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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시아버지의 마음 울린 남편이 손수 만든 주먹밥

기자
양은심 사진 양은심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16) 
시아버지께서 주먹밥이 드시고 싶다 하셨다. 남편은 태어나 처음으로 주먹밥을 만들며 효도했다. [중앙포토]

시아버지께서 주먹밥이 드시고 싶다 하셨다. 남편은 태어나 처음으로 주먹밥을 만들며 효도했다. [중앙포토]

 
“아버지가 주먹밥이 드시고 싶다는데.”
“그래? 만들어 드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데?”
“나도 일본 와서 처음으로 만들어 봤어. 처음엔 삼각형이 잘 안 만들어지더니 나중엔 되더라고.”
 
남편이 쉬는 날은 시아버지의 모든 걸 맡아서 한다. 왜냐, 아들이니까. 며느리인 내가 아닌 아들인 남편의 아버지이니까. 시아버지는 남편을 낳고 길렀지 며느리인 나를 낳고 기른 것이 아니다. 효도는 어디까지나 자식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 연장선에 며느리가 있고 사위가 있는 것이다.
 
시아버지 모시기는 네 식구 몫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은 부득이한 일이 없는 한 상관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에 집중한다. 설사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에게는 일요일도 휴일도 없다. 더군다나 50세 중반에 접어들고 보니 잘 쉬지 않으면 휘청거린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며느리도 나이를 먹는다. 어르신들보다 나이의 숫자가 적다고 젊은이 취급은 말자.
 
남편은 처음 시아버지를 돌볼 때 일일이 질문 공세를 펼쳤고, 나는 남편이 모든 걸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효도는 자식이 나중에 후회 남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 [중앙포토]

남편은 처음 시아버지를 돌볼 때 일일이 질문 공세를 펼쳤고, 나는 남편이 모든 걸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효도는 자식이 나중에 후회 남지 않을 정도로 해야 한다. [중앙포토]

 
처음부터 남편의 ‘아버지 돌보기’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일일이 물어왔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있을 때도 있었다. 한 달 정도 일요일과 휴일마다 질문 공세가 이어진 후 나는 남편에게 모든 걸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했다.
 
“당신 아버지야. 효도는 자식이 해야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해. 당신이 집에 없는 평일에는 내가 도울게. 내가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야. 당신의 아버지이고 아이들의 할아버지니까 모시고 있을 뿐이야. 우선 식사 문제를 잊는 일이 없도록 해.”
 
내친김에 두 아들에게도 말했다. “너희들과 할아버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 혈육이야. 엄마와 할아버지는 타인이지만, 너희들은 할아버지가 계셔서 태어날 수 있었던 거야. 죽어서도 끊을 수 없는 가족이지. 그러니까 할아버지한테 잘해.”
 
남편과 아들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는 시아버지를 모신다고는 하지만 남들이 걱정하는 만큼 힘들지는 않다. 사회 제도도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고 네 가족이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손에 밥을 묻혀가며 서투르지만 정성을 담아 주먹밥을 만들었다. 시아버지께서는 단기 기억장애가 있음에도 아들이 만든 주먹밥은 기억하셨다. [중앙포토]

남편은 손에 밥을 묻혀가며 서투르지만 정성을 담아 주먹밥을 만들었다. 시아버지께서는 단기 기억장애가 있음에도 아들이 만든 주먹밥은 기억하셨다. [중앙포토]

 
처음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본 남편은 손이 밥투성이가 됐다고 한다. 손을 적시지 않고 밥을 집었기 때문이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참에 마침 요양보호사가 와 요령을 가르쳐 주었고, 어찌어찌 잘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보니 쉬웠다고. 그렇지 모든 게 하면 할 수 있어. 안 해서 못하는 거야.“아버님이 좋아하셨지?” “응, 맛있다고 잘 드시더라고.”
 
처음으로 아들이 만든 것을 드셨으니 그 감동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하지만 단기 기억장애가 있는 시아버지. 저녁 식사 때 물어보았다. “아침에 아들이 만든 주먹밥 드신 거 기억하고 계세요?” “응, 기억하고 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단기 기억장애로 모든 걸 까먹는 분이 아들이 만들어준 주먹밥을 기억하고 있다니. “기분이 어땠어요?” “감동했다. 조금은 내 생각을 해주는구나 싶어서.”
 
시아버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모는 자식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식이 해주는 소소한 일에 감동하는 것 같다. 그 감동은 머리가 아닌 마음을 울린 것이리라.
 
그 말을 남편에게 했다. “당신 주먹밥 만들어드리길 정말 잘했어. 효도했네. 얼마나 좋으셨는지 다른 건 다 잊으시면서 그 주먹밥은 기억하신대.” 부모께 잘하라고 할 때마다 “효도는 손자 얼굴 보여드린 것으로 다 했다”고 말하던 남편 또한 행복해 보였다. 남편은 점점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익숙해져 갔다. 지금은 복용하고 있는 약이 바뀌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볼 정도이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며느리가 아닌 자식의 몫이다. 서먹서먹하던 부모와 자식 관계도 작은 효도로 교류하며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다. [사진 영화 '카모메 식당' 캡쳐]

부모를 모시는 것은 며느리가 아닌 자식의 몫이다. 서먹서먹하던 부모와 자식 관계도 작은 효도로 교류하며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다. [사진 영화 '카모메 식당' 캡쳐]

 
늦은 결혼으로 40세에 얻은 단 하나뿐인 자식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귀한 아들이어서 쉽게 대하지 못하던 아버지.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이 싫어 가능하면 말을 섞지 않으려던 아들. 서먹서먹하던 부자가 주먹밥으로 행복을 나누었다. ‘부자간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손주들까지 당신을 돌보니 얼마나 좋을꼬.
 
요즘엔 두 아들도 할아버지 돌보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처음이 어렵지 하루 이틀 하다 보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된다. 어떤 때는 내가 남편이나 아들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때도 있다. 물론 지금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나에게 물어 온다. 그러나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 네 식구가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에게 시아버지 효도 기대 말아야
효도는 누가 해야 하는가. 당연히 부양을 받았던 자식의 몫이다. 부모의 은혜는 은혜를 받은 자식이 갚아야 한다. 며느리나 사위에게 기대하지 말자. 감동의 수준 또한 자식이 했을 때 크다는 것을 ‘남편의 주먹밥’에서 느꼈다.
 
그것이 섭섭한 것이 아니다. 그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것과 감동하는 것은 다르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전하고 싶다면 친자식들이 행동할 일이다. 주먹밥 하나라도 ‘내 자식’이 만들어 준 것은 맛을 떠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설사 치매라 할지라도.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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