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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판매금으로 독립자금 조달 … ‘활명수’ 120년간 민족의 생명 살리는 물 역할

동화약품은 1897년 창립한 국내 유일의 일업백년(一業百年) 제약사다. 동화약품은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정신 아래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활명수 판매금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국내 제약산업은 동화약품 ‘활명수’의 개발과 그 시작을 함께 한다. 국내 제약산업은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그의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동화약품은 일제 강점기 들어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체계화된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했다. 현재 서울 중구 순화동 동화약품 창업지에는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세운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있다.
국내 제약산업은 1897년 ‘활명수’의 개발이 시작이며 일제강점기 시절 활명수 판매금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사진은 활명수 변천사. [사진 동화약품]

국내 제약산업은 1897년 ‘활명수’의 개발이 시작이며 일제강점기 시절 활명수 판매금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사진은 활명수 변천사. [사진 동화약품]

 
당시 동화약방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행정책임자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이동 시 활명수를 지참해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화약품은 1936년 우리나라 손기정·남승룡 선수가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자 승전보를 알리는 축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해 국민의 자부심을 높이고 일제 치하의 상처를 위로했다.
 
동화약품 초대 사장인 은포 민강 선생은 1909년경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한성임시정부 수립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은 동화약방을 인수한 후 경제적 자립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해 총무로 활동하며 빈민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민족 운동을 펼쳤다.
 
동화약품의 7대 사장인 윤광열 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제에 강제 징집됐다가 탈출한 후 중국 상하이에 있는 정부군을 찾아가 광복군 중대장을 맡았다.
 
활명수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 어린이의 ‘생명을 살리는 물’로 거듭나고 있다. 활명수는 매년 독특한 디자인을 담은 ‘활명수 기념판’을 선보이고 있다. 기념판 판매수익금은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중앙일보디자인=송덕순 기자 song.deoks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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