가 탄탄하고, 깊이 있는 정석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당구 여신’ 차유람은
출생: 1987년 7월 23일(32세, 전남 완도)
가족: 남편 이지성, 딸 한나(4), 아들 예일(1)
종목: 포켓→스리쿠션
입문: 초등학교 때 테니스에서 전향
수상 이력: 2012 세계여자10볼선수권 3위,
2013 실내 무도아시안게임 2관왕
(9볼, 10볼)
플레이 스타일: 닥공(닥치고 공격)
특이사항: 남편과 캄보디아 등지에
학교 40여 곳 건립
 
고양=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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