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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일본에 간 『82년생 김지영』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텅 빈 얼굴의 여자.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 표지(사진)입니다. 긴 생머리와 갸름한 얼굴, 장미꽃무늬가 들어간 옷 덕분에 눈코입이 없어도 여성의 얼굴일 거라 짐작합니다. 여자가 등지고 선 하늘은 맑은데, 뻥 뚫린 얼굴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나무와 황량한 배경은 한없이 공허합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7),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9)에 이어 이 책이 거의 10년 만에 밀리언셀러가 된 게 벌써 석 달 전입니다. 100만명 넘게 구입했으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일본에서도 반향이 큽니다. 출간 두 달여 만에 8만부를 찍었습니다. 얼마 전 도쿄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 또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합니다.  
 
눈에 띄는 것은 표지 디자인입니다. “이 소설이 김지영의 이야기이면서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컨셉”이라는 게 일본 출판사 지쿠마쇼보(筑摩書房) 측 설명입니다. 얼굴은 곧 정체성인데, 이 정체성이 위협받는 사회적 상황을 그리기 위해 여자의 얼굴에 풍경을 그려넣었다고도 했습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 표지 [사진=지쿠마쇼보]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 표지 [사진=지쿠마쇼보]

‘이시스의 베일’이라는 은유가 있습니다.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조각은 종종 베일을 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베일을 들추는 자에게는 불행이 닥칠 거라는 금기는 여신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호기심을 배가시켰습니다. 기어이 베일을 들춰본 청년이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떴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합니다. 혹자는 그가 본 것은 여신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닌 텅빔, 거대한 심연이 아니었겠느냐고 추측합니다. 심연을 보아버린 청년은, 각성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거라고.
 
『82년생 김지영』의 일본판 표지를 다시 봅니다. 각성으로 인한 진통을 말한 이시스의 이야기처럼 소설은 금기의 베일을 걷어버렸습니다. 베일을 들추니 빈 얼굴이 나왔습니다. 이 ‘비어있음’은 ‘누구나 될 수 있음’입니다. 당신일 수도 있고, 당신 잘못도 아니며, 당신만의 상처가 아니라고 합니다. “인식하지 못하던 경험에 이름을 짓고 목소리를 준 힘 있는 소설”이라는 일본판 번역자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각성에는 변화가 뒤따라야겠지요. ‘2002년생 김지영’이나 ‘2012년생 김지영’의 삶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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