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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덕수궁 광명문 80년만에 제자리 찾다

 
많은 외국 공사관이 모여있던 서울 정동의 덕수궁(당시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한 장소로 자주 주권을 지키기 위한 꿈이 담겨있는 곳이다.

 
1919년 덕수궁 국장촤첩에 기록된 광명문. [사진 문화재청]

1919년 덕수궁 국장촤첩에 기록된 광명문. [사진 문화재청]

 
1907년 퇴위한 고종이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붕어한 후 민심은 술렁이게 되었고 온 국민이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3·1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덕수궁 중건배치도 상 광명문 위치. [사진 문화재청]

덕수궁 중건배치도 상 광명문 위치. [사진 문화재청]

고종 붕어 후 함녕전은 빈전(왕이나 왕후 승하 후 그 시신을 모셔둔 전각)으로 활용되었다. 함녕전의 정문인 광명문은 고종 국장행렬의 시작점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덕수궁 유원지화 계획에 따라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홍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의 전시를 위해 중화문의 서남 측으로 이전되었다.

 
복원 처리중인 광명문. [사진 문화재청]

복원 처리중인 광명문. [사진 문화재청]

목부재 조립 처리중인 광명문. [사진 문화재청]

목부재 조립 처리중인 광명문.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1일 오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에 의해 이전됐던 광명문이 80년 만에 제자리인 함녕전 남쪽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행사를 개최했다.  
 
문화재청은 광명문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지난 2016년 발굴조사를 진행하였고 1910년에 작성된 중건배치도에 작성된 위치와 평면형태가 동일한 건물지 1동을 확인해 그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말 이전을 완료했다.  
 
이날 준공식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광명문은 단순한 전각의 출입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며 "일제가 훼철한 광명문이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앞으로는 광명문이 한자 뜻풀이처럼 대한민국의 찬란하고 밝은 미래가 깃든 희망의 문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근대사의 중심이었던 덕수궁을 온전하게 복원해 대한제국의 위상과 역사가 재평가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1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광명문 준공식이 진행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광명문 준공식이 진행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광명문 현판식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광명문 현판식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정재숙 문화재청장(가운데)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장진영 기자

정재숙 문화재청장(가운데)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장진영 기자

광명문 내부에 보관되어 있던 유물 중 창경궁 자격루는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 보존 처리하고홍천사명 동종은 경복궁 궐내각사지에 임시 처리장을 만들어 보존처리 중이다. 보존처리를 마친 자격루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홍천사명 동종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적정 장소를 검토해 이전 설치할 계획이다.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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