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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 활주로에 내리니 산도 바다도 온통 눈세상

③ 장보고과학기지 도착: 오는 자 맞이하는 자  
 
 
남극대륙 한국 장보고기지 해빙활주로에 극지연구소 월동대원들을 태운 비행기가 내리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대륙 한국 장보고기지 해빙활주로에 극지연구소 월동대원들을 태운 비행기가 내리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9월의 남극 바다는 2m 넘게 얼어붙어
 
비행기가 하강하면서 몸이 움찔했다. 좌석 밑으로 바퀴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남극에 도착한다는 현실에 약간의 긴장감이 생겨서일까. 옆 대원들의 얼굴을 둘러보니 힘든 여정의 얼굴은 사라지고 살짝 굳은 표정이다. 뉴질랜드에서 장보고기지로 가려면 일반적으로 항공기 또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이용하지만, 장보고기지 월동 대원들이 이동할 때는 항공기를 탄다. 
 
장보고기지 앞 바다는 보통 3월부터 얼기 시작한다(남반구이니까!). 해빙(海氷:바다의 얼음)은 점차 두꺼워지면서 한겨울인 9월 달에 최대 두께(2.0-2.5m)에 이르러 12월까지 유지된다. 비행기는 이탈리아와 독일 기지, 장보고 기지 사이 테라노바 만(灣) 안쪽 바다 위에 만든 해빙 활주로에 내린다.  
여름에만 운영되는 이탈리아 기지의 기술자들이 매년 만드는 임시 활주로다. 테라노바 만 주변 이탈리아·독일과 우리나라 장보고 기지로 향하는 항공기가 이용한다.  
 
노란 점선이 남극의 해빙 활주로이고, 점들은 해빙 활주로를 만들기 전 해빙의 두께를 재는 위치. 장보고기지는 사진 위쪽에 위치해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노란 점선이 남극의 해빙 활주로이고, 점들은 해빙 활주로를 만들기 전 해빙의 두께를 재는 위치. 장보고기지는 사진 위쪽에 위치해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서 1년 보낸 4차 월동대원들과 만나다
 
바닷물이 변한 얼음 위에 내리는 비행기라 바깥 풍경이 어떨지 살짝 기대가 됐다.  2017년 10월25일 오후 2시. 드디어 비행기 문이 열렸다. 더운 객실 안으로 영하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하나둘 사람들이 내리면서 나도 그 뒤를 따라 내렸다. 첫 발을 해빙 위에 내디뎠다. 주변의 새하얀 세상이 두 눈에 가득 담긴다. 상쾌한 공기와 밝은 햇살 아래 바다가 안보일 정도로 넓은 해빙이 하늘을 덮은 하얀 구름과 어울려 한없이 깨끗하다. 병풍처럼 둘러싼 하얀 언덕들 사이로 조금씩 드러난 어두운 바위와 육지는 흑백의 묘미를 살린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먼저 내린 대원들은 비행기를 뒤로 하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기 바빴다. 비행기 주변에서 한참 떨어져 이탈리아 기지에서 나온 급유차와 구급차, 중장비 등이 나란히 줄서 있고 그 옆으로 우리를 마중 나온 장보고기지 4차 월동대원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멀리 비슷한 방한복을 입고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으니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데,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역사적인 거룩한 순간처럼 엄숙해진다. 오는 5차대와 맞이하는 4차대의 첫 만남이 아닌가.  
 
설상차와 트레일러를 뒤에 두고 포즈를 취한 장보고과학기지 5차 월동대원들. [사진 극지연구소]

설상차와 트레일러를 뒤에 두고 포즈를 취한 장보고과학기지 5차 월동대원들. [사진 극지연구소]

25년간 남극에서 버틴 이탈리아 기지 대장 
 
듬직한 체구의 4차 임정한 대장이 껄껄 웃으면서 나를 맞이했다. 순간 서로 아낌없이 껴안았다. 연구소의 동료로 일하면서 이렇게 살갑게 껴안은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그 포옹이 어색하지 않았다. 1년 후 내가 6차 지건화 대장을 똑같이 맞이하면서 껴안았는데, 그 때 이 감정을 알게 되었다. 오는 자는 지난 1년간 극한 환경에서 고생한 대원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심정으로, 맞이하는 자는 그 애환을 겪으려 오는 자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아는 대원들끼리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껴안기도 하고 진심어린 손인사를 나누었다. 임정한 대장이 옆에 서있는 산타 할아버지같은 이탈리아 사람을 소개하는데, 이탈리아 기지 대장 알베르토라고 한다. 임 대장이 이 사람을 훌륭한 베테랑이라고 대뜸 소개하는데, 자그만치 25년간 이탈리아 기지 대장을 역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대장이 매년 바뀌는데, 한 사람이 25년 동안 기지 운영을 맡았다고 하니 엄지를 치켜세울 만 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극대륙의 장보고과학기지. [사진 극지연구소]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극대륙의 장보고과학기지.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대륙의 장엄한 파란색 건물, 장보고기지
 
4차대가 우리를 마중 나오기 위해 가져온 장비는 설상차 한 대와 트레일러이다. 트레일러는 이탈리아 중장비로 날라준 5차대원들의 수하물과 일부 보급품을 실기 위해서고, 설상차는 눈이 두껍게 쌓여있는 해빙 위 길을 가기 위해서다. 오프로드 전용 자동차도 여기서는 무용지물이다. 대장은 기지 총책임자라서 대외 업무가 아닌 이상 기지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신입 대장을 맞이하기 위해 직접 나왔다고 한다. 설상차 앞은 두 좌석밖에 안되고 분리된 뒤쪽 칸은 10명이 탈 수 있는데, 전통적으로 대장이 신입 대장을 마중하여 옆 좌석에 태우고 기지까지 데리고 간다고 한다. 
 
대장이라 대접받는데 꽉 찬 뒤쪽 칸과 일부 트레일러에 탄 우리 대원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트레일러를 끄는 설상차의 궤도가 움직이니 마치 탱크를 탄 기분이다. 해빙 활주로에서 기지까지 4㎞ 남짓, 그리 멀은 거리지만 기지가 보이지 않았다. 새하얀 길을 따라 더디게 움직이는 설상차 안에서 임 대장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설상차가 테라노바 만의 끝쪽 곶 안쪽으로 돌아서니 장엄한 파란색 건물이 보였다. 대한민국 장보고 과학기지다. 이제 입성인가. 기지 책임자로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국에서 멀게 만 느껴졌던 기지가 바로 코 앞이다. ④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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