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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항공모함' 인도양 섬 분쟁…국제사법재판소 "英 통치 그만"

미군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섬 [위키피디아]

미군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섬 [위키피디아]

 인도양 한가운데 위치한 차고스 제도. 이곳의 가장 큰 섬 디에고 가르시아는 ‘움직이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불린다. 미군의 공군기지가 설치돼 있어서다.
 
 이 섬의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미 공군의 작전 반경은 중동과 아프리카 동부, 인도와 동남아까지로 확장됐다. 이 섬은 미 5함대의 주둔지이자, 이라크전 등에서 대규모 폭탄을 실어나른 B-52 전폭기의 발진기지이기도 하다.
 
 미군 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이 제도는 영국령이다. 영국이 미국에 임대했다. 두 강대국의 거래 이면에는 원주민의 한이 서려 있다. 200여년간 살던 터전에서 아프리카계 1500여 명이 2000㎞가량 떨어진 모리셔스 등으로 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 [AP=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 [AP=연합뉴스]

 
 고향 땅 되찾기 운동을 벌여온 원주민들에게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비추는 판결이 나왔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5일(현지시간) 차고스 제도에 대해 영국이 관할권을 중단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차고스 제도는 원래 아프리카 서부 섬나라 모리셔스의 일부였다. 영국은 1965년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에서 차고스 제도를 떼어내 영국령 인도양 지역(BIOT)으로 편입했다.
이듬해 영국은 차고스 제도의 주도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미국에 50년간 임대하는 협정을 맺고 미군 기지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줬다. 그 대가로 영국은 잠수함 발사 핵미사일 시스템을 미국 측으로부터 싸게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양 한 가운데 위치한 차고스 제도(빨간색 지점). 영국령인데 미국에 임대해줘 미 공군기지가 설치돼 있다. [구글 캡처]

인도양 한 가운데 위치한 차고스 제도(빨간색 지점). 영국령인데 미국에 임대해줘 미 공군기지가 설치돼 있다. [구글 캡처]

 
 영국과 미국의 합의에 따라 차고스 제도에 살던 아프리카계 원주민은 1967~73년 모리셔스와 인근 제도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모리셔스는 1968년 독립했지만, 영국은 차고스 제도의 군사적 필요성이 없어지면 모리셔스에 다시 돌려주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아메드 유세프 ICJ 소장은 이번 판결에서 “1965년 모리셔스에서 차고스 제도가 분리된 것은 관련된 국민의 자유롭고 진정한 표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은 차고스 제도에 대한 관할권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모든 회원국은 모리셔스의 탈식민지화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CJ의 판결이 법적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권고 의견을 무시하면 유엔 총회 등이 이를 바탕으로 조처를 할 수 있다.
차고스 제도 출신 주민들이 영국 의회 앞에서 고향 되찾기 집회를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차고스 제도 출신 주민들이 영국 의회 앞에서 고향 되찾기 집회를 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리셔스 정부는 영국의 행위가 독립 이전 식민지 분할을 금지한 유엔 결의한 1524호를 위반했다고 반발해 왔다. 2015년 국제분쟁 해결기구인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도 영국이 불법적으로 행동했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강제력이 없었다.
 
 그러자 모리셔스는 2017년 유엔 총회에 차고스 제도의 법적 지위에 대해 ICJ가 권고의견을 내 달라고 요청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94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반대는 15개국이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상황이어서 프랑스와 독일 등 다수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캐나다까지 65개국이 기권하며 영국 편을 들지 않았다.
 
 미군 기지 건설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었던 주민들은 영국 정부에 재정착을 위한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고향 땅에 돌아가기 위한 운동을 벌여왔다.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해야 한다고 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들. [AP=연합뉴스]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해야 한다고 집회를 열고 있는 주민들. [AP=연합뉴스]

 
 가디언은 “2017년 총회 표결 때부터 영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영국은 이 문제가 모리셔스와 직접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하는 현안이라며 차고스 제도는 안보상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50년 임대 기간은 2016년 종료됐다. 하지만 인도양에서 미군의 전략 거점이어서 영국 정부는 여전히 차고스 제도가 안보상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고립되고 있는 영국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선주의에 염증을 느끼는 많은 나라, 여기에 원주민의 귀환 필요성까지 겹쳐 인도양의 제도는 국제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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