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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집,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옐로하우스서 버티는 여성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의 업소가 지난달 헐리기 시작했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남은 성매매 업소 여성 등 2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철거가 진행되면서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집창촌에서 벌어진 일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2월 16일 옐로하우스 지역 철거가 재개돼 빈 성매매 업소 7곳 이상이 허물어졌다. 철거된 업소 옆에서 다른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2월 16일 옐로하우스 지역 철거가 재개돼 빈 성매매 업소 7곳 이상이 허물어졌다. 철거된 업소 옆에서 다른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이 인천 미추홀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지 보름이 지났다. 철거는 계속되고 있다. 빈 업소가 8곳 넘게 허물어졌다. 남은 업소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중장비 소음과 진동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김정식 인천 미추홀구청장은 지난달 16일 1인 시위 현장을 찾아 “힘든 건 없느냐”고 관심을 보였다. 김 구청장은 구청이 나서서 어떤 조처를 하기는 어렵지만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이 요청하면 언제든 면담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구청에 연락할 때마다 구청장이 출장을 갔거나 휴가 중이라고 한다.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는 5일 오후 1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오창이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 대표는 “조합 등이 성매매 여성들의 이주에 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데다 구청 역시 실효성 없는 지원 대책을 내놔 정부에 도움을 청하려는 것”이라며 “옐로하우스 철거에 따른 이주 대책과 보상비 등을 바란다”고 말했다.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는 여성 B씨(53)는 “우리가 안 나가고 버티는 것은 옐로하우스가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살면서 일한 생활 터전이기 때문”이라며 “이주비 한 푼 없이 여기서 나가면 당장 살 곳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역시 포항 집창촌을 떠나 옐로하우스에 온 지 20년이 다 돼 간다. 
성매매 종사 여성 등 숭의동 재개발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가 인천 미추홀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성매매 종사 여성 등 숭의동 재개발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원회가 인천 미추홀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 ‘옐로하우스 비가(悲歌)’ 보도에 “난 부모님 없이 자랐는데 몸 파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환경이 어려워서 성매매할 수밖에 없다는 건 ○소리”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누가 억지로 하라 했나” 등의 부정적 댓글이 이어졌다. 반면 “보고 배운 게 그게 다였고…보호해줄 가족도 어른도 없던 그녀들의 비뚤어진 선택을 비난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이제라도 그런 처참한 환경을 가진 이웃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손을 내밀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동정론도 있었다. 
 
이곳 여성들에게는 옐로하우스가 집이자 일터다. 주민등록상 주소를 이곳에 둔 여성도 많다. 한 여성은 “업주가 여성들의 출·퇴근 등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살든 안 살든 방세를 받고 무조건 방 하나씩을 내준다”며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숙식하며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곳 여성들은 대부분 돌아갈 집이 없다. 주거공간으로서 의미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보금자리로서도 그렇다. 
 
보금자리 가져본 적 없는 여성들 
 
여성 C씨(37)는 일하던 업소가 철거돼 아는 사람 집에 임시로 얹혀살며 아직 헐리지 않은 다른 업소에 다니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웠지만 아버지뿐 아니라 오빠 역시 C씨를 괴롭혔다.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는 혼자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는 “너무 한이 맺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은 골목 한 쪽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야식을 시켜먹거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20년 넘게 이곳에 거주한 포장마차 주인은 갈 곳이 없어 막막해 하다 2월 초쯤 떠났다. 김경록 기자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은 골목 한 쪽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야식을 시켜먹거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20년 넘게 이곳에 거주한 포장마차 주인은 갈 곳이 없어 막막해 하다 2월 초쯤 떠났다. 김경록 기자

C씨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큰 병을 얻은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댄다. 그는 “엄마 뒷바라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면 1억원을 준다고 해도 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뭐든 해드리고 싶다. 이를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할 생각이며 큰돈을 모으면 엄마에게 집을 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D씨(36) 역시 10대 후반까지 아버지에게 신체적 학대를 심하게 당했다. 아버지는 온종일 술을 끼고 살았다. 경제적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해 겨우 먹고 사는 형편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돈을 벌러 다녔기 때문에 D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봤다. 
 
D씨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고등학생 때 집을 나와 숙식이 제공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린 걸 알게 됐다. D씨가 옐로하우스에 온 것도 어머니의 병을 알고 나서다. 큰 빚을 져가며 일했지만 결국 어머니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몸이 망가진 아버지 병원비를 부담한다. D씨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 속 응어리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아버지가 사는 집이 있지만 솔직히 같이 지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여기서는 각자 방에서 생활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처음 제 공간을 가져본 것인데 철거된다니 또 막막합니다. 사람들은 돈 벌려고 여기서 일한다고 우리를 비난하지만 큰돈을 가져본 적 없고 바라지도 않아요.”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가난·학대 등 가정사로 온 여성 많아” 
 
옐로하우스에서 만난 또 다른 30대 여성 역시 당장 방을 얻을 형편이 못 된다. 이 여성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집안 사정 때문에 방황하다 집을 등지고 중학생 때부터 음식점·주차장·주유소 등에서 일했다. 그는 “집이라고 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는 없는 곳,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이들은 잘사는 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D씨의 말이다. “부잣집은 바라지도 않아요. 넉넉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집에서 부모 사랑 느끼면서 그렇게만 살았더라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부모가 어렵다고 다 당신들처럼 살지는 않는다’고 댓글 다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 그런 가정에서 힘든 일을 겪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30대 여성은 “모든 성매매 여성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방황하다 돈 버는 재미로 들어왔거나 실제 돈을 모아 나간 여성들도 있긴 하다”며 “하지만 그런 여성은 많지 않으며 나 같은 사람들은 쳇바퀴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여성들 대다수가 어려운 가정사가 아니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 측은 건물주에게 보상금을 모두 지급했다며 3월 말까지 철거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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