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사설] 2차 북·미 회담 결렬…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세기의 담판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 내용이 기대에 못 미칠지언정 비핵화와 관련된 최소한의 합의라도 나올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28일 낮 12시56분(현지시간)쯤 예정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오찬 및 합의문 서명식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노이 베트남·소련 우정기념궁에 차려진 프레스센터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방안 뒤편 구석에서 몇몇 기자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것 외에는 무거운 침묵이 기자실에 흘렀다. 정부 당국자들도 “어떻게 된 거냐”는 물음에 굳은 표정으로 “회담이 결렬된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초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북한 비핵화 협상이 졸지에 좌초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탓일 게 분명했다.
 

미진한 비핵화로는 제재 못 없애
평화 프로세스는 계속 추진하되
성급한 남북교류 사업은 재고해야

대부분의 전문가가 어떤 수준이든 합의가 이뤄질 걸로 봤던 건 트럼프의 처지 때문이었다. 그가 대선 승리를 위해 러시아와 담합했다는 내통 의혹에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 문제로 정치적 곤경에 빠져 북핵 관련 업적에 목말라 있을 걸로 보였던 상황이었다. 특히 전날인 27일 밤에는 그의 전 변호사이자 최측근이었던 마이클 코언이 하원 청문회에 나와 트럼프의 비리를 까발렸기에 더더욱 합의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정치적 치적을 갈망했을 트럼프가 합의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김정은이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고 오로지 대북제재만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회담 결렬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제재 완화를 전체적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며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해줘야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의 회담 결렬로 우리 정부가 추구해 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는 빨간불이 켜진 셈이 됐다. 이번에 종전선언과 함께 금강산 관광 또는 개성공단 재개 조치가 이뤄질 경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남북교류 사업을 편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나쁜 합의(bad deal)’보다는 ‘합의 무산(no deal)’이 더 낫다는 사실이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걱정해 왔다. 북한이 그저 영변 핵시설 폐기 정도의 조치를 취하는 대신 상당한 제재 완화를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과거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재가동했던 영변 핵시설을 활용해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이 된다. 같은 말을 두 번 파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만약 이런 우려가 현실화됐다면 북한은 계속 "비핵화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 행세를 할 게 틀림없다. 우리로서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은 진정성 없는 비핵화로는 제재 철폐는 물론, 부분적인 완화마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가 납득할 핵·미사일 신고나 구체적인 비핵화 스케줄을 내놓는 것만이 원하는 것을 얻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확실하게 드러났듯, 미국은 결코 호락호락 북한의 요구에 넘어갈 나라가 아니다. 김정은이 진심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걷어내고 정상국가로 나가길 바란다면 살라미 협상 전술 대신 진정한 비핵화 조치 외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납득할 만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서둘러 남북교류를 추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아야 한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다투어 남북교류사업에 뛰어드는 풍조는 이번 일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대상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여러 번 강조했듯, 북핵 문제는 그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의 안전이 달린 빅 이슈다. 남북교류를 비롯한 모든 대북 정책은 국제사회와 발맞춰 추진하는 게 현명하다. 그러니 활발한 남북교류나 경제협력으로 북핵 문제를 견인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은 다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하노이 회담으로 판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김정은과의 세 번째 만남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36시간 전보다 북한과 가까워졌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과의 인간적인 관계는 더 좋아졌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망가지진 않은 만큼 향후 극적인 타결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만족할 만한 카드를 북한이 마련해 제시한다면 언제든지 재회가 가능하다. 이번엔 트럼프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거울삼아 지나친 낙관론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가 몇 번의 정상회담으로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이번 결과에 너무 낙담하기보다 현실적인 대북 정책으로 중재자 역할을 추진해 간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노이에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