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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드가 ‘frend’?…저소득층 아이들 영어 양극화 이젠 끝

강홍준의 에듀 리포트 
지난달 13일 광주광역시 토담지역아동센터에서 교사 이원정씨(왼쪽)가 ‘콩글리시(Konglish)’ 교재로 학습을 돕고 있다. [강홍준 기자]

지난달 13일 광주광역시 토담지역아동센터에서 교사 이원정씨(왼쪽)가 ‘콩글리시(Konglish)’ 교재로 학습을 돕고 있다. [강홍준 기자]

“언니, 저거 뭐라고 읽어요?”
 
광주광역시 K초등학교 6학년 김모(12)양은 손으로 상점 간판을 가리켰다. 커피 프랜차이즈점 ‘Dal.Komm Coffee’를 비롯해 ‘Myfranc’ ‘HULK’ ‘Double plot’ 등 알파벳으로 표기돼 있다. 김양의 영어 실력은 알파벳만 한 글자씩 간신히 읽을 정도. 영어 단어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 그는 “중학생 언니가 알려주지 않으면 뭐라고 쓰여 있는지 잘 모른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영어 단어를 무조건 외우라고 하고…. 영어가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
 
김양이 이번 겨울방학 기간 동안 다닌 지역아동센터에서 중학교 2학년 김모군도 하루를 보냈다. 지역아동센터란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교육, 놀이 등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김군은 영어 단어 플라워(꽃)를 ‘flowo’로, 프렌드(친구)를 ‘frend’로 쓰는 수준이다. 김군은 “2019년의 3대 키워드는 복고 ‘뉴트로’, 공간의 변신을 꾀하는 ‘카멜레존’, 데이터가 의사결정을 돕는 ‘데이터 인텔리전트’라는 신문기사 내용을 읽고선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영어 실력차가 사회·경제적 격차 더 부채질
 
2017년 기준 한국의 영어 사교육비 규모는 5조 4000억원.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선 한 달 영어 사교육비가 100만원을 넘는다. 하지만 사교육비를 쓸 여력이 없는 일부 저소득층 가구의 아이들은 ‘영어 문맹’을 겪고 있다. 이러다 영어 실력 차이로 인해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 현상이 심화될까 우려되고 있다.
 
광주 충장로나 금남로 등이 있는 구도심 지역인 광주 동구에선 상대적으로 빈곤계층 비율이 높다. 전체 주민(9만 4000여 명, 2019년 기준) 가운데 기초수급자는 7%, 장애인은 6%다. 영어전문기업인 ㈜스콜라 김대은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임택 광주 동구청장의 도움을 받아 ‘잉글리시 디바이드’와 싸우고 있다. 김 대표는 동구청의 ‘드림 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 20여명의 영어 까막눈을 해결해준다. 동구 지역 지역아동센터 10곳에 있는 초·중학생 100여 명에게도 주 1회 수업을 한다. 모두 무료다.
 
중2 조모군의 영어 실력. 단어의 빈칸을 채우는 9개 문제 중 3개만 제대로 적었다.

중2 조모군의 영어 실력. 단어의 빈칸을 채우는 9개 문제 중 3개만 제대로 적었다.

지난달 13일 오후 광주 동구 토담지역아동센터에서 6학년 양모(13)군 등 초·중학생 6명이 ‘콩글리시(Konglish)’라고 쓰여진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이 교재는 ㈜스콜라 김 대표가 개발한 교재다. 양군의 진도는 ‘DAY 26’과정(to 부정사)인데 그를 포함한 6명의 수준은 제각각이다. 양군은 이날 교재에서 “우리/필요하다/집/살다”라고 쓰여진 글상자를 영어로 하나씩 대입하며 칸을 채우듯 넣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We need a house to live in”이란 문장을 완성했다. 그는 “잘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스마트폰을 열어 책에 있는 QR코드를 촬영하면 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서 동영상과 자세한 설명이 나왔다. 이곳에서 6명 아이들의 영어학습을 도와주는 이원정(50)씨는 “글상자 안에 영어를 넣는 과정을 하다보면 영어구조가 아이들의 머리에 잔상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5학년 김하영양도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를 영어로 바꿔 문장을 만들다보니 영어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수업을 지켜본 선은희 토담지역아동센터장은 “아이들이 영어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학교 수업에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도 여기선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영어 초보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외래어 간판이나 상표 등을 음절로 끊어서 영어를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
 
김 대표가 지난해 10월 처음 영어를 가르칠 때만 해도 중학생 아이들의 영어 문장 읽기와 쓰기는 100점 만점에 50점도 안 되는 바닥 수준이었다. 중학교 2학년 조모군은 “We are playing soccer(우린 축구를 합니다)”란 문장을 소리내 읽고 뜻을 말하라는 질문에 “몰라요”라고 답했다. 영어단어를 음절로 끊어 읽지 못하는 중학생도 많았다.
 
그런데 올해 3월 아이들의 수준을 다시 점검해보니 단어 의미 알기, 읽기와 쓰기에서 실력이 부쩍 좋아졌다. 이날 인근 H지역아동센터에서 영어를 배운 K초등학교 5학년 김모(12)양은 “예를 들어 ‘I drink water(나는 물을 마신다)’나 ‘I water flower(나는 꽃에 물을 준다)’처럼 ‘water’가 다양하게 쓰인다. 우리말과 영어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양은 “지난해만 해도 알파벳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영어 실력이 늘어서 새 학기 학교 수업이 기다려진다”고 좋아했다.
 
 
광주 동구청 내 지역센터에 교재 세트 제공
 
이 교재를 개발한 김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의 영어 교육은 배우는 사람의 눈높이가 아닌, 가르치는 사람의 시각에서 어렵게 이뤄졌다”며 “40년 전인 중·고교 때 영어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식과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방식이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생인 자신의 아들이 6살 때 영어 사교육을 받다가 스트레스를 받는 걸 보고 직접 영어교재 개발에 뛰어들었다. 영어 단어, 단어가 이루는 말이나 문장을 레고 블록 놀이하듯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고 모든 쪽에 QR코드를 붙였다. 아이들이 혼자서 학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우리말을 할 줄 알면 스스로 배울 수 있게 전체 과정을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공부법에 대해 장태엽 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 교수는 “김 대표가 개발한 영어공부법은 영어를 어렵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실용적인 영어학습법”이라며 “기존의 학습법에 얽매이지 않고, 영어 초보자들이 쉽게 접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공부법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동구청 내 지역센터에 영어교재 세트(50주간)를 제공했다. 사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그는 “교재를 전국에 보급해 영어 학습법의 판을 바꾸고 영어 디바이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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