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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일부 해제’ 주장한 제재 5건, 푼다면 사실상 전면 해제

하노이 노딜 이후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다.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중 2016∼17년 채택된 5건, 그중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다.”(1일 이용호 북한 외무상 심야 기자회견)
 
“북한은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또 영변 핵시설과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 분명하지 않았다.”(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2차 북·미 정상회담 ‘노딜(No deal)’의 핵심 쟁점인 대북제재 해제 범위를 놓고 북·미 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회담 결렬 직후인 1일 이 외무상은 심야 기자회견에서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북한의 전면적인 제재 해제 요구’ 발언을 반박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5건도 100%가 아니라 군수용을 제외한 민수·민생용만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가세했다. 그러자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귀국 비행기에서 “북한은 전면 해제를 주장했다”며 재반박에 나섰다.
 
이에 대해 유엔 제재 전문가들은 북·미 협상에서 어떤 말이 오갔든 이 외무상이 지목한 유엔 대북 제재 5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과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우선 유엔의 대북제재는 그동안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에 맞춰 중첩적으로 강화됐다(그래픽 참조). 2016년 이전의 제재가 대부분 미사일 부품 등 군수용품과 사치품 수입 제한 등 제한적 제재였던 반면 2016년 이후 제재는 북한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는 포괄적 제재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실제로 유엔 제재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2016년 3월 채택된 결의 2270호부터 2017년 12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 발사 이후 채택된 결의 2397호에 이르기까지 ‘수퍼 제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압박 강도를 더해왔다. 그런 만큼 2016년 이후 제재 결의를 일부라도 해제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제재 시스템의 근간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외무상이 회견에서 강조한 민수용 부분 해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경제 특성상 민수용과 군사용을 구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재 전면 수출 금지 품목인 석탄의 경우 유엔은 제재 2270호에서 북한의 석탄·철·철광 수출을 전면 금지하되 민생 목적은 제외했다. 당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삽입한 조항이었다.
 
하지만 2016년 4~9월 북한의 대중국 석탄 수출량은 오히려 10% 넘게 증가해 민생 목적이란 예외 조항을 북한이 악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유엔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11월 결의 2321호를 통해 수출 상한선을 설정하고 수입 신고도 의무화한 데 이어 2017년 9월엔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민생 목적이 용인된 것은 2017년 12월 채택된 결의 2397호에서 대북 원유 400만 배럴과 정제유 50만 배럴 공급 상한을 설정한 정도다.
 
북한의 ‘돈줄’을 죄는 또 다른 수단인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 또한 민수 목적일 수도, 군사 목적일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40여개 국에 최소 5만 명, 최대 10만 명을 파견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류국에서 임금의 일부만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본국으로 송금된다. 이렇게 송금된 돈은 북한 정권이 관리하며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등에 사용됐다는 게 유엔 제재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수출 금지 품목으로 지정된 섬유류와 수산물도 수출 대금이 군사용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결의 2270호 이후 대북 수출이 금지된 품목이 대부분 ‘이중 용도 품목’이란 점도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중 용도 품목은 민간용으로 제조·개발됐지만 군사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품목을 뜻한다. 군수품과 함께 수출을 제한하는 전략물자다. 한 전문가는 “민수·민생 목적으로 이중 용도 품목을 해제해 주면 이는 곧 군사 목적의 전용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전면적인 제재 해제”라고 설명했다.
 
회담 결렬 직후 뜨거워진 대북제재 관련 북·미 공방은 향후 협상 재개 및 합의 도출 과정에도 적잖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 영변 핵시설 폐기를 사상 처음 제안했음에도 미국이 제재의 부분 해제도 어렵다고 반응한 데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해하기 힘들어한다는 최선희 부상의 1일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최 부상은 “위원장께서 의욕을 잃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석유 공급 제한을 완화하는 데 대해서도 미국 내 여론이 안 좋은 게 현실인데 대북제재의 핵심을 통째로 해제하라는 요구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언젠가 실무 차원의 접촉은 재개될 수 있겠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고,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큰 틀에서 결렬된 만큼 진전을 기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노이=차세현 기자, 정효식 특파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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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