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조선의 등불 되어라"···유관순 이끈 美유학파 여스승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삶을 다룬 창작극 '100년후 꿈꾸었던 세상' 제작발표회에서 극 속 김란사(왼쪽)가 유관순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이 담긴 펜던트를 건네고 있다. [사진 인천시립예술단 제공]

여성 독립운동가 김란사의 삶을 다룬 창작극 '100년후 꿈꾸었던 세상' 제작발표회에서 극 속 김란사(왼쪽)가 유관순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이 담긴 펜던트를 건네고 있다. [사진 인천시립예술단 제공]

“내 인생은 칠흑처럼 깜깜한 한밤중 같아요. 부디 제게 빛을 찾을 기회를 주세요.” 
 

3월 1~3일 인천예술회관서 관련 창작극
한국 여성 최초 미국 문학사 학위 취득
유관순에게 “조선의 등불 되어 달라”

27일 오후 3시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운동가 김란사(1875~1919) 지사의 삶을 다룬 창작극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인천시립예술단은 3·1절 100주년을 맞아 오는 3월 1~3일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을 선보인다. 무용수 2명과 배우 3명이 시간 순서대로 김 지사의 다섯 모습을 연기한다.  
 
이화학당 총교사(교감) 시절 김란사 지사. [사진 김용택씨 제공]

이화학당 총교사(교감) 시절 김란사 지사. [사진 김용택씨 제공]

김 지사는 한국 최초의 자비 미국 유학생이다. 유학을 다녀온 뒤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그가 가르친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유관순 열사다. 3·1절이 되면 많은 사람이 유 열사를 떠올리지만 그의 스승인 김 지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87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지사의 집안은 비단과 면직물을 파는 포목상을 운영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와 사업을 이어가다 1893년 결혼했다. 남편 하상기가 인천항 경무관이 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국가를 지키는 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듬해 이화학당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결혼했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다.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 리허설 중 극 속 김란사가 배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심석용 기자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 리허설 중 극 속 김란사가 배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심석용 기자

프라이 학장이 “가정을 이뤄 풍족하게 사는 당신이 왜 비용을 다 지불하고 소녀들과 똑같이 순종하면서 여기 오기를 원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자 김 지사는 등불을 가리키며 “우리나라는 저 등불같이 매우 어둡다. 어머니들이 무엇인가 배우고 알아서 자식을 가르칠 수 있게 될 때까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학장과 인터뷰에서 뚜렷한 목적과 의지를 보여준 김 지사는 입학을 허가받았다. 그는 이후 일본 유학을 거쳐 1897년 미국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 문과에 입학, 6년 만에 한국 여성 최초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엔 이화학당 교사로 일했다.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에게 “조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달라”며 이화문학회 가입을 권유해 독립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김란사 지사. [사진 김용택씨 제공]

김란사 지사. [사진 김용택씨 제공]

성경학교 설립, 부인 계몽·독립운동 교육 역시 그의 몫이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 한국 최초의 여성 유럽 유학생 윤정원과 함께 고종에게 은장 훈장을 받았다. 
 
또 김 지사는 미국에서 의친왕과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고종의 통역사로 활동했다. 고종은 의친왕과 김 지사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 독립을 승인받게 하려 했지만,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그해 3·1운동 이후 다시 파리강화회의 참석을 위해 떠난 김 지사는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김 지사 남동생의 손자인 김용택 김란사 추모사업회장은 “베이징 동포들과 만찬 자리에서 일본 스파이에게 독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1995년 국가보훈처는 여성의 애국정신을 고취했다며 김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때는 김란사가 아닌 하란사였다. 미국 입국 서류에 남편의 성을 따라 하란사라고 적은 것이 그대로 쓰였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2015년 정정을 요청해 지난해 2월 ‘김란사’로 표기된 애족장 수여 증명서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4일 서울현충원에 김 지사의 위패가 봉안됐다. 
김용택 김란사 추모사업회장. 심석용 기자

김용택 김란사 추모사업회장. 심석용 기자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교육박물관에서 만난 김 회장은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뿐 아니라 김 지사가 돌아가신 지 100주년”이라며 “많은 분이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는 3월 9일 오전 11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서는 처음으로 김란사 지사 시제(時祭)가 열린다. 
 
11년 전 이화 박물관 건립 때부터 김 지사를 연구한 황동진 서울교육박물관 학예사는 “그의 교육은 여성 독립투사 양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평했다. 황 학예사는 지난 20일 『김란사, 왕의 비밀문서를 전하라』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사진 인천시립예술단 제공]

[사진 인천시립예술단 제공]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은 “대한민국 독립에 여성이 기여한 바가 크기에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 지사에 주목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최은경·심석용 기자 choi.eunkyung@joins.com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