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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부르면서 달리려면…" 한복 치마에 어깨허리 단 여학생들

신명여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교복을 개조해 만든 어깨허리치마. 여학생들은 치마 윗 부분에 상의와 같은 색으로 어깨허리를 달아 치마를 어깨에 걸어 입을 수 있도록 했다.[사진 국립대구박물관]

신명여학교 학생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교복을 개조해 만든 어깨허리치마. 여학생들은 치마 윗 부분에 상의와 같은 색으로 어깨허리를 달아 치마를 어깨에 걸어 입을 수 있도록 했다.[사진 국립대구박물관]

"그날 우리는 어깨허리를 만든 치마를 입었다. 덕분에 옷고름이 풀어지더라도 걱정 없이 마음껏 달리며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대구선 1919년 3월 8일 독립만세운동
여학생들 교복 치마 개조해 원피스로
당시 회고록과 교복, 졸업생이 기증

대구 신명여학교 졸업생 고 김학진 할머니의 회고록에 나온 1919년 3·1운동 때의 이야기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제공한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대구의 여학생들은 교복 치마를 원피스형으로 개조했다. 끈을 가슴 쪽에 둘러 묶어 입었던 한복 치마에 어깨허리(어깨에 걸치는 끈) 를 덧댄 것이다. 만세를 외치며 달릴 때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원진 대구박물관 학예사는 "어깨허리 치마는 1914년 서울 이화학당에서 선교사가 체육 활동을 위해 처음 만들었는데 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퍼졌다"며 "여학생들의 적극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어깨허리 치마의 폭발적인 도화선이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의 교복 한복 치마는 왼쪽 사진처럼 양 옆에 달린 끈을 가슴 쪽에 둘러 묶어 입었던 형태다.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여학생들은 양 옆의 끈을 떼고, 오른쪽 사진에 표시된 것처럼 치마 윗 부분에 어깨허리를 달아 치마를 어깨에 걸어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 대구박물관]

원래의 교복 한복 치마는 왼쪽 사진처럼 양 옆에 달린 끈을 가슴 쪽에 둘러 묶어 입었던 형태다.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여학생들은 양 옆의 끈을 떼고, 오른쪽 사진에 표시된 것처럼 치마 윗 부분에 어깨허리를 달아 치마를 어깨에 걸어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사진 대구박물관]

대구박물관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일주일 뒤인 3월 8일 대구의 큰장(현 섬유회관 건너편)에서도 일어났다. 당시 대구 3·8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여성들은 신명여학교 교사 임봉선, 이선애와 여학생들이다. 신명여학교 2학년생으로 재학 중이던 김 할머니의 친필 회고록에는 만세운동 준비부터 만세운동 당일에 대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김 할머니의 회고록에는 "독립운동을 앞두고 상급생 언니들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제의 압제 밑에 있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는 것이 급선무이기에 우리도 이 운동에 나가서 동참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며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의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불붙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 할머니를 포함한 여학생들은 그 후부터 기숙사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면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면직물로 만든 짙은 남색 통치마에 어깨허리를 덧댔다. 또 태극기를 크게 만들어 치마 안쪽 가슴 부분에 달았다.
 
회고록에는 "반드시 어깨허리를 만들어 치마에 달라는 특별지시를 받았다"며 "만세를 부르면서 달릴 때 안전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당하면 어떤 악형과 모욕을 당할지 모른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신명여학교 1918년 제6회 졸업식 사진. 첫번째줄 왼쪽 세번째에 위치한 임봉선 교사는 18년도 학교를 졸업해19년도에 신명여학교 교사가 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셋째줄 왼쪽에서 세번째는 이선애 교사다. [사진 신명고등학교]

신명여학교 1918년 제6회 졸업식 사진. 첫번째줄 왼쪽 세번째에 위치한 임봉선 교사는 18년도 학교를 졸업해19년도에 신명여학교 교사가 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셋째줄 왼쪽에서 세번째는 이선애 교사다. [사진 신명고등학교]

이렇게 만든 교복 치마를 입고 학생들은 거사 당일인 8일 거리에 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신명여학교 교사 임봉선과 이선애는 8일 오후 3시 50여 명의 신명여학교 학생들을 인솔해 시가지를 행진했다. 회고록에는 "그때 선생님이 앞장서 나가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나와 내 동무들도 시장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 팔이 떨어져라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쓰여 있다. 
 
이선애 교사는 당시 만세운동 주모자로 체포돼 6개월의 형을 받고 31세에 별세했다. 임봉선 교사와 일부 학생들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김 할머니는 1985년 11월 11일 당시의 상황을 담은 회고록을 작성해 만세운동때 입었던 교복과 함께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교복과 회고록의 자세한 내용은 오는 10일까지 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여성 한복, 근대를 만나다' 특별전시에서 볼 수 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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