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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쓰나미가 파괴한 주의력, 숙련 노동이 회복제

당신의 머리 밖 세상

당신의 머리 밖 세상

당신의 머리 밖 세상
매슈 크로퍼드 지음
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TMI. 영어로 ‘너무 많은 정보(Too Much Information)’를 뜻하는 신조어란다. 주변 일상에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온갖 광고와 정보, 잡음에 포위돼 시달리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묘사하는 말로 제격인 것 같다.
 
사실 우리의 주의력은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자본주의의 저돌적인 상업성과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결합하면서 광고와 정보를 피해 눈을 둘 곳이 없게 됐다. 지하철·버스·택시 등 탈것부터 역, 공항의 TV, 광고판처럼 주의력을 파괴하는 괴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주의끌기 테크놀로지’는 이처럼 대중이 공유하는 공적 공간에 더 완벽하게 침투한다. 이는 우리들의 교제 기회를 빼앗고 우리를 서로에게서 떼어 내 ‘제작된 현실’만 바라보게 한다.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바일과 통신기기들은 말할 것도 없이 주의력 뺏기 스토커들이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다니는 보행자는 더 비틀거리고 도로를 더 위험하게 횡단한다. 부주의의 맹시(盲視)는 어떤 참사를 부를지 모른다.
 
시각뿐만이 아니다. 청각 또한 사로잡혀 있다. 중독된 심신은 잠시라도 편안할 시간이 없다. 21세기 현대인의 새로운 질병인 주의산만은 정신적 비만이라 할 수 있다.
 
매슈 크로퍼드 박사의 『당신의 머리 밖 세상(The World Beyond Your Head: On Becoming an Individual in an Age of Distraction)』은 ‘혼을 빼앗겨 버린’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책의 부제처럼 ‘몰입을 방해하는 시대에 대한 보고서’다. 퇴근하고 나서도, 휴가 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메일과 문자, SNS의 알림을 확인해야 하는 우리의 주의력은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현대인은 주의력 결핍 현상에 시달린다. TV 광고·스마트폰에 시달린 탓이다. 옥외광고판으로 건물 외벽이 뒤덮인 미국 맨해튼 풍경. [중앙포토]

현대인은 주의력 결핍 현상에 시달린다. TV 광고·스마트폰에 시달린 탓이다. 옥외광고판으로 건물 외벽이 뒤덮인 미국 맨해튼 풍경. [중앙포토]

내면이 분산되는 주의산만의 문제는 결국엔 자율과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크로퍼드 박사의 주장이다. 주의력은 한 개인의 정신생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요히 집중하는 시간을 앗아가는 공적 공간의 분위기는 우리가 자아를 잃어버린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주의력은 본디 개인의 정신 능력에 속한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환경이 우리의 주의끌기를 강제하는 상황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집단적 문제, 즉 문화적 문제가 돼 버렸다고 크로퍼드 박사는 진단한다. 그래서 주의력에 공공재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처럼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들볶이지 않을 고요함이 공공자원으로 시민들에게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은 지당해 보인다.
 
크로퍼드 박사가 『당신의 머리 밖 세상』을 쓰게 된 것은 이러한 ‘잡념의 시대’의 지층을 탐사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예시한 길 중 하나는 숙련 노동이다. 즉석요리 요리사, 오토바이 경주 선수, 파이프오르간 장인 같은 숙련노동자들을 찾아 자율성과 집중력 회복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물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완전한 몰입 행위를 통해 세상과 직접적 관계를 맺는다. 정치철학 박사로 워싱턴 싱크탱크 연구소장이었던 크로퍼드가 이 자리를 박차고 모터사이클 정비사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숙련 노동은 우리를 머리 밖 세상과 연결해 주는 닻 역할을 하며 개인성의 궁극적 발현을 가능하게 해 준다. 주의집중의 회복을 통해 우리가 성취하게 되는 것은 진정한 개인성이다. 단단한 내면으로 무장하고 머리 밖의 진짜 세상에 뿌리내리는 일, 그 무엇에도 몰입하기 어려운 세계에서 온전한 나를 되찾는 것은 무분별한 세상에 맞서는 우리 시대에 새롭게 부과된 천부인권이다.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문제를 크로퍼드는 누구보다도 심오하게 사유하며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을 찾도록 도와준다.
 
여전히 숙련노동자가 아닌 우리 대부분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의 눈은 온갖 정보로 혼탁해지고 귀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손가락은 액정 위를 헤엄친다. 그럴수록 우리의 정신과 주의력은 더욱 산만해지고 자아는 미궁에 빠진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인식조차 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크로퍼드 박사의 책을 펼쳐봐야 할 이유는 이래저래 많아 보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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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