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일정 반나절 앞당긴 채 1일 공식 일정 소화
5시간35분 일정 동안 밝은 모습 좀처럼 포착되지 않아
베트남 주석과 만찬 "양국 역사, 지울 수 없는 친선"
공식석상에서 보인 김 위원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전날 정상회담 이후 27시간 만에 숙소인 멜리아호텔 로비에 나타난 김 위원장의 얼굴엔 짜증이 묻어 있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27~28일)에서 합의문 도출에 실패한 실망감과 피로가 묻어났다. 3시30분 하노이 바딘광장에 인근의 베트남 주석궁에 도착해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도 무거운 표정은 이어졌다. 환영하는 화동들의 볼을 만지고, 양측 정부 인사들을 서로 소개하는 시간에 얼굴빛이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평소의 호방한 웃음 대신 옅은 미소였다. 의장대 사열을 위해 사열대에 쫑 주석과 함께 올랐을 때엔 표정없이 때론 먼산을 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응우옌 푸 쫑 국가주석이 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공식환영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3/02/b839e2fc-f9fa-4e1e-ba27-3b45b6f40d9b.jpg)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응우옌 푸 쫑 국가주석이 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공식환영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진 확대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베트남 지도부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데 이때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톤은 가라앉았고 목소리도 작았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하노이 미디어 센터에선 “김 위원장의 당당함은 어디로 갔지”라는 평가가 나왔다. 회담 결렬 직후 심야 긴급 기자회견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표현을 빌자면 “의욕을 잃은 느낌”이었다.
주석궁에서 회담과 면담을 마친 김 위원장은 6시18분 전용차로 환영 만찬장인 국제켄벤션센터(ICC)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에서도 지친 기색은 역력했다. 김 위원장은 2시간30분 가량 진행된 만찬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했다. 전날 북·미 회담 결렬을 놓고 양국이 진실 공방을 펼치고 있어 김 위원장이 관련 발언을 할지가 관심을 모았지만 베트남에 대한 감사 인사 외엔 특별한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응우옌 푸 쫑 국가주석의 안내를 받아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3/02/25726a64-6940-4bb2-b499-9104d762113b.jpg)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응우옌 푸 쫑 국가주석의 안내를 받아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1964년 김일성 주석 이후 55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한 북한 지도자다. 이번 방문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과 함께 과거 혈맹 관계의 복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렸다. 미국과 대등한 협상력을 통해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를 이끌어낸 뒤 정상국가로서의 외교 활동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다는 복안이었다.
전날 빈손회담 때문인지 언론의 취재와 시민들의 환영 열기도 눈에 띄게 가라 앉았다. 주석궁 입구인 베트남 외교부 앞 로터리에는 50명 남짓한 취재진이 모였다. 로터리 길목마다 자리한 방송사의 ENG 카메라는 5대도 되지 않았다. 숙소에서 김 위원장의 복귀를 기다리는 취재진은 전날까지 수백명에 달했지만 이날은 100여 명 정도였다. 지난 26일 당동역으로 베트남에 들어온 김 위원장은 28일까지 회담장인 메트로폴과 숙소에 500명이 넘는 취재진을 끌고 다녔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55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한 북한 지도자 김 위원장에게 공식 친선 방문 이상의 환대를 베풀었다. 의장대를 사열하고 분열을 받았다. 김 위원장이 이동할 때마다 청소차량들이 10~20분 간격으로 도로를 오가며 ‘정돈’하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일까지 공식 방문 일정을 진행하지만 귀국 시간을 4시간 정도 앞당겼다. 2일 오전 전쟁영웅ㆍ열사 기념비와 호치민 전 베트남 주석의 묘에 헌화하는 일정만 소화한 뒤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김 위원장은 이튿날 오전 베트남 권력서열 2, 3위인 푹 총리, 낌 응언 국회의장을 면담하고 휴식한 뒤 이날 오후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이들과 면담 일정을 1일 오후로 앞당겼다.
하노이=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