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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못한 하노이 회담…한국 중재 역할 커졌다

뉴스분석 
“나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게 아니다. 회담은 외교적으로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서명에 실패한 게 결코 회담 결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이런 말로 둘러댔다. 그리고 그는 회담 재개의 문을 열어 뒀다. “앞으로 계속 해결을 시도하겠다. 회담 재개는 빠를 수도 있고 빠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어떤 해명도 세계인들의 기대와 관심이 집중됐던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가혹하게 말하면 김정은·트럼프의 하노이 회담은 ‘외교적 참사’로 끝났다. 회담 결렬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정리하면 (1)준비 부족 (2)미국 국내정치의 작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결렬 후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영변 플러스 알파는 내놓지 않으면서 대북제재의 전면적인 해제를 요구해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말은 다르다. “우리는 전문가들 입회하에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데 대한 상응조치로 제재의 전면적인 해제가 아니라 민생 관련 부문의 해제를 요구했다.” 김영철·폼페이오 라인과 김혁철·비건 라인이 이런 핵심 쟁점에 대한 조율을 어정쩡하게 마무리하고 최종 결정을 두 정상의 담판에 맡긴 게 화근이었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점에 미국의 국내정치가 뛰어들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은 지난달 27일 1만3400㎞ 떨어진 지구 저편에서 미 하원 감독개혁위원회는 트럼프의 오랜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을 증인으로 불러 떠들썩한 ‘트럼프 청문회’를 열었다. 코언은 트럼프를 인종주의자·거짓말쟁이·사기꾼·범죄자라고 거침없이 매도했다. 미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하노이보다 온통 청문회에 쏠렸다. 트럼프는 몸은 하노이에 있어도 마음은 워싱턴DC에 가 있었다. 청문회의 파장은 김정은과 대좌한 트럼프의 행동을 제약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반대자들(naysayers)은 하노이 회담을 격침시키는(torpedo) 데 성공했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란 말의 전형적 사례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다행히 김정은도, 트럼프도 평창 이전의 전쟁 위기 상황으로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트럼프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할 생각이 없고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없다는 말로 협상 재개의 여지를 남겼다. 귀국길 전용기에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해 중재를 요청했다.
 
북한도 미국을 자극하는 언행을 자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1일 결렬된 하노이 회담을 “새 상봉을 이어갈 생산적 대화였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이 북한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 획기적 디딤돌로 선전해 온 김정은 정권이 회담 결렬을 설득력 있게 해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회담 재개를 위한 대화가 시작된다 해도 이번엔 북·미 모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자세를 취할 것이기 때문에 성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여기서 문 대통령이 등장할 무대가 열린다. 하노이 참사의 가장 큰 유탄을 맞은 게 남북관계, 특히 문 대통령의 ‘신 한반도체제’다. 하노이 합의→문재인·트럼프 회담→김정은 서울 답방→종전선언·평화협정→북·미 관계 정상화로 선순환하는 큰 구도의 첫 스텝이 꼬였다. 문 대통령의 강인한 중재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트럼프에 따르면 김정은은 미국이 영변 이외의 북한 핵시설을 상세히 알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그중 하나가 영변의 세 배 규모인 평남 강선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라고 폼페이오는 말했다. 중재에 나서는 문 대통령이나 협상 재개에 임할 북한 대표들은 ‘영변 이외’를 논의 대상에 넣어야 한다.
 
한·미와 남북 정상회담은 필수 절차다. 전자는 시기를 잘 잡아야 한다. 워싱턴DC에 트럼프를 공격하는 포연이 자욱하고 트럼프 반대 세력이 하노이 승리로 기세등등한 지금은 아니다. 후자의 경우는 김정은이 서울에 올 차례지만 필요하면 문 대통령이 평양에 한 번 더 가는 것도 고려할 일이다. 트럼프 반대 세력의 성공이 국내 보수 진영을 고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통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의 지혜다. 이것이 하노이의 소중한 교훈이다.
 
김영희 중앙일보 명예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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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