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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으로 잡힌 ‘독립운동 거괴 김숙자’

3·1운동 때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동료들의 만세 시위를 이끌었던 김숙자 여사. [중앙포토]

3·1운동 때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동료들의 만세 시위를 이끌었던 김숙자 여사. [중앙포토]

“불의코 백년 살지 말고 의코 하루 살아라”
 

경성여고보 60여 명과 만세운동
또다른 유관순 … 군자금 모금 활약

"1919년 3월 1일, 화장실 벽에 적힌 이 문구를 보기 위해 학생이 한명씩 들어온다. 오후 1시쯤 탑골공원에서 독립 만세 소리가 들려오자 학생들은 기숙사 후문 열쇠를 주먹으로 비튼 뒤 달려나간다.”
 
독립신문 1919년 9월 27일자 14~21호에 실린 ‘여학생일기’ 내용이다. 이 연재물은 ‘심원’이라는 여학생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중·경기여고)에 들어가 3·1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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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 수많은 여성이 참여했지만, 유관순 열사 외에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김숙자 여사(1894~1979)도 그들 중 한명이다. 그의 남편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역사학자 장도빈 선생이고 아들은 장치혁(87) 전 고합그룹 회장이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와 그의 가족에 따르면 김 여사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동료 60여명을 이끌고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1912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고향인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교사로 일한 그는 1916년 이 학교에 편입했다. 나이가 많고 리더십이 있던 그를 학교 친구들은 ‘왕언니’로 불렀다고 한다.
 
당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는 관립 학교로 총독부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교사도 대부분이 일본사람이었다. 김 여사는 취침시간에 몰래 태극기를 그렸다고 한다.
 
매일 밤 몰래 그린 300장의 태극기를 들고 김씨는 3월 1일을 맞았다. 오전 11시쯤 기숙사 담장을 넘어 날아온 독립선언서 200부를 교사 몰래 동지와 돌려 읽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자 최은희, 수원지역 대표 독립운동가 이선경도 함께였다.
 
박환 교수는 “관립학교 학생까지 독립 의지를 불태운 것을 보면 일본의 차별과 억압이 사회 구석구석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평북으로 가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매일신보 1921년 6월 24일자에는 “여자 정치범 검거, 독립운동의 거괴(巨魁) 김숙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해 평북 조직책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으던 김씨가 체포됐다는 내용이다. 체포될 당시 그는 임신 7개월이었다.
 
박 교수는 “과거 여성은 자신의 공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컸다”며 “관심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더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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