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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몸에 갇힌 25살 청춘···김혜자의 눈부신 연기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배우 김혜자는 70대 노인의 몸에 갇힌 25살 청춘의 마음을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배우 김혜자는 70대 노인의 몸에 갇힌 25살 청춘의 마음을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진 JTBC]

 
70대 몸에 갇힌 25살 청춘을 표현하는 김혜자의 눈부신 연기  
JTBC 월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타임루프물이지만, 기존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지닌다. 아나운서를 꿈꾸던 25살 혜자(한지민)는 아버지(안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하루 아침에 70대 할머니(김혜자)가 돼버린다. 그리고 지금껏 상상해보지 못했던 노년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우연히 다시 젊어진 노인이 과거 생활고 때문에 썩혀버려야 했던 재능을 활짝 꽃피우는 영화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처럼 주인공의 청춘과 노년이 공존하지만, 설정 자체가 반대다. 시간여행 능력을 사용해 수시로 과거로 돌아가던 주인공이 결국 현재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영화 '어바웃 타임'(2013, 리처드 커티스 감독)과 달리, 혜자는 자신의 의지로는 25살 청춘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전 제작된 12부작 드라마는 절반이 지난 현재 6.6%(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창 푸르러야 할 25살 청춘이 순식간에 폭삭 늙어버리는 거짓말 같은 판타지에 시청자들이 몰입되는 건, 전적으로 배우 김혜자(77)의 '눈부신' 연기 덕분이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이후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는 70대 노인의 육체에 갇혀 버린 25살 청춘의 마음을 공감 가면서도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그려낸다. 56년 연기 내공의 결정체라 할 만 하다.  
 
김혜자 없는 이 드라마는 상상이 안될 정도로 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제작진도 애초에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기획했고, 주인공 이름도 배우의 실명을 그대로 가져왔다. JTBC 개국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석윤 PD는 "국민배우 김혜자가 아니면 안되는 코미디가 있다. 대안의 여지가 없는 캐스팅이었다"고 치켜세웠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25살 혜자(한지민)는 아나운서 지망생이다.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25살 혜자(한지민)는 아나운서 지망생이다.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70대 노인이 된 혜자가 오빠 영수(손호준)의 인터넷방송 화면을 보고 있다.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장면. 70대 노인이 된 혜자가 오빠 영수(손호준)의 인터넷방송 화면을 보고 있다. [사진 JTBC]

 
제작진 "김혜자가 슬픈 연기할 땐 본인도 스태프도 모두 울어" 
김혜자는 자신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회를 거듭하며 입증해내고 있다. 철 없는 오빠 영수(손호준)와 티격태격하는 순간, 친구들과 수다 떨며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는 순간, 아빠에게 살가운 애교를 부리는 순간 등 25살 혜자의 소소한 버릇과 말투까지 그대로 옮겨온 세밀한 연기로 김혜자의 얼굴에 한지민이 겹쳐보이는 마법 같은 장면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엉뚱함이 깃든 천진무구한 눈망울로 스물다섯 청춘의 발랄한 감성과 70대 노년의 씁쓸한 눈빛을 동시에 표현해내는 연기는 어떤 찬사로도 표현이 부족하다. JTBC 김지연 CP는 "슬픈 신을 찍을 때 김혜자 배우는 물론, 현장 스태프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며 "아직도 보여줄 새로운 모습이 많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청년 혜자(한지민)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청년 혜자(한지민)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노년 혜자(김혜자)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노년 혜자(김혜자) [사진 JTBC]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늙어버릴 줄…" 가슴 먹먹한 명대사 
드라마는 70~80년대 김혜자가 출연했던 조미료 광고의 찰진 명대사 '그래, 이 맛이야'를 다양한 상황에 적극 차용하는 등 25살 혜자의 노년 적응기를 코믹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슬픈 정서가 깔려 있다. 
 
혜자에겐 미지의 세계나 다름 없는 노년의 현실은 쓸쓸하고 외롭기 그지 없다. 몸은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밥만 먹어도 기운이 넘쳤던 25살 때와 달리, 탁자 위엔 엄마(이정은)가 챙겨준 약들로 빼곡하다. 혜자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살자고 결심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몸의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기 어렵다.  
 
"잘 걷고 잘 숨 쉬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서러운 절규와 "하루가 다른 게 이런 거구나. 얼마나 더 나빠지는 건가"라는 담담한 고백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사는 이들의 가슴에 뭉클하게 다가간다. 
영수의 인터넷방송 시청자들을 향해 혜자가 쏟아붓는 "늙는 거 한 순간이야. 너희들 이딴 잉여인간 방송이나 보고 있지? 어느 순간 나처럼 된다.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늙어버릴 줄"이란 넋두리는 눈부신 시간을 허비하는 청춘들에 대한 일갈이자, 소중함도 모른 채 청춘을 떠나보낸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늙고 난 뒤에야 무엇 하나 손에 쥔 것 없어도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뼈 저리게 깨닫는 혜자의 각성은 그래서 더욱 먹먹하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시청자 각자의 나이대에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드라마"라며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뒤늦게서야 깨닫는 혜자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청년 혜자(한지민)이 마법의 시계 태엽을 되감아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사진 JTBC]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청년 혜자(한지민)이 마법의 시계 태엽을 되감아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사진 JTBC]

 
"출구 없는 건 마찬가지인 청년과 노년세대의 현실 겹쳐놓아 큰 의미" 
혜자를 비롯한 노인들의 삶만 버거운 게 아니다. 드라마는 막막하기 그지 없는 청춘의 현실 또한 뼈 아프게 조명한다.  
아나운서를 꿈꿨던 고운 목소리로 에로영화 더빙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 꿈을 접어버린 25살 혜자. 취업을 포기하고 방구석에서 '잠방' '먹방'이나 찍어대며 부모에 기생하는 영수, 불우한 환경 탓에 기자가 되지 못하고 홍보관에서 노인들의 온정어린 돈을 뜯어내며 자기혐오에 빠져사는 준하(남주혁), 중국집 외동딸로 배달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현주(김가은), 7년째 아이돌 지망생 상은(송상은) 등 누구 하나 희망적인 청춘이 없다.
 
드라마는 70대 노인의 몸을 지닌 25살 청춘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출구 없는 건 마찬가지인 우리 시대 청춘과 노년의 모습을 데칼코마니처럼 포개놓는다. 세상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청춘들, '틀딱충'이란 비하를 받으며 여기저기서 짐짝 취급을 받는 노인들 모두 세상 바깥으로 밀려나 소외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도전해야 할 청년 세대가 노년 세대와 다를 바 없이 무기력하게 늙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면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공희정 평론가는 "소외라는 공통된 고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과 노인들이 서로의 고단한 삶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드라마가 단순한 '세대 공감' 이상의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노화란 불행 앞에서도 고된 현실을 버텨내며, 준하 등 주변 사람들을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감싸안는 혜자의 모습을 통해 드라마가 도달하려는 종착점은 무엇일까.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다'는 드라마 포스터 문구에 해답이 있는 듯 하다. 김지연 CP는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과 인생에 대한 얘기"라며 "기본적으로 슬픈 얘기지만 슬프지 않게, 공감가게 그려가려 한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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