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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제는 우리의 평화통일에 대해 토론할 차례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하노이 정상회담은 극적으로 시작됐던 것처럼 그렇게 극적으로 끝났다.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금방이라도 문 앞에 다가온 것 같던 한반도의 평화를 기다리던 이들은 실망한 마음으로 파국을 이야기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남겨놓은 뒷맛을 바탕으로 또다른 기다림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망과 열패감, 강제된 기다림과 기대가 혼재할 것이다.
 

극적인 하노이회담 결렬으로
실망과 강제된 기다림이 혼재
우리 ‘밖’ 평화통일 쫓아가느라
‘안’의 통일 공감대는 못이뤄
우리 한계에 열패감, 비관보다
미래 평화통일 이야기 나눠야

분명한 사실들은 몇 가지 있다. 우선 애초 우리에게 주어진 통일과 평화의 전망 자체가 사실 철저하게 외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매우 예측불가능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의 노력과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은 근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역사가 던진 유례없는 두 개의 변화구가 요행히도 맞부딪힌 사건이었다. 그만큼 애초에 예측하기도 제어하기도 불가능한 만남이었다.
 
개인적 결단, 혹은 독단을 거듭하면서 북미대화를 여기까지 끌고 온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정상회담 실패의 포화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미 진행되고 있던 특검 조사와 자신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에 대한 청문회가 베트남 방문 중에도 계속 목을 죄었던 형편이다. 그의 재선 여부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의 함의가 완전히 바뀔 수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내년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셈이다. 예측가능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지도자가 어느날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북한의 경우는 더 난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김위원장의 입장에 대한 지지 그룹과 반대 그룹이 누구이며 북한 내부 여론의 저류가 무엇인지를 알기 힘든 상황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무기력감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지만 급박한 페이스를 따라가느라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 무거운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외부적 상황과 무관하게, 우리들이 어떻게 평화통일을 상상하고 내재화하고 있으며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 흔히들 ‘남남갈등’이라고 편의상 부르는, 대북-통일 문제에 대한 우리 안의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토론하고 숙의할 시간이 없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갑자기 던져진 캐릭터들에 현혹되어 우리 ‘밖’의 평화통일 논의를 쫓아가기 버거웠지만, 우리 ‘안’의 평화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합의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숙제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매년 수행하는 <통일의식조사>에 의하면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들은 2007년 이래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특히 청년세대에서 보다 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진보-보수의 차이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중도층이 가장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은 거의 모든 경험적 조사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우리는 아직 통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통일을 민족공동체의 당위적 회복으로, 어떤 이는 경제적 기회구조의 확대로 생각하며, 어떤 이는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또 어떤 이는 세금과 일자리가 없어질 심대한 위기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통일에 대한 다양한 꿈들을 “평화공존”의 슬로건으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현 정부의 업적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지금부터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의 운명이 예측할 수 없는 타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무기력하고 분통터질 일이지만, 더큰 문제는 우리가 각자 꿈꾸는 평화와 통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야기하고 준비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꼭 100년 전 오늘, 선열들이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때조차도 그 ‘대한’이 대한제국인지 새로운 공화국인지에 대한 합의된 꿈은 없었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해방을 맞이했던 것처럼, 오늘 누구나 통일과 평화를 말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충분히 이야기했던가. 그래서 오늘은 비로소 100년 후를 기약하는 각자의 꿈을 나누고 토론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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