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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대기자의 퍼스펙티브]호찌민·김일성 유산 차이가 경제운명 갈랐다

김정은, ‘베트남식 개방’에 소극적인 이유
김정은의 등장은 요란하다. 그것은 북한식 찬란한 외출이다. 하노이가 떠들썩하다. 경호단은 영도자의 벤츠 리무진을 둘러싼다. 뜀박질 경호는 신나는 구경거리다. 시민들은 스마트폰에 그 장면을 담는다.

김정은 드라마는 리메이크
할아버지를 소재로 삼았지만
베트남은 북한과 달라

호찌민 검소함이 권력 절제로
지도부의 과거 실패 비판이
도이머이 경제 성공의 바탕

김일성의 세습, 핵 개발 유산이
개방과 변화의 장애물
김정은의 대담한 결단을 요구

 
하노이에 붉은색이 넘친다. 북한 인공기와 베트남 금성홍기가 걸렸다. 그 모습은 반세기 전 양국의 혈맹관계를 떠올린다. 그것은 김일성과 호찌민(胡志明·호지명)시대의 동지적 정서다. 지금 베트남의 젊은 세대에겐 낯선 감흥이다. 김 위원장의 움직임은 그들에게 흥미로운 리얼리티 쇼다. 40대 이하 베트남 국민에게 북한은 멀다. 하노이 거리는 자유로운 활력이 넘친다. 평양의 규격화된 통제와는 다르다. 그것은 개방과 폐쇄 사회의 차이다.
 
쩐반흐엉은 베트남군 장교 출신이다. 그의 예편 후 경력은 디엔비엔푸(베트남 북서부)전투박물관 근무. 그는 나의 베트남 전쟁사(‘현장 속으로’) 안내자다. 27일 내게 e메일을 보냈다. 글은 감탄조다. “핵무기는 절묘하고 쓸모가 많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난한 나라 지도자를 만나러 여기에 온 것은 핵의 위력 덕분일 것이다. 그런 대접을 받으니 핵을 포기하겠는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김정은의 하노이 연출은 정교하다. 드라마의 시작은 리메이크다. 소재는 할아버지 김일성이다. 김일성은 두 차례 베트남을 찾았다(1958, 64년). 손자의 1호 열차는 중국 대륙을 관통했다. 그것은 기이한 풍광이다. 안전과 보안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의 건강·습관은 최고기밀이다. 남에게 빌린 여객기엔 흔적이 남는다. 북한은 그런 까닭을 덮는다. 그 순간 평양의 시네마 통치술이 작동한다. 젊은 영도자의 ‘할아버지 따라 하기’로 분장된다.
 
김일성 주석과 호찌민 주석의 마지막 만남은 55년 전이다. 그 시절 양국은 비슷했다. 휴전선과 17도선의 분단국이다. 두 지도자는 붉은 통일의 열망을 드러냈다. 미국과의 전쟁 때(1960년대~75년) 동지적 단합은 강화됐다. 북한은 조종사(100~200명)를 비밀리에 보냈다. 하노이 인근 박장성에 북한 공군 비석(14개)이 있다.
 
반흐엉의 e메일은 비감에 젖는다. “호찌민(1890~1969)주석은 김일성(1912~94)보다 22년 연장자였지만 혁명적 우의로 대했다. 김일성의 방문 때 코끼리 두 마리를 북한에 선물했다. 베트남과 중국·북한은 오랜 우방이었다. 1990년대 전후 우리와 중국은 달라졌고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대열에서 북한만 탈락했다. 그것은 체제의 고집 때문이지만 답답하다.”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시장경제는 활기다. 북한의 자력갱생 경제는 통솔이다.
 
김정은 드라마는 두 개로 구성돼 있다. 의제는 비핵화와 제재 풀기다. 두 사안은 나뉘며 얽혀 있다. 시선의 과녁은 명쾌하다. “북한이 베트남식 경제를 롤 모델로 삼을 것인가.” 그 시선은 그의 베트남 공식우호방문(3월 1일) 때 더욱 집중될 것이다.  
 
북한 수행단은 김일성의 흔적을 찾았다. 이수용(외교담당)·오수용(경제담당)노동당 부위원장은 관광지 할롱베이에 갔다. 그곳은 1964년 김일성의 방문지다. 이어서 수행단은 하이퐁으로 갔다. 그곳은 베트남의 산업단지다. 그런 장면들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새롭지 않다. “도이머이, 덩샤오핑(鄧小平)개방은 오래된 이야기다. 북한은 장기간 그 모델을 분석하고 자기 실정에 맞는가를 검토했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교수) 2대 세습의 김정일은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 그는 은둔형이다. 그 대신 2007년에 내각총리(김영일)를 베트남에 보냈다. 그것은 현장 확인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선택은 예상을 깼다. 그는 핵무장으로 질주했다.
 
정은의 또 다른 야심은 경제다. 그 때문에 북한의 개방 의지와 욕구는 바뀔 수 있다. 대외 상황은 달라졌다. 하지만 세습의 유산은 강고하다. 개방의 바람은 차단된다. 그것을 해부하면 김정은의 선택 폭을 추정할 수 있다.
 
하노이 거리 풍광은 두 나라의 간격을 실감한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으로 넘쳐난다. 주민 경배는 흐트러짐이 없다. 베트남에서 호찌민 동상은 찾기 힘들다. 하노이 ‘호찌민 박물관’에 가야 만난다. 동상 크기는 부담 없다. 애칭 ‘박 호’ (호 아저씨)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호찌민은 검소했다. 그가 살던 집(바딘광장 묘소 옆)은 청빈을 간직한다. 양국 주석의 하노이 만남 사진은 흥미롭다. 둘 다 인민복 차림이다. 신발은 달랐다. 호찌민은 샌들이다. 볼품없는 검은색 고무슬리퍼다. 재료는 자동차 폐(廢)타이어. 호찌민 박물관의 관광상품이다. 안내문은 이렇다. “호찌민 주석은 편하다며 20년간 신었다. 외국 수뇌와의 회담 때도 애용했다.” 그것은 대비된다. 북한 세습 가문의 사치는 유별나다.
 
북베트남(월맹)군도 호찌민 샌들을 신었다. 미국은 ‘거지 군대’라고 비웃었다. 워싱턴 외곽의 우드바르-헤이지 항공우주 박물관에 독특한 전시물이 있다. 호찌민 샌들과 B-52 전략폭격기(실물의 144분의1 축소)다. 유리 부스 안에 두 품목이 함께 있다. 샌들의 저항 투혼은 첨단 무기의 미군을 눌렀다. 20세기 후반 베트남은 강대국들과 전쟁을 치렀다. 프랑스(디엔비엔푸) ·미국· 중국(랑손)군대를 물리쳤다.
 
그것은 예비역 장교 쩐반흐엉의 자부심이다. “우리는 북한과 달리 핵무기가 필요 없다. 자력 안보의 정신력으로 강대국 침략을 막아낸다. 호찌민이 남긴 저항 의지는 핵보다 강하다.” 21세기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은 중국과 대치한다. 중국은 베트남의 전통적 투지를 의식한다.
 
삶의 검약함은 검소한 권력을 낳는다. 베트남 정치는 1당 독재다. 하지만 권력은 분산돼 있다. 당 서기장·국가주석·총리 체제다. 그것은 호찌민의 권력 절제 유훈이다. 권력의 나눔은 사회 분위기를 바꾼다.  
 
그것이 도이머이(새롭게 바꾼다)의 출발점(1986년 12월)이다. 이재춘 교수(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는 “호찌민의 민족주의와 집단권력 체제, 실용주의 유산이 정책 전환의 바탕이 됐다”고 했다. 수뇌부는 유연했다. 그들은 원리주의적 경제실패를 반성했다. 그것은 ‘사상해방’의 베트남 방식이다. 원조는 중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다. 그것은 마오쩌둥(毛澤東) 노선과의 선택적 결별과 비판으로 가능했다.
 
북한의 권력 공간은 절대 독점의 세습이다. 주체의 자력갱생 경제는 무오류(無誤謬)의 영역이다. 개방은 신성불가침에 침투한다. 시장경제는 세습에 의문을 던진다. 변혁의 심리가 생겨난다. 북한으로선 절대 피하려는 상황전개다.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과거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비판위에서 개혁·개방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그것이 개방에 소극적인 핵심 이유다.
 
베트남의 지향은 지혜롭다. 1954년 프랑스는 참패했다.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 포로는 1만여 명. 호찌민은 “프랑스군 포로를 모멸하지 말라”고 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어서다.  
 
그의 후진들은 그런 극적 변화를 계승했다. 1980년대 후반 미국과의 관계에 그것을 적용했다. 반미의 집단적 증오가 해체됐다. 1995년 베트남은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풀었다. 외국인직접투자(FDI) 가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대열의 선두다. 미국은 베트남의 제1 수출국이다. 베트남의 대체적 정서는 친미·반중(反中)이다. 미국과 베트남은 전략적 제휴 관계다. 미국은 베트남을 대중국 포위망에 넣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을 겨냥한다. 중국은 그런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는다.
 
북한은 자기 방식의 발전 모델을 찾고 있다. 그것은 핵과 경제의 동시 추구·만족이다. 핵보유국 지위 확보의 의지는 끈질기다. 동시에 경제 개발이다. 트럼프는 압박하고 유혹한다. 그의 트위터는 반복한다. ‘핵무기 없는 경제 강국!’-. 그는 27일 “비핵화를 하면 북한은 베트남처럼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자기 길을 간다.
 
한의 협상실력은 탁월하다. 28일 트럼프와의 담판에서 최대한 버틸 것이다. 북한의 협상 언어는 잘리고 나뉜다. 사물처럼 말의 뜻도 분리된다. 그 목표는 최소한의 양보로 최대의 이득 챙기기다. 종전 선언 여부도 결판난다. 양보 대상은 영변 핵시설. 그곳은 낡고 오래됐다. 폐기는 의미를 갖는다. 한계는 뚜렷하다. 영변 폐쇄는 ‘앞으로’ 핵물질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핵 전력은 고스란히 남는다. 북한의 핵 보유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이득은 제재 완화다. 우선 대상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다.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경협사업을 떠맡을 각오가 돼있다”고 했다. 김정은으로선 행운을 거머쥔 셈이다. 김위원장과 시진핑 국가 주석과의 회담은 밀월을 과시한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기대한다. 중국은 일정 수준 제재 풀기에 나설 기세다.
 
후진국의 경제개발은 기적의 산물이다. 그것은 핵무장보다 어렵다. 한강의 기적은 리더십과 국민의 합작이다. 핵의 세계는 간단하다. 그것은 지도자의 결단과 과학자의 헌신으로 구성된다. 핵과 경제의 양면 추구는 북한엔 기형적이다. 장마당과 경제특구 방식은 한계를 노출한다. 과거 방식과의 결별과 비판-. 그것이 경제전환의 성공 바탕이다. 베트남과 중국 경제가 명쾌한 사례다. 그것은 김 위원장의 대담한 결단을 요구한다.
 
하노이 회담은 말잔치다. 퍼포먼스도 이어진다. 28일 오후 두 정상의 하노이 선언이 나올 것이다. 그들은 성공으로 포장할 것이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은 나중에 나온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정은의 귀국 후 실천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 김정은의 하노이 드라마는 반전(反轉)의 긴장 속에서 마감할 것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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